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 2막은 인생을 단막극으로 마감하지 않은 이들의 보다 드라마틱한 삶의 이야기다. 드라마는 인생이 아니다. 인생의 갈등을 그리는 예술을 말한다. 그러나 더러는 인생을 드라마 보다 더 극적으로 사는 사람도 있게 마련이다.
- PATA종신회원으로 선정 돼
지난 2009년 4월 17일 마카오에서 개최된 제58차 PATA 총회에서 ‘PATA 종신회원(PATA Life Member Award)’으로 선정된 국제관광업계의 대부 소재필 회우(77·전 Korea Times기자)야말로 지금 인생 제2막을 화려하게 수놓고 있는 바로 그 주인공이다.
지금까지 PATA 종신회원으로 선정된 한국인은 1965년 서울에서 개최된 PATA 연차총회 의장이던 오재경 당시 국제관광공사 총재와 고 오세중 세방여행 회장 그리고 소 회우를 합쳐 단 3명뿐이다.
PATA(Pacific Area Travel Association)는 아태지역 관광인들의 제창에 의해 1951년 하와이에서 창설됐으며 국제 관광산업의 발전을 도모하기 위해 전 세계 73개국의 정부관광기관을 중심으로 구성된 민관합동 국제기구다. 아태관광협회로 불리기도 한다. 한 협회 내에 공공부문과 민간부문이 동시에 가입하고 있으면서 협력관계를 창출하는 유일한 기관으로, 정부‧지자체의 관광사무소‧항공사‧크루즈사‧공항‧호텔‧여행사‧리조트‧홍보기관‧언론사‧조사연구기관‧관광지개발회사‧경영컨설팅회사‧교육훈련기관 등 매우 다양한 회원들로 구성돼 있다. 우리나라는 1963년 한국관광공사가 정부회원으로 이 기구에 정식 가입했다.
소 회우는 국제관광 무대에서의 활동상이 크게 돋보여 ‘한국 여행산업을 이끄는 영향력 있는 인물’로 손꼽힌다. 소 회우가 아주 큰 여행사를 운영하는 것으로 아는 사람들이 많은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다.
- 내년 창간 35주 행사 준비
소 회우의 현직은 여행사 대표가 아니라 한국 최초의 관광업계 전문지 ‘TRAVEL PRESS’의 발행인 겸 회장이다. 산하의 여러 관광전문지를 함께 발행하고 있기도 하다. 소 회우가 ‘TRAVEL PRESS’를 창간한 것이 1980년이다. 올해로 벌써 34년, 내년에 35주년 창간기념행사를 크게 벌일 계획을 세우고 있다.
소 회우는 ‘TRAVEL PRESS’ 외에도 우리나라에서 제일 규모가 크고 오래된 국제관광 박람회(KOTFA)의 공식 일간신문을 1986년부터 현재까지 28년째 꾸준히 발행하고 있다. 이 신문은 국‧영문 혼용 타블로이드 24 ~ 32면으로 조간으로 발행된다.
소 회우는 자신이 만든 회심의 ‘TRAVEL PRESS’를 손에 들고 세계로 뛴다. 그는 관광업계의 여러 직책을 겸하고 있는 국제관광인이지만 이 ‘TRAVEL PRESS’를 세계에 전파하는 이유는 여기에 바로 자랑스런 한국의 모습이 자상하고 아름답게 담겨 있기 때문이다. 소 회우가 자신의 인생에 자긍심을 갖는 아유 중의 하나가 스스로 애국자라는 인식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는 일을 하면서도 한국을 세계에 알리는 이 홍보대사의 역할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 항상 실감한다고 했다.
“일이 힘들 때가 많습니다. 그러나 참 보람있는 일이란 걸 깨닫는 순간 힘이 납니다. 애국한다는 정신없이는 감당하기 어려운 대사가 늘 닥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세계가 한국을 사랑한다는 게 얼마나 자랑스럽습니까. 제가 그 일을 하는 것이죠.”
만약 소 회우의 인생2막을 3D로 본다면 제법 그 튀어나오는 맛이 있을 것이다. 소 회우에게는 낭만적인 모험심이 가득하다. 이런 적극성이 없었다면 오늘의 이런 자리에 추천될 기회도 없었을 것이다.
- 하와이대학서 관광산업 공부
소 회우의 인생1막이 낭만적 주제를 제시하고 있다면 그 2막은 1막과 동떨어진 현실주의로 전환된다. 2막엔 미스터 하와이로 등장한다.
-왜 Mr. 하와이로 불리는지….
