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인은 1933년 6월 5일 경남 함양에서 출생해 경동중고교와 고려대 사학과를 졸업하고 일본 게이오대 신문연구소를 수료했다.
1957년 동화통신사 기자를 시작으로 언론계에 투신한 고인은 동화통신사에서 경제부차장 주일특파원 사회부장 경제부장 편집부국장등의 요직을 두루 거쳤다. 73년 내외경제신문으로 옮겨서는 취재부장 편집부국장 편집국장, 코리아헤럴드 업무국장 등을 역임했고 남북조절위원회 평양본회담을 현지취재하기도 했다. 언론계를 떠나서는 한라그룹 상무이사 홍보실장 전무이사, 한라환경산업 대표이사 부사장 상임고문을 역임했다.
대한언론인회 이사, 관훈클럽 운영위원, 기자협회 초대 부회장 등 언론단체에서 활약한 경력을 비롯해 고대 언론인교우회 초대회장, 코리아헤럴드 내외경제신문 사우회 회장, 고대 사학회 회장 등 사회 활동 또한 눈부셨다. 대한언론인회는 28일 오후 4시 추도식을 갖고 고인의 명복을 빌었다.
송두빈 선배님 영전에
윤익한 상담역(헤럴드사우회 회장)
얼마 전 선배님의 병실을 찾아 뵌 것이 엊그제 같은데 유명을 달리하셨다는 비보를 접하게 되니 그저 황망할 뿐입니다. 저를 보시자마자 헤럴드 사우회 근황부터 어렵게 물어보셨습니다. 긴 말은 선배님께 부담이 될 것 같아 삼갔습니다만 사우회를 생각하는 마음이 읽혀졌습니다. 작년에 헤럴드 사우회 회장직을 물려주신 선배로서의 애정이겠지요.
그토록 강건하고 소신에 찼던 선배님의 평소 모습이 병상에 누워계신 안쓰러움에 겹쳐졌을 때 무엇이라 형언할 수 없는 허탈감이 다가왔습니다.
종횡 무진하던 청년기자 시절의 남겨놓은 숱한 일화들. 1950년 9.28 수복 직후 17살의 소년병으로 참전하여 1953년 휴전 때까지 동부전선 이름 있던 전투마다 무용담을 남긴 역전의 용사. “아군과 적군이 흰 방한복을 입은 채 참호 속에서 뒤범벅이 되었으나 날이 밝을 무렵 상대를 식별할 수 없어 모자를 벗겨 까까중머리이면 적군이고 스포츠머리이면 아군임을 알았다”라는 백병전의 생생한 기억을 전해 들었을 때, 당신이 훗날 보여주신 주저 없이 당찬 모습을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선배님은 전역 후 고려대 사학과를 졸업하고 1957년부터 동화통신, 서울신문 기자를 거쳐 당시 내외경제 편집국장을 지낸 후 한라그룹 부사장과 고문을 역임하셨습니다.
당신은 모교에 대한 애착도 남달라 1991∼94년 중 고려대 사학회장을 역임하였고, 1981년부터 19년 동안 고대 교우회보 편집위원으로 참여하셨습니다. 1933년 경남 함양 출신인 선배님은 한국기자협회 초대 부회장도 역임했습니다.
동화통신 시절 주일 특파원을 지낸 선배님은 일본어와 영어도 능통하여 언론계 활동을 폭넓게 섭렵하였습니다. 선배님은 오랫동안 몸담았던 내외경제에 대한 사랑을 지극하여 코리아헤럴드와 헤럴드경제(전 내외경제) 출신으로 구성된 헤럴드 사우회 초대회장을 지냈습니다. 오늘날 대한언론인회의 활약을 돋보이게 하고 있는 참전언론인회 부회장을 거치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당신은 더 이상 우리 곁에 안계십니다. 이럴 줄 알았으면 귀중한 옛 이야기를 좀 더 많이 들어두었으면 하는 아쉬움이 있습니다. 삼가 선배님의 명복을 다시 한 번 빌 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