바야흐로 100세 시대. 은퇴 후 30~40년을 건강하고 행복하게 마무리하기를 바라는 것은 모두의 소망이다. 본회 회우들은 시대의 격랑을 헤치며 인생 1막을 숨 가쁘게 달려왔다. 정관계․공기업 진출이나 사업, 시민사회활동과 지식나누기, 봉사활동 등으로 인생 2막을 활기차게 열고 다시 뛴다. 팍팍했던 일상의 휴지부를 찍고 취미생활을 누리기도 한다. ‘지하철 택배’를 당당하게 체험한 액티브 시니어도 있다. 인생 2막, 다시 뛰는 회우들을 재기획, 시리즈로 소개한다.
인터넷신문 보수파 대변지 창간
“뉴데일리는 국격회복의 운동화, ‘건국의 아버지’ 찾는 것이 꿈이자 행운이죠”
인보길(74) 뉴데일리 회장은 ‘신문 인생’이다. 고등학교(경복고) 때 교지를 만들고, 대학교(서울대 독문과)에서는 문리대 신문 기자였다. 1965년 대학졸업을 앞두고 조선일보 견습 7기로 입사, 편집부장, 문화부장, 편집국장, 논설위원, 종합미디어본부장(상무), 디지털 조선일보 대표이사를 거쳐 2005년 은퇴하기까지 뉴스와 더불어 살았다. 조선일보 편집대기자로 젊은 후배들과 함께 일해 화제가 되기도 했다. 여기까지가 ‘인보길 인생 1막’이다.
2008년 인터넷 신문 뉴데일리 대표로 인생2막을 열었다. 좌파가 판치는 인터넷미디어 사이버 세상에서 우파의 목소리를 대변했고 네이버 포털에서 잘 나가는 사이트로 성가를 굳혔다. 뉴데일리 부설 ‘이승만 연구소’를 설립하여 ‘이승만 건국 대통령’ 재조명에 앞장, 이승만을 다시 보는 국민적 재인식의 확산에 결정적 계기를 만들었다. 지난 2월 ‘뉴데일리 경제’를 창간하는 경영성과와 더불어 회장직에 올랐다.
지난 3월 14일 오후 정동 동양빌딩 5층 뉴데일리 회장실에 만났다. 편집국을 거쳐 회장실 유리문을 밀고 들어서자 이승만 대통령 사진이 걸려있다. 창 너머로 우남 이승만이 1890년대 다녔던 배제학당이 내려다보인다. 옛 동관 3층 벽돌 건물과 수령 520년의 향나무만이 역사를 품고 있을 뿐, 대형빌딩이 들어서 시대의 변화를 실감한다.
-인생 2막도 치열하고 열정적으로 사신다. 에너지의 원천은?
“새로운 일이 뿜어주는 호기심과 의욕이랄까요. 특히 이승만이 20대에 쓴 옥중저서 ‘독립정신’과 그가 추구한 자유민주주의 신념 등 일대기를 조명하고 재평가하면서 파고들면 들수록 놀라운 발견과 감동으로 눈물이 나오고 힘이 솟습니다. 누구나 이승만의 진실을 알게 되면 ‘그렇게 살고 싶다’는 열정과 애국심이 절로 용솟음 칠 것입니다.”
-뉴데일리가 추구하는 ‘자유민주․시장경제의 파수꾼’ 노선도 이승만 정신과 맥을 같이하는 건가요?
“그렇습니다. 사시(社是)랄까, 시대정신이랄까,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의 수호와 발전을 슬로건으로 내건 목적이 바로 ‘이승만의 국가정신’과 일치합니다.
DJ와 노무현 정권을 거치면서 인터넷 언론매체는 소위 좌파가 독점하다 시피 했습니다. 모두 친북․종북 좌파라면 어패가 있지만 선진사회서 수용하는 진보 좌파가 아니라 급진 좌익 매체들이 많지요. 그들은 괴물 독수리처럼 좌익 날개를 휘둘러 우익 날개마저 꺾으려고 집단공격을 계속합니다. 이를 방어하며 자유민주체제의 균형 발전과 선진화를 추구하는 노력을 쏟아 붓고 있지요. ‘뉴데일리 경제’ 창간을 계기로 ‘자유민주-시장경제’에서 ‘자유통일-세계시장경제’로 업그레이드 시켰습니다.”
뉴데일리는 이미 2년 전부터 ‘시장경제신문’을 타블로이드 24면을 격주로 발행하고 있다. ‘서민을 위한 서민의 언론을’ 캐치프레이즈로 남대문 등 재래시장에 무료로 배포한다. 현장의 소리, 재래시장 탐방 등과 함께 ‘인보길의 역사 올레길’을 통해 ‘이승만 일대기’도 인기리에 연재한다. 인 회장은 핫이슈 인물을 찾아 직접 인터뷰도 하는 ‘열혈청년’이다.