“하와이가 제 인생을 바꿔놓은 셈이지요.”
소 회우가 하와이와 인연을 맺게 된 것은 1973년 하와이로 유학을 가면서 부터다. 그곳 하와이 대학에서 6개월간 관광산업 경영학 과정을 이수하면서 세계적 관광석학을 스승으로 모실 수 있게 됐다. 좋은 친구도 만났다. 결실은 그로부터 한 참 후에 맺어졌다. 1990년 하와이 관광청이 한국사무소를 개설하면서 인물을 찾던 중 소재필을 떠올리고 그를 한국사무소장으로 발탁한 것이다.
소 회우는 2005년까지 15년간 하와이 관광청 한국사무소장을 맡고 있는 동안 3가지 빅히트를 치는 행운을 잡았다. 마치 무용담 같다. 그 하나가 암웨이 인센티브 행사 여행자 5,800명을 한꺼번에 하와이 관광객으로 만든 사건이다. 2002년 당시만 해도 미국비자 따기란 하늘의 별처럼 어렵다는 얘기가 나돌 정도였다. 그것도 근 6,000명의 비자를 한꺼번에 받아낸다는 것은 발상부터 기발하거나 혹은 발칙할 정도의 만용이라 할 만했다. 줄을 넣어 봤으나 허버트 주한 미대사는 머리를 흔들었다. 그렇다고 물러설 수 없었다. 하와이 주지사의 등을 떠밀어 미국대사와 담판을 벌였다. 미국에선 정치적으로 주지사의 힘이 세다. 나중에 대통령이 될수도 있는 자리가 주지사이기 때문이다.
정말 기적적으로 5,800명의 미국비자가 발급됐다. 500명씩 끊어서 작업을 했는데도 미국 영사들이 이 때문에 애를 먹었다.
이 대인원을 국적기에 실어 하와이로 수송하는 것도 마치 군사작전을 방불케 했다. 이를 통해 하와이는 하와이대로 돈을 벌고 한국은 위상이 높아졌다. 호텔에서는 스테인리스 스푼과 포크를 실버웨어로 바꾸고 유리컵도 크리스탈로 대체했다. 한국관광객을 크게 우대한 것이다.
-KBS ‘열린음악회’ 하와이 유치
2003년에는 KBS의 인기 프로그램 ‘열린음악회’를 하와이로 유치했다. 미국이 비자장벽을 높이면서 관광산업이 영향을 받게 되자 하와이 신혼여행 특별비자 프로그램을 만든 것도 소재필 회우였다. ‘JP 소’라고 하면 하와이에서 무조건 통하는 이름이다. 지금은 더더욱 그렇다.
능통한 영어를 구사하며 한국을 홍보하는 영한 혼용 관광전문지를 뭉치로 손에 들고 세계를 누비는 그에게는 정말 ‘갈 곳은 많고 지구는 좁다’는 말이 어울릴 듯싶다.
그러나 소재필 회우의 진짜 인생얘기는 여기서 다시 시작해야 한다. 이 인생2막의 프리퀄(Prequel)이야 말로 진짜 반전이 있는 성장드라마이기 때문이다. 애당초 영자신문의 기자로 출발했고 지금은 정통 영어의 글로벌 신사로 통하고 있어 그의 영어실력이 어릴 적부터 뛰어났을 것이라 짐작되지만 알고 보면 실상은 전혀 그렇지 않다. 18살 소년이 대망을 품고 무작정 대전에서 상경 길에 올랐지만 영어라곤 군부대 하우스보이 영어도 배워본 적이 없는 그였다. 그런데 그가 어떻게 영자신문 기자가 된 것일까.
대전역앞 중앙로에 만화가게가 있었다. 매일같이 ‘코주부’ 김용환의 만화를 탐독하는 소년이 다름아닌 소재필이었다. 만화를 좋아했고 존경하는 김용환 화백처럼 그는 만화가가 되고 싶었다.
소년은 김용환 선생을 만나고자 서울로 갔다. 김용환 선생을 만나 덥석 무릎을 꿇고 말했다.
“제자가 되려고 왔습니다.”
“어! 나 (제자가) 있는데….” 퇴짜였다. 그러나 열심은 열심의 결실을 맺는 법이다. 6개월간 꼬박 하루가 멀다않고 주변을 맴도는 그 지극정성이 괘씸해 선생은 마침내 그를 문하로 불러들였다.
