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인으로서의 경력이 언론인으로서의 경력보다 길어져 언론인으로서의 인생 2막을 얘기하는 것에 다소 쑥스러워 하는 듯 한 전화 목소리를 떠올리면서 유라코포레이션 엄병윤 회장을 판교테크노빌리지 회사로 찾았다.
엄격한 출입통제를 거치면서 속으로 의아해했더니 이유가 있었다.
깔끔하고 세련된 사옥이어서 사무실인줄만 짐작했는데 알고 보니 건물 3분의 2가 600여개의 최신 실험 장비를 갖추고 500여명의 연구원들이 밤낮 없이 연구에 몰두하고 있는 R&D 센터로 사무실은 연구실 한 쪽을 빌려 쓰는 인상을 주었다.
엄병윤 회장의 연구개발에 쏟는 열정과 실제적인 기업경영 철학을 보여주는 일면으로 판단됐다.
회장실 입구에 점화 플러그와 전기 배선 같은 것이 전시돼 있다.
흔히 회사 경영진의 사무실 앞에서 볼 수 있는 그림이나 장식물과는 거리가 먼 이상한 전시품이었다.
국내외 종업원만 2만명 넘어
- 회장실 입구에 전시된 것이 무엇입니까?
“우리 회사의 주력 상품인 와이어링 하네스와 점화 플러그인데 이 제품의 소재와 기능에 대한 개발이 이곳 실험실에서 이뤄지고 있습니다.
와이어링 하네스(wiring harness)는 본래 마차와 말을 연결해주는 마구를 일컫는 말로 엔진에서 나온 에너지를 자동차의 모든 전기, 전자 장비와 연결해주는 기능을 수행하는 현재는 물론 앞으로 개발될 전기차 등 친환경 자동차의 생명줄이 되는 부품입니다.
이런 주요 제품에 대한 연구개발이 이 사옥에서 이뤄지고 있습니다.
이 때문에 이 사옥은 R&D센터가 대부분이고 사무실 기능은 일부에 지나지 않습니다.
오늘날 우리 회사가 나름대로 기틀을 잡고 성공했다는 말을 들을 수 있던 것도 처음부터 지금까지 기본에 충실하고 연구개발을 게을리 하지 않았던 때문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아마도 엄 회장은 사무실을 드나들 때 마다 이 전시물을 보면서 원칙에 충실하고 연구개발로 경쟁하자는 다짐을 하는 것이 아닐까 하는 짐작을 하게 된다.
- 우선 현재 회사의 경영실적을 말씀해 주실 수 있을까요?
“지난 해 우리 회사의 전체 매출액은 국내 1조 8백억 원에 해외 9천억 원 등 모두 2조 원에 조금 못 미치는 실적을 기록했습니다.
국내에 8개의 직영 공장과 25개의 협력업체를 가지고 있고 중국, 베트남, 튀니지, 슬로바키아 등 8개국에 모두 30개의 직영 또는 협력업체를 가지고 있습니다.
국내에 1천6백 여명, 해외에서 2만1천 여명을 고용하고 있습니다.
- 외형만 보더라도 성공한 기업인 대열에 들 수 있겠는데 자신이 생각할 때 이런 성공의 바탕이 된 것이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늘 투명경영과 원칙을 지키고 연구개발을 게을리 하지 않은 결과라고 하겠습니다.
물론 많은 어려움과 시행착오, 시간 낭비와 헛힘을 쏟으면서 얻은 결실이지만 나름 초심을 지킨 보람이기도 하지요.
아마도 언론인으로서 무슨 문제든 끈질기게 파고드는 프로정신을 길렀고 경제기자로서 닦은 소양이 이런 경영철학을 지킬 수 있는 큰 힘이 됐다고 생각합니다.
생계 고민 끝에 자영업 해보기로
- 언론인에서 기업인으로의 변신이 쉽지 않았을 터인데 언제 언론계를 떠났고 무슨 계기로 기업인으로 변신했습니까?
“신군부의 집권계획에 따른 이른바 언론계 숙정작업에 따라 하루아침에 회사에서 밀려나 실업자가 되면서 15년간 몸 담아왔던 언론계를 떠나게 됐지요.
80년 여름 모처럼의 휴가를 마치고 첫 출근을 했는데 해고됐다는 일방적 통고를 받고 회사에서 쫓겨나는 것으로 언론계를 떠나게 됐지요.
