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호 원로 회우가 지난 8월 5일 별세했다. 향년 91세. 서울대병원 장례식장에서 발인했다. 고인은 1925년 1월 28일 서울서 출생하여 1950년 서울신문
교정부기자를 시작으로 언론계와 인연을 맺었다. 그후 국제신문 조선일보 서울신문 기자를 거쳐 한국일보 경향신문 교정부장 서울신문 교정부장, 신아일보 중앙일보 창간 참여 교정부장, 중앙일보 편집부국장 겸 교정부장으로 정년 퇴직했다.
퇴직 후엔 한국교열기자회 고문, KBS한국어연구회 자문위원, 도서출판 일조각 편집위원, 일간공업신문 편집위원, 대한언론인회 편집위원을 역임했다. 대한언론인회는 8월 6일 고인의 빈소에서 신우식고문, 홍원기 명예회장, 김은구 회장, 그리고 김성배 감사, 정운종 이상호 이사와 고덕환 김윤덕 나용경 조덕일 회우가 참석한 가운데 추도식을 갖고 고인의 명복을 빌었다.
金 湖 부장 영전에
신우식(본회 고문)
편집 부국장을 지내셨습니다만 여기서는 친숙한 호칭대로 김 호 부장이라고 부르는 것을 용서해주시기 바랍니다. 김 호 부장은 서울 토박이로서 1925년 태어나셔서 교동보통학교(오늘의 초등학교)를 나오시고 숭문중학교, 그리고 국학대학전문부를 거쳐 이 대학 국문학과를 졸업하셨습니다.
오랫동안 바깥출입을 못하셨습니다만 이 100세 시대에 조금만 더 사셨으면 그 연세를 채울 수 있으실텐데 너무 억울하고 슬프기만 합니다.
김 부장은 6·25 전쟁이 나던 1950년 서울신문 편집국 교정부 기자로 언론계와 인연을 맺어 부산의 국제신보, 조선일보, 그리고 서울신문에서는 문화부 기자, 교정부 기자를 거치셨습니다. 1956년 한국일보 교정부장, 경향신문 교정부장, 경향신문이 폐간되자 조선일보 교정부 차장, 다시 경향신문 교정부장 1963년 서울 신문 교정부장, 그리고 1965년 창간된 신아일보 교정부장, 그 해 9월에 창간된 중앙일보 부국장 겸 교정부장으로 1981년 정년퇴직하셨습니다. 말하자면 1세대 교정부 기자 교정부장이신 셈이십니다. 그 뒤에도 출판사 일조각의 편집위원, 일간공업신문의 편집위원으로서 교열업무를 꾸준히 맡으셨습니다.
소생과의 인연은 대한언론인회보(오늘의 ‘대한언론’)에 제가 한동안 맡고있던 ‘대신 바로 잡습니다’를 김 부장이 10년 넘게 맡으셨다는 사실입니다.
김 부장은 ‘대한언론인회 30년사’에서 “‘대신 바로 잡습니다’ 10년의 보람”에서 이렇게 쓰셨습니다.
“도하 11개 신문(경향 국민 매일경제 동아 문화 서울 세계 조선 중앙 한국 한국경제에서 오자, 오기를 찾아냈다. ‘한겨레’가 빠진 것은 그 무렵 전혀 한자를 쓰지 않았기 때문이다” “필자가 이 난을 전담하기 시작한 것은 1995년 11월 1일자(회보97호)부터 2006년 12월 1일자(회보247호)까지 10여년에 걸쳐 1,600여개의 잘못된 것을 찾아냈다. 14층의 대한언론인회 사무실과 13층의 언론도서관을 이용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