-뉴데일리는 ‘또 하나의 인터넷신문이 아니다’라고 선언하고 ‘Save the Internet’ 기치를 내 걸었는 데 취지는?
“1995년 ‘디지털 조선일보사’를 설립하여 한국 최초의 인터넷신문 ‘디지털 조선일보’를 창간, 10년간 운영한 경험이 있습니다. 우리나라는 IT강국으로 기술수준은 앞서지만 유통되는 정보는 쓰레기로 넘칩니다. 북한사이트나 음란물사이트는 제쳐놓더라도 막말, 인신공격, 욕설, 역사를 왜곡하고 뒤집는 새빨간 거짓말들이 판을 치고 있어요. 정보는 진실이 생명이죠. 인터넷의 품격을 높이고 아름다운 인터넷 세상을 열어가려는 취지입니다. 이어령 초대 문화부장관, 안병직 시대정신 이사장, 남덕우 전 총리 등 여러분과 협력단체들의 동참으로 큰 효과를 보았습니다.”
-직원과 광고 수주는? 인건비도 만만찮을 텐데요?
“기자를 중심으로 50여명입니다. 광고는 늘 그렇듯이 경제사정과 맞물립니다. 출범할 때 보다 많이 나아졌어요. 경영비용은 비밀인데(웃음)...버는 만큼 나눠 씁니다.”
‘이승만 살리기’는 ‘국격 회복 운동’
2010년 설립한 뉴데일리 부설 이승만 연구소는 매월 ‘이승만 포럼’(37회)을 개최하여 이승만 전 대통령의 건국이념을 알리는 데 앞장섰다. 대학생을 대상으로 우남아카데미를 열어 호응을 이끌어 냈다. ‘이승만 다시보기’ ‘대한민국 건국과정’ 등 시리즈 출판 사업도 펼친다. 하와이등 이승만의 국내외 사적지 탐방에 참여한 학생들은 “이승만을 알고 보니 역사를 잘못 배웠다. 현대사를 새롭게 보는 눈을 떴다”고 했다.. 지난해 이승만 연구소를 ‘건국이념 보급회’로 명칭을 바꾸고 건국이념 살리기에 주력한다.
-왜 이승만인가요?
“대한민국을 지키기 위해서입니다. 대한민국 건국을 반대했던 세력들이 지난 60여 년 간 ‘이승만 죽이기’ 공작을 벌여왔습니다. 소련 스탈린이 ‘남북좌우합작’ 위성국 수립에 실패하고 6.25 무력 공산화도 패배한 이래 대한민국 전복 심리전-사상 전쟁이 바로 ‘이승만의 대한민국 건국 역사 지우기’ 작업입니다. 이승만이 없었다면 해방직후 남북합작 공산통일도 되고, 이승만이 없었다면 대한민국 건국도 없었기 때문입니다. 가까이는, 대한민국 건국을 저지하려던 제주4.3폭동 등 공산당 투쟁사를 우리 현대사의 정통역사로 명예회복 시킨 정부차원의 역사전복 작업이 전형적인 사례입니다.우리 학생들이 “대한민국 건국 대통령은 김구”라고 답하는 이유가 무엇인가요?. 김일성을 만나 ‘남북협상 통일정부’를 세우자며 대한민국 건국을 건국 후까지 반대한 사람이 백범입니다. 빛나는 항일투사 백범 선생마저 그때부터 지금까지 그렇게 악용당하고 있습니다.전교조 일부 교사들의 행태를 볼 때마다 떠오르는 얼굴이 있지요. 6.25 때 충남 당진(唐津) 저의 국민학교 담임선생님. 인민군이 들어오던 날 담임은 칠판에 ‘김일성 장군 만세“ 라고 크게 써놓고 반장인 저에게 만세삼창을 부르게 했어요. 그날로 그는 교장이 되었습니다. ‘붉은 소년단’을 조직하고 ‘남조선 해방 축제’로 이석기가 불렀다는 ‘적기가’ 등 북한노래 합창, 김일성 연극 등을 준비하여 순회공연에 나섰습니다.”
그 때 열 살짜리 인보길은 선생님이 써준 웅변 원고대로 열변을 토했다. “독재자 이승만, 미국 괴뢰도당을 태평양 깊은 물에 장사 지냅시다”라며 주먹을 쾅 치면 장마당 사람들은 “잘한다∼” 박수를 쳤다. 그 선생님은 지방 교육계에 숨어 암약한 남로당 RO 멤버였던 것이다.