김용환 선생이 영자지 ‘Korea Herald'에서 영어사설을 바탕으로 시사만화를 게재하고 있을 때 당시 ’소군‘은 말하자면 그의 조수역을 맡고 있었다. 직책은 편집부 기자였지만 맡아하는 일은 주로 선생의 만화를 나르는 것이었다. 이대로 잘 풀렸으면 그 때의 소군은 지금쯤 시사만화의 대가로 또 다른 인생을 살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여기서 대반전이 일어난다.
- 英字紙 기사로 영어공부
소군은 편집국 한 귀퉁이에서 영어사전과 영자신문을 펼쳐놓고 공부에 몰두했다. 대학도 직장에 있으면서 근무시간을 피해 2부대학을 다녔다. 서라벌예술대학 공예과였다. 나중에 세종대 관광대학원 최고경영자 과정을 마치고 하와이 유학길에 올랐지만 진정한 스승은 영어사전을 끼고 편집국 한구석에서 탐독한 영자지 기사였다.
김용환 선생이 일본의 미극동군사령부로 자리를 옮겨가면서 기댈곳 없는 신세가 된 그에게 뜻밖의 제안이 들어왔다. Korea Times의 이규현 편집국장이 그를 스카우트한 것이다. 이로써 만화와의 인연은 끊어지고 관광기자 소재필의 전성시대가 열렸다.
그의 출입처이기도 했던 70년대 그때 반도호텔은 서울의 축소판이었다. 각국 대사관, 항공사, 여행사, 대기업 사무소 등등 굵직한 것들은 다모여 있었다. 여기서 그는 일본에서 발행되는 관광안내지 ‘This Week in Tokyo’를 만났다. 그에게는 놀라운 발견이었다.
80년대에 접어들면서 한국에도 관광객들이 몰려들기 시작했다. 관광기자 소재필은 이럴 때 필요한 것이 ‘This Week in Tokyo’같은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는 과감히 회사에 사표를 던지고 스스로 관광전문지 ‘TRAVEL PRESS’의 발행인이 됐다. 물론 발로 뛰는 기자도 겸했다. 그로부터 34년이 흐른 지금이다.
소 회우는 그동안 국제SKAL 한국회장, 한국관광언론인클럽 회장, 주한 외국관광청협회 회장 등 관광관계 주요요직을 두루 거치면서 수많은 상을 탔다. 지금 프레스센터에 있는 외신기자클럽도 그의 손을 거쳐 거듭난 것이다. 수많은 상을 탔고 대통령표창까지 받았다.
- 관광인재 육성 제3막 준비
소 회우는 이제 인생3막을 준비 중이다. 그의 후속편에는 또 어떤 반전의 드라마가 엮여질지 사뭇 궁금하다. 짐작컨대 큰일을 한 번 더 칠 것 같은데 이번엔 관광전문기자를 양성하는 한국관광언론인 장학재단을 만들겠다는 것이다. 미래의 관광산업을 짊어질 인재를 선발하는 것에서부터 교육 훈련까지 모두 장학사업으로 책임을 지려하는 것이다. 프로그램이 가동되면 우선 10명 내외의 장학생을 선발해 미국 및 일본에 있는 세계 관광명문학교로 유학시킬 계획이다. 내 이름 석자보다도 한국이 세계적인 관광 선진국으로 도약하는 데 주춧돌이 될 관광언론을 육성시키는 것이 중요하다는 그의 소신은 상당한 설득력을 갖추고 있다 .
관광산업은 국가전략사업이다. 외화 획득뿐 아니라 성장한 한국, 성공한 한국의 모습을 세계에 널리 알리는 국가홍보이자 또한 고용창출의 수단이기도 하다.
“데모만 하면 뭐합니까. 나라가 강해야지요. 그래야 관광객도 많이 옵니다. 여기서 열심히 뛰는 게 애국 아니겠습니까.” 말도 빠르고 몸도 빠르다. 머리회전은 그 앞이다.
“아직도 기자촌에 사십니까?” 그를 아는 사람들이 묻는다. “네. 38년째 살고 있습니다.” 전에는 묻고 대답하기 껄끄러운 질문과 대답이었지만 지금 소 회우는 자랑스럽게 대답한다. 그 환경이 열악하기로 악명높던 기자촌이 이제 은평뉴타운으로 대변신해 최고의 주거환경을 갖추었으니 하는 말이다.
어찌보면 소 회우는 인생의 얼리어댑터이며 반전의 행운까지 타고난 모양이다. 늘 새로이 시도하기에 그에게는 ‘첫’이라는 한 글자가 따라다닌다. ‘JP 소’의 또 있을 그 ‘첫’ 얘기를 인생3막에서 들어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