65년 대학을 졸업하면서 대한일보 견습 기자로 출발한 언론계 생활은 계속 가시밭길이어서 73년 윤필용 사건에 연루돼 사주가 구속되는 바람에 신문사가 문을 닫아 실직자가 되기도 했지요.
다행히 곧 KBS로 옮겼다가 그 해 11월 전공을 찾아 서울경제로 옮겨 대한일보에서부터 시작한 경제부 기자를 죽 이어갈 수 있어서 실물 경제를 접할 수 있었고 당시 추진되던 경제개발5개년계획에 따른 경제 정책에 대한 안목을 키울 수 있었습니다.
그러다가 하루아침에 숙정이란 엉뚱한 찬바람을 맞고 실업자가 됐으니 그 울분은 말할 수 없었고 생활은 무질서하게 바뀌고 이런 생활이 2~3년 지속되면서 생계를 심각하게 고민하지 않을 수 없게 됐지요.
다 아는 사실이지만 당시 정부는 해직 언론인의 취직 길도 막아 지인이 자리를 마련해줘도 그 회사와 지인에게 피해를 줄까봐 사양하는 일도 있었습니다.
곰곰 생각 끝에 취직을 할 것이 아니라 자영업을 해보자고 결심했습니다.
자본도 없고 경험도 없이 자영업에 뛰어들려는 무모함도 있었지만 오랜 경제 기자로서 실물경제의 흐름을 체득했고 경제 정책과 전망도 볼 줄 안다는 속셈으로 무모한 계획을 세웠던 것입니다.
비교적 적은 자본으로 손댈 수 있고 15년 언론계 생활을 통해 친숙한 인쇄소라면 할 수 있다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신문사 재직 때 대장을 보거나 ‘게라’를 보기 위해 이따금 내려가 본 공장에서 돌아가는 윤전기를 본 것으로 인쇄를 안다고 판단하고 인쇄업에 뛰어들기로 했으니 무식하면 용감하다는 말을 증명한 셈이지요.
우선 경제기자를 하면서 쌓은 인맥을 통해 은행에서 융자를 얻고 자그마한 중고 인쇄기도 구입해 인쇄소를 열었습니다.
처음 인맥을 통한 일감도 꽤 많이 얻어 인쇄소는 아주 잘 됐습니다.
요즘 말로 대박이 나는 줄 알았지요.
그러나 인맥을 통한 수주는 한 두 차례에 그치고 자력으로 영업력을 갖추지 못했기 때문에 그 조그만 인쇄소도 경영에 어려움을 겪기 시작했습니다.
그때서야 윗선과의 인맥이나 지시, 비정상적 접촉을 통해서 보다는 담당 실무자와의 접촉을 통한 정상적 영업만이 지속적인 거래를 보장한다는 깨달음을 터득했고 이후 회사 경영에 원칙과 기본을 지켜 정도경영과 투명경영이 제대로 된 경영원칙을 지키려고 노력해오고 있습니다.
이렇게 시작한 세화인쇄는 지금까지 훌륭한 인쇄소로 운영되고 있습니다.
미국도로 질주 일본 자동차에 충격
- 인쇄업에서 어떻게 제조업 특히 거대 산업의 하나인 자동차 부품 제조업으로 전환을 할 수 있었습니까?
“70년대 초 미국을 방문할 기회가 있었습니다.
우리는 미국의 도로를 질주하는 일본산 자동차에 놀랐고 자동차 산업의 발달이야말로 선진국임을 증명해주는 것이라는 인식을 깊이 받았고 우리나라도 자동차 산업을 일으켜 선진국에 진입해야 한다는 다짐도 했지요.
해외에 나가면 누구나 애국자가 된다는 말이 가슴 속에 와 닿았던 순간이기도 하지요.
이때 얻은 자동차에 대한 막연한 생각이 제조업 쪽에 눈길을 돌리던 나를 사로잡았나 봅니다.
과당경쟁으로 성장의 한계를 벗어나지 못할 영세 인쇄업에서 벗어나 본격적으로 제조업에 손대보자는 결심을 하고 업종을 고르던 중 평소 관심을 가지고 있던 자동차에 눈을 돌리게 된 것입니다.
