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상목 원로회우가 지난 8월 15일 지병으로 별세했다. 향년 82세. 1934년 경기도 시흥에서 출행하여 언론계와는 1960년 조선일보 교열부기자를 시작으로 인연을 맺은 뒤 1963년 동아일보 교열부로 옮겨 1992년 7월 부국장겸 편집위원으로 정년퇴임했다. 퇴임 후엔 공보처 정부간행물 저작소 전문위원으로 활약했다. 한말글 연구회 회원으로 대한언론인회 자격심사위원회 간사일을 맡아 보았다.
대한언론인회는 8월 16일 정오 김은구 회장을 비롯, 한말글연구회, 대한언론인산악회 회원 다수가 참석한 가운데 추도식을 갖고 고인의 명복을 빌었다.
고 최상목 선배님 영전에
이 병 대(본회회우)
오호애재((嗚呼哀哉)라!
건강하시던 선배님께서 이렇게 갑자기 유명(幽明)을 달리 하시다니
도무지 믿어지지 않습니다. 돌아가시기 한 달 전 문안전화를 드렸더니 “갑자기 머리가 어지럽다” 시면 “곧 괜찮아 질테니 만나자”는 말씀이 저와의 마지막 대화가 되고 말았습니다.
병원에서 병인(病因)을 찾지 못하다가 임파선 암 임을 발견하고 정확히
10일 후 가시다니 너무나 허망하고 아쉽습니다.
선배님은 한마디로 멋지게 한평생 살으셨습니다. 수신(修身)에 엄격하고 철저 했습니다.
어디에서나 몸을 낮추셨고 해야 할 일을 스스로 찾아 솔선 했습니다.
나이 어린 후배에게 반말이나 하대(下待)를 하지 않고 예(禮)를 갖추셨습니다. 모두를 존경 했습니다 특히 제가(齊家)에 성공하셨습니다.
선배님은 초년기인 60년대에 도시락을 갖고 출근하는 등 절약을 해서 이제는 여유로운 노후(老後)를 보낼 충분한 기반을 마련하셨습니다.
3남매 모두 나라의 동량으로 훌륭하게 성장 시켰습니다.
이제 남은 마지막을 멋지게 보낼 수 있는 여건을 모두 갖춰 놓고 홀연 떠나시다니, 가슴이 아픕니다. 선배님은 언론인회에서도 많은 활동을 하셨습니다.
자격 심사 위원회에서 오랫동안 봉사하신 것을 비롯해서 산악회 등에서
지워지지 않을 족적을 남겼습니다.
얼마전 부인과 사별한 동료에게 ′밥맛이 없더라도 먹어야 산다′고 하시면서 ′밥 살테니 나오라′고 하셨다는 얘기를 듣고 가슴이 저렸습니다.
저와는 동아일보사에서 만나 50년 넘게 가까이 모셨는데 허무하게 이렇게
헤어지게 될 줄이야 어떻게 짐작이나 할 수 있었겠습니까?
제행무상(諸行無常)이라더니, 색즉시공(色卽是空),생사불이(生死不二)란
어휘가 환영(幻影)처럼 뇌리를 스칩니다.
최 선배님!
선배님이 좋아하시던 화식집 ′옛 골′과 그 옆 옛 다방 커피집에서의 즐거웠던 만남도 이제 추억이 되고 말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