-이승만 다시 보기의 궁극적 목표는?
“1995년 조선일보가 해방50주년을 맞아 ‘이승만과 나라세우기’ 전시회를 대대적으로 열었을 때 저 자신이 이승만을 다시 보게 되었습니다. 이런 분이 왜 매장되어있는지, 왜 대한민국은 ‘건국의 아버지’가 없는 나라가 되었는지, 제가 4.19 데모에도 앞장섰기에 책도 읽고 역사 공부도 좀 했습니다. 그동안 反대한민국 세력들이 조작하고 파괴한 현대사의 왜곡이 얼마나 조직적이고 무서운가를 다들 알면서도 정부조차 속수무책 아닙니까? 현재 나라 전체를 그들이 뒤집어 놓은 각본대로 운영하고 있는 실정입니다. 지금 서울시청 구청사에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는 큰 현수막이 보입니다. 그것을 걸어놓은 박원순 시장에게 ‘역사를 파괴한 자에게 멸망이 있다’로 바꾸라 말하고 싶습니다. ‘이승만 살리기’는 대한민국을 살리는 ‘나라 바로 세우기 운동’이자 ‘국격 회복운동’ 입니다. 건국의 아버지들을 살해한 자손들이 잘 되겠습니까? -지난해 11월 광화문에서 ‘북한 인권법 반드시 제정하라’는 1인 시위도 하셨던데요?
“둘째 딸 인지연이 ‘북한인권법 통과를 위한 모임’의 대표에요. 북한인권법이 국회에 9년 째 계류 중이어서 제정을 촉구하는 1인 릴레이 시위를 펼칠 때 동참한 것입니다. 북한 자유화는 이승만이 하와이에서 숨지는 날까지 울부짖던 민족해방, 독립의 완성입니다.”
-보수꼴통이라고 지탄받거나 협박당하진 않았나요?
“인터넷 기사에 쏟아지는 험악한 악플은 말할 수 없을 정도였지요. 지금은 나아졌지만, 어느 날 출근해 화장실에 가보니 붉은 페인트로 ‘즉시 폐간 안하면 몰살’이라는 낙서가 적혀 있어 섬뜩했던 기억도 납니다.”
“언론정신 기자정신 되살릴 때”
-한국 언론이 공정성을 잃고 진영논리에 빠져 있습니다. 변화를 위한 대안은?
“요즘 한국 언론은 진실보도 원칙이 깨진 듯 참 안타깝습니다. 90년대 이후 정론(正論) 경쟁이 아니라 좌익은 진영논리 싸움꾼으로 변했어요. 종북 이적분자도 진보 완장차고 설치니까요. 메이저 언론 조중동 마저 진상보도-탐사보도를 회피하는 인상입니다..” 언론현상 이야기가 나오자 목소리 톤이 높아진다.
“특종경쟁은 어디로 갔습니까? 지난해 조선일보가 ‘채동욱 검찰총장 혼외자’를 특종하자 경쟁매체들이 다른 특종을 발굴하여 만회할 생각보다 채동욱 측 주장과 변명만 쏟아내지 않았습니까? 지금 선거 열기가 달아오르는데 정당관련 보도 역시 기계적인 균형만 보일 뿐, 내막을 파헤치는 기사는 별로 없습니다. 언론정신 기자정신이 후퇴한 걸까요. 빨리 본연의 기능을 회복했으면 합니다.”
-참 바쁘게 사신다. 여백의 삶을 누리고 싶지는 않습니까? “삶의 여백이란 무엇일까요. 어디에서든지 하고 싶은 일을 하는 것이 즐거움이라면 그것이 여백일수도 중심일수도 있겠지요. 은퇴 후의 삶 자체가 여백이니까.(웃음)”
-은퇴기자들의 노후 활동에 대한 조언은?
“주제넘게 조언이라니요. 사람마다 환경과 취향이 다르잖아요. 숨어있던 재능 발휘 활동이나, 지적 호기심을 잃지 않고 끊임없이 탐구하는 게 정신건강에도 좋을 듯 싶습니다.. 덧붙인다면 젊은이들의 애국심 함양 프로그램 같은 것도 좋겠지요.”
-김은구 회장 출범과 함께 부회장에 선임됐다. 언론인회 활성화 복안과 ‘大韓言論’의 바람직한 편집방향은?
“김 회장님의 구상과 의욕이 대단하시고 선후배님들이 잘 하시고 계시잖습니까. 다만, 현직 기자들에게 주는 글로 교훈적인 말씀들을 많이 남겨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인터뷰를 마친 뒤 정동 언덕을 내려와 큰 길까지 배웅해 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