비록 자동차 본체의 조립 생산까지는 못 하더라도 수 만개에 이르는 부품의 한 가지라도 만들어 보자는 생각에 고른 것이 점화 플러그였습니다.
당시 완성차 업계는 플러그 부품을 한 회사가 독점 수입, 조립하는 것을 납품받아 쓰고 있어 새로운 업체의 납품이 불가능 했습니다.
그래서 미국의 유명한 플러그 메이커인 챔피온사와 끈질기게 접촉해 수입을 할 수 있었으나 완성차 업계는 접근조차 못하고 겨우 자동차 정비 업소에 공급을 시작하는 것으로 첫발을 디뎠습니다.
그러나 단가도 아주 낮은 플러그를 수입 판매하는 것만으로는 성장에 한계가 있다고 판단하고 직접 제조하는 것이 살 길이라는 생각에 미국 챔피온사를 설득하고 접촉해서 부품과 소재를 공급 받고 로열티를 주는 조건으로 50대 50 합작투자 회사를 설립해 직접 생산에 나섰습니다.
듣도 보도 못한 한국의 회사가 세계적인 자동차 부품 회사와 합작투자로 ‘챔피온 플러그 코리아’(현 듀라테크)를 세우고 챔피온이라는 플러그를 생산한 것입니다.
이러던 차 IMF를 맞아 구조조정에 나선 기아자동차가 플러그를 공급하던 자회사의 인수를 제의했고 이를 받아들임으로써 자연스레 기아차에 직접 플러그를 공급할 수 있게 됐습니다.
이후 기아차를 병합한 현대차가 부품구매를 단일화함에 따라 자연스럽게 현대차 납품이 가능해졌고 과거 양대 자동차 회사에 독점 공급권을 가졌던 미국 챔피온의 지분 50%도 인수, 유라테크를 100% 우리 회사로 운용하고 있습니다.”
올바른 경영원칙이 최대의 무기
- 지금은 유라코퍼레이션이 주력 기업이지 않습니까?
“맞습니다.
플러그는 아무리 독점 생산하고 공급한다고 해도 원체 단가가 낮아 성장에 한계가 있고 외형도 크지 않아 다른 곳에 눈을 돌려 성장을 꾀하게 됐지요.
아시다시피 현대의 자동차는 전자제품이라고 불릴만큼 전자부품과 기능이 커지고 있는 것에 착안해서 와이어링 하네스를 개발해 생산, 공급하고 있습니다.
- 얘기를 듣다 보니 엄 회장은 당초 기업인으로서의 자질을 가지고 있었던 것 같은데요.
“기업인으로의 자질이 있는지는 알 수 없지만 분명한 것은 언론인 생활 15년 동안 기르고 닦은 기자 정신과 정도를 걸어야 한다는 자세가 힘들고 어려울 때 마다 나 자신을 채찍질하는 동인이 되어 지금의 나를 만들었다고 생각합니다.
회사 경영에 어떤 어려움이 있더라도 늘 도전하면서 좌절하지 않고 무엇보다 기본에 충실해 오늘을 이룩할 수 있었다고 말할 수 있겠습니다.
이런 자세는 회사의 공개된 경영 방침으로 종업원에게도 늘 강조하는 말이자 회사 목표이기도 합니다.
기업을 경영하다보면 예상치 못한 어려움이나 곤욕을 겪을 때가 있는데 20여년 전 플러그 부품 국산화를 위해 미국에서 중고 오프세트 인쇄기를 30억 원을 주고 수입한 적이 있습니다.
그런데 세관 검사과정에서 중고품이 아니라 새 인쇄기로 밝혀져 관세포탈로 입건됐으나 평소 투명경영과 성실 신고로 신뢰를 보여준 탓인지 당국은 선적 잘못을 쉽게 인정해 주고 소정의 절차에 따라 정상 처리해준 일이 있었는데 평소 심어준 올바른 경영 원칙을 지킨 덕이라고 생각합니다.
“나라사랑, 회사사랑, 인류사랑”
- 그래서 회사의 사훈이 좀 독특하군요.
“우리 회사의 사훈은 ‘나라사랑, 회사사랑, 인류사랑’이고 경영방침은 ‘아끼자, 다지자, 이루자’입니다.
