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이 불편하시다는 이야기는 들었습니다만 이 무슨 청천벽력 같은 비보입니까. 이제 여든을 넘기셨으니 이 100세 시대에 너무나 슬픕니다.
우리는 1957년 서울신문 입사동기생입니다. 신형과 최서영사장 그리고 저와 함께 우리는 20대 초반에 서울신문에 함께 들어왔습니다. 고려대학교 영문학과를 졸업한 신형은 신문기자의 뜻이 있어 서울신문학원에 다니기도 했습니다.
신형은 1963년 동아방송으로 옮겨 방송뉴스부차장, 방송뉴스부장 그리고 주일특파원을 역임했습니다. 이때 우리는 두 번째 도쿄 하늘아래에서 만나게 됩니다. 동아방송 주일특파원으로 온 신형과는 ‘전우’로서 함께 뛰었습니다. 그 중에서 한 가지 이야기를 신형과 관련해서 미안한 마음으로 돌이키고자합니다.
1978년 8월 당시의 소련 땅 레닌그라드에서 열린 세계배구선수권대회에 우리 여자배구선수단이 출전했습니다. 고 안종열 단장이 동향의 고등학교, 대학 선배인 인연으로 내가 풀 기자를 맡게 되었습니다. 당시 소련과 국교가 없는 우리는 직접 전화통화를 할 수 없었습니다. 국회의원 신분인 안단장은 도쿄에 도착하자 마자 나와 연결이 되었습니다.
9월 1일 대소련전에서 우리 여자배구가 이겼습니다. 12명의 특파원들에게 벽에 붙여 놓은 순서대로 이 낭보를 알렸습니다. 서울 본사에서 로켓 벼락을 맞은 신형은 노발 대발하셨죠. 나는 변명했습니다. ‘웃가리(무심히, 멍청하게)’ 빠뜨렸다고. 그러나 먹힐 리가 없었습니다. 이때부터 신형과의 관계는 서먹서먹해질 수밖에 없었습니다. 오늘 까지도 미안한 마음을 지울 수가 없습니다.
우리 공통의 스승 고 이혜복 선생님이 하늘나라로 가시기 한달 전 쯤 KBS TV의 6‧25 특집 ‘TV자서전’에서 서울신문 기자 신형을 거명하면서 ‘사건기자의 본보기’ 임을 말씀하시지 않으셨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