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뛰며 넘어지며’ 50여년을 언론현장에 몸담고 있는 그는 바람꽃을 닮았다. 희끗희끗한 잔설을 헤치고 꽃샘바람에 맞서며 피는 꽃이다. 끈질긴 생명력으로 바위틈에 뿌리를 내리듯 척박한 언론풍토에서 언론문화의 꽃을 피웠다. 그 주인공은 沈相基 본회 전문위원. 업무를 따지면 ‘인생 2막’이 아니라 ‘인생 1막’의 연장이다.
그는 1936년 충청남도 부여에서 태어나 고려대 법학과를 졸업했다. 1961년 경향신문 견습 3기로 입사하여 사회부·정치부 기자를 거쳤다. 1965년 중앙일보 창간멤버로 스카우트 되어 정치부장·편집국장·출판담당 상무를 지냈다. 1990년 친정인 경향신문 사장을 역임하였다. 대통령 표창(2001년)과 화관문화훈장을 받았다. 여기까지가 ‘인생 1막’의 주요 경력이다.
척박한 땅에 꽃피운 ‘언론문화’
중앙일보 출판담당 상무를 끝으로 신문사를 나와 ‘인생 2막’을 연 것은 쉰세 살. 사업을 시작하기엔 늦은 나이다. 그는 망설이지 않고 도전장을 던졌다. “퇴직금 날리고 길바닥에 나앉으려하느냐”고 주변에선 만류했다. “실패해도 일어설 수 있다”는 자신감이 넘쳤다. 정동 신아일보빌딩에 사무실을 내고 승부수가 빠른 여성지 창간을 준비했다.
‘센스 있는 여성, 젊게 사는 주부’를 캐치프레이즈로 ‘우먼센스’가 1988년 8월 고고의 성을 울렸다. 예상을 뛰어넘는 대박이었다. 초판 5만 부가 말 그대로 하루 만에 동났다. 전화통에 불이 났다. 4쇄까지 12만부 가깝게 찍었다. 국내 잡지사상 창간호 초판 4쇄는 신기록이다. 판형을 키우고 지면 대부분을 컬러로 제작했고, 특종기사가 주효했다. 이병철 삼성그룹회장이 일본에서 얻은 아들 풀 스토리, 가수 조용필 아내 박지숙의 ‘그의 빛나는 갈채 뒤에 나는 버려진 여자였다’는 고백 등 눈길 끄는 기사가 많았다.
여세를 몰아 여성생활지 ‘리빙센스’, 요리전문지 ‘에센’, 육아지 ‘베스트 베이비’, 남성패션 전문지 ‘아레나’, 주간 ‘일요신문’ ‘시사저널’, 초중고교생 만화잡지 ‘아이큐 점프’, 초·중등 여학생만화잡지 ‘밍크’, 10∼20대 여성을 겨냥한 순정만화잡지 ‘윙크’ 등을 잇달아 창간했다. 최근 학습만화 잡지 ‘보물섬’과 국내 최초 격주간 패션잡지 ‘그라치아’를 창간, ‘인생 2막’ 무대를 다채롭고 화려하게 펼쳤다. 이밖에도 한자, 수학 등 학습 잡지를 격월로 내고 있다.
“성공비결은 긍정적 사고”
문화산업의 비즈니스 리더로 우뚝 선 沈相基 서울미디어그룹 회장을 지난달 13일 용산구 한강로 2가에 위치한 서울문화사 사옥에서 만났다. 5층 건물에 회장실은 4층. 선비풍의 잔잔한 미소로 반갑게 맞이한다. 서가엔 주요 자료집과 각종 상패가 빼곡하게 진열돼 있다. 책상 뒤편엔 고향의 상징인 부여 낙화암을 부드러운 곡선으로 그린 동양화가 걸렸다.
“매일 4층 계단을 오르내려 운동되시겠다.”며 말문을 열었다.
“하루 몇 번씩 오르내리니 다리 근육에 도움이 되겠죠. 걷는 게 운동입니다. 매일 저녁 8시 이후엔 1시간씩 걷습니다. 젊었을때부터 등산을 좋아했죠. 골프도 더러 치고 헬스클럽에도 다녀 운동은 많이 하는 편이죠, 50년 넘게 활자를 다루며 스트레스를 받은 탓인지 소화기능이 약한 편입니다.” 매주 발행하는 사내보 ‘용마루’의 깨알 같은 활자도 읽는다. 백내장 수술 후 시력이 좋아 졌다고 한다.