나라사랑, 인류사랑이 거창하게 들릴지 모르지만 회사사랑을 통해 회사를 성장시키고 수입을 늘려 세금을 많이 내면 그 것이 나라사랑이고 나아가 전 세계를 품에 안을 수 있을 것입니다.
이를 이루기 위해서는 작은 목표나 자재, 시간을 아끼고 다져 큰 목표를 이룰 수 있다는 것을 회사원 모두가 다짐하고 실천해 나가자는 경영 방침도 언론계에서 익히고 다진 생활철학의 반영이라고 생각합니다,
- 회사의 다음 목표는 무엇입니까?
“기업은 현재 업계선두에 있고 비록 독점적인 지위를 누린다고 해도 하루라도 경쟁에 소홀하고 기술개발과 혁신을 게을리 했다가는 곧바로 뒤처지고 망할 수도 있기 때문에 어떠한 경우라도 현재에 안주하지 않고 끊임없이 연구개발을 게을리 해서는 안 됩니다.
새로운 계획도 중요하지만 기술개발만이 생명입니다.
부품 개발은 물론 미래 자동차의 발전 방향을 예측하고 선제적으로 대처해 차세대 친환경 자동차, 고도의 IT 자동차 개발에 따른 고전압 커넥터 개발 등을 목표로 끊임없이 연구개발에 힘써야 살아남을 것입니다.
우리 회사는 앞서 말한 대로 전체 종업원의 3분의 1인 500여명이 연구 개발에 종사하고 있고 연구 개발 투자비도 한 해 매출액의 4~5%씩을 투입하고 있습니다.
이런 투자로 현재 쓰고 있는 판교사옥의 대부분에 600여 가지 대규모 실험 장비를 장착해서 수 천 가지의 실험에 매달리고 있습니다.
언론인으로 쌓은 경력 자랑스러워
- 타의에 의해서이기는 하지만 언론인으로서보다는 기업인으로 우뚝 섰다고 해도 좋은데 여전히 언론계에 대해 깊은 애정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언론인과 기업인 어느 쪽이 더 보람 있었다고 생각하십니까?
“언론으로서는 15년을 지냈고 기업을 경영한 것은 30년이 됐지만 두 분야 다 내게는 의미 있는 삶의 터전이었고 당연히 언론인으로서의 나를 스스로도 자랑스럽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앞서도 잠시 말했지만 기자시절 해외에 처음 나갔다가 한국인으로서의 존재감마저 찾지 못했던 뼈아픈 경험이 막연한 나라사랑에 젖어들게 했고 이는 언론인으로서는 물론 기업 경영을 하면서도 늘 마음에 새겨두게 됐습니다.
해외에 나가면 누구나 애국자가 된다는 말아 있지만 나도 언론인으로서 최초의 해외여행에서의 경험이 지금껏 살아오는 동안 내 삶의 바탕이 돼 왔고 계속된 언론인으로서의 경험은 내 삶의 기둥이 되어왔습니다.
특히 오랜 경제기자 경험은 기업 경영에 큰 힘이 된 것은 물론 기업보국이란 나라사랑 정신을 조금이라도 이룰 수 있는 바탕이 돼주어 기업인으로서의 긍지도 크게 느끼고 있습니다.
- 100세 시대라고 일컬어지는 요즘 언론인들은 정년을 다 하더라도 50대 중반이면 직장을 떠나야 합니다. 당연히 새로운 삶을 계획하고 설계해야 하는데 일찍이 인생 2막을 꾸려 성공한 삶을 살아온 선배로서 도움이 될 만한 말씀 좀 해주시죠.
“감히 이런 말을 해도 되는지 모르겠지만 굳이 한다면 여러 차례 말 했듯이 기본과 원칙에 충실하고 무엇을 하든지 너무 욕심내지 말고 스트레스를 줄이라는 말을 전하고 싶습니다.
나 자신도 불같은 성격 때문에 화도 내고 소리도 지르지만 화를 바로 풀려고 노력하고 있고 직원에게 먼저 다가가 인사함으로써 쌓이는 스트레스를 풀고 과욕을 줄이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기업 경영의 동력 가운데 하나가 욕심이고 일에 대한 욕심, 돈에 대한 욕심 등 욕심에는 한이 없지만 그래도 욕심을 줄이고 절도 있는 생활을 한다면 낯 선 사업에서도 주변을 살피며 자제할 줄 알게 되고 나아가 성공할 수 있으리라고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