-자회사 5곳과 10여 개의 매체를 관리하시려면 바쁘시겠습니다.
“서울미디어그룹의 모든 매체는 책임경영체제로 운영하고 있습니다. 매주 화요일 아침 일요신문. 시사저널 편집회의를 주재하고, 수요일엔 자회사 CEO와 이사, 본부장 등이 참석하는 회의를 하죠. 매체별로 다양한 이벤트와 행사가 워낙 많아 구두 보고만 받습니다.” 북아현동 단독주택에서 40여 년째 산다는 沈 회장은 아침 6시에 기상하여 조간신문을 체크한 뒤 7시 30분 경 아침을 꼭 챙겨 먹고 9시에 출근한다는 것. 오후에는 필요한 현안을 챙기거나 외출하여 지인들을 만나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를 주로 나눈다고 한다.
-활자신문이 사양화되고 출판 업계의 장기 불황이 이어지는 데, 성공 비결은?
“국내 출판업계가 유례없는 불황을 맞고 있는 것은 사실입니다. 최근 발표된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KPIPA)의 ‘출판산업 동향’을 보니 지난해 신간 발행 종수는 전년대비 5,200여종(7.9%) 줄었다고 합니다. 출판사 10곳 중 6곳은 5종 이하로 발행하여 겨우 명맥만 유지하고 있는 상태지요. 저희도 몇 개 매체는 안정적 수익을 창출하며 성장세를 견지하고 있지만 겨우 현상 유지하거나 적자를 내는 매체도 있습니다. 성공 비결이란 게 특별히 있는 것은 아니고 오랜 기간의 기자생활, 중앙일보 출판담당 상무, 경향신문 사장 등을 맡으면서 쌓은 경험과 노하우, 성공 지향적인 사고로 열심히 일한 덕분이죠.”
그가 출판 상무로 재직하면서 거둔 첫 번째 성과는 ‘여성중앙’ 판매부수와 광고매출을 크게 올려 경쟁지를 따돌리고 1등의 자리를 꿰찬 것이다. 화젯거리를 발굴하고 편집방향을 결정하는 데 크게 기여했다. 월간 ‘음악세계’, 무크지 ‘아름다운 집’, 청소년 잡지 ‘하이틴’을 창간하고 단행본을 잇달아 출간하여 출판국 전성시대를 열었다. 특히 만화가 본격적으로 대접받는 시대가 올 것을 예단하고 만화잡지를 추진했으나 사내 반발로 무산됐다. 그 꿈은 서울문화사에서 성과를 거둬 예측은 적중했다. 만화 붐을 일으키면서 서울국제만화애니메이션패스티벌(SICAF) 조직위원장까지 맡게 됐다.
최종률 전 중앙일보 주필은 “沈 회장은 역설적으로 성공의 열쇠는 좌절 속에 숨어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가 성공한 비결이 있다면 바로 그것이다”고 했다.
외유내강형 충청도 신사
-바쁘신 가운데서도 지난해 자서전 격인 ‘뛰며 넘어지며-올챙이 기자 50년 표류기’(2013년 5월 나남출판사)를 출간하셨습니다.
“저희 세대 언론인들은 누구나 소용돌이치는 격랑의 시대를 현장에서 겪었습니다. 그 당시 취재수첩에 깨알 같이 적어놓았던 내용은 현대사의 물줄기였다는 생각이 들어 기록으로 남겼어요. 언론인이자 기업인으로 뛰다가 넘어지는 좌절도 겪었지만 끊임없이 생각하고 노력하고 시도함으로써 지금에 이르렀다는 사실만큼은 내세우고 싶습니다.”
저서에는 경향신문 사회부 기자 시절의 특종기, 1971년 12월 비상사태 선포 후 국가보위에 관한 특별조치법 의결 현장의 증인으로 호출된 사연, 1972년 이후락 당시 중앙정보부장의 방북 사실을 알고 기사화하려다 중앙정보부 취조실로 연행되어 고막이 찢어지는 고문을 당한 내막, ‘시사저널’과 ‘일요신문’을 발행하며 당해야 했던 시련과 고통도 고스란히 담아냈다. 특히 여의도 순복음교회 장로인 그가 ‘교사모(교회를 사랑하는 모임)’를 결성하여 교회의 불투명한 재정운영과 담임목사의 족벌체제운영의 문제점을 제기해 출교당하는 수모를 겪었다가 복교당한 과정을 기록으로 남겼다. 중앙일보 편집국장 시절, 신군부에 의한 언론계 숙청, 한수산의 연재소설 ‘욕망의 계절’ 필화사건으로 작가는 물론 업무적으로 연락을 주고받던 편집국 간부와 기자들이 악명 높은 ‘빙고 하우스’인 보안사 조사실서 곤욕을 치른 기록 등을 생생하게 담았다.
최학래 전 한겨레신문 사장은 ‘沈 회장처럼 언론계의 노른자위는 다 거친 팔십 줄 노인이 아직도 50년 현역이라면, 그 미소와 싸움기질, 겉으로 웃으며 속으로 창끝을 벼리는 자질이 그 지속의 밑천이라고 보아야 할 것 같다.’며 추천 글에서 밝혔다. 김학준 전 동아일보 사장은 ‘외유내강형 충청도 신사의 올곧은 언론활동 반세기’라고 평가했다.
“이루고 싶은 꿈★이 남았다”
-기자와 CEO의 차이는?
“기자는 취재와 글쓰기가 주요 업무지만, 경영자는 무한책임을 져야 하니까 하늘과 땅 차이지요. 특히 언론과 출판 사업은 부가가치가 높은 분야가 아닙니다. 미래를 예측하는 안목, 추진력, 돌파력, 자금력 등 역량을 고루 갖춰야 한다”고 강조한다. 서울미디어그룹 종사자는 3백여 명으로 인건비도 만만찮다. 그는 “돌다리도 두드려보고 건너듯 무리는 하지 않는다”고 덧붙인다.
“신문사 월급쟁이 시절에는 세금문제 이야기가 나오면 근로소득세정도가 관심사항이었지요. CEO로 사업을 하다 보니 세무조사나 추징금 등이 현실문제로 다가오더라”고 부연한다. 그는 회사 창립 15년 동안 내부자금을 더 만들려고 배당을 받지 않았다고 한다. 그런데 한 인터넷 매체가 엄청난 배당을 받은 것처럼 보도하여 울분을 참지 못하는 일도 있었다고 한다. 명예훼손 소송을 준비했다가 정정·삭제 보도를 받아들여 소송을 포기한 적도 있다며 경영인의 어려움을 털어 놓는다.
-경영철학은?
“언론·출판 사업의 가장 중요한 것은 사람입니다. ‘기업은 곧 사람이다’는 말을 실감합니다. 조직이 커지고 종업원들이 늘어나면 사람의 중요성은 더 말할 나위 없지요. 유능한 인재를 거느릴수록 성공확률은 높고, 그렇지 않으면 실패확률이 높은 거죠” 서울문화사 사원 1호로 입사한 정영애 차장은 25년이 넘는 지금도 비서실에 근무하고 있다고 소개한다. 사람을 아끼는 단면을 볼 수 있는 대목이다.
이밖에도 제품의 품질관리, 시장에서의 경쟁력 제고, 새로운 정보 확보, 신용과 신뢰를 잃지 말아야 함을 신조로 삼아 경영했다고 밝힌다.
-후계구도는?
“건강이 뒷받침 되는 한 움직이려고 합니다. 삼성증권에 근무하던 둘째 아들이 경영전략실장을 맡아 참여하고 있습니다.”
-대한언론인회 발전 방향에 대한 조언을 해주시죠.
“이익 단체가 아닌 만큼 친목도모와 동호회 활성화, 문화 활동에 힘썼으면 합니다. 공익 재단 등의 도움을 받아 해외언론사 시찰 등을 주선하는 방안도 모색해보는 게 어떨는지요”
-아직도 이루고 싶은 꿈이 있습니까?
“가능하다면 ‘시사저널’이나 ‘일요신문’에서 한 발짝 더 나가 조금 더 큰 욕심을 내보고 싶습니다. 케이블 텔레비전도 운영해 보았으니 기회가 주어진다면 다시 도전해 볼 의지는 있습니다. 이와 병행해서 회사의 내실을 다지고 사원들의 삶의 질 향상, 시대변화적응, 성과 지향 조직으로의 변신 등이 중요한 과제가 될 것 같습니다.” 의욕은 여전히 청춘이다.
“인터넷의 발전에 따라 언론의 기능이 갈수록 약해지고 있지만 언론의 역할은 필요하고 누군가가 가야할 길”이라고 강조한다.
“무엇 보다 내가 처음 신문기자를 시작하던 초심을 잃지 않으려고 애쓰고 있다”는 沈 회장은 “비록 老兵이지만 땀 흘려 일하고 노래하며, 전진하는 전선에 머물고 싶다”는 다짐이 긴 여운을 남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