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수 형! 무균실 유리 칸막이너머로 인사한
것이 마지막이었네요. 후배들과 소주 한잔 나
누자던 약속도 못 지키고 가시다니. 이렇게 키
보드를 두드리며 조사를 쓸 줄이야! 지난해 11
월 중순이던가요? 후배들과 소주 약속 있던
날, 형은 뜬금없이 입원했지요. 어디가 편찮으
시냐는 제 핸드폰 질문에 “건강검진 받는 거여.
걱정 말라!”던 그 한 마디가 아직도 귀에 쟁쟁
한데, 그게 유명을 달리할 마지막 형의 목소리
일 줄 꿈엔들 상상이나 했겠습니까.
너무 기막히고, 허망하고, 안타깝고…불러도
대답 없는 형의 영정 앞에서 복받치는 감정을
억누를 길이 없어 가슴이 터질 것만 같았습니
다. 곱게 화장한 얼굴을 하얀 국화에 묻고 가족
과 벗들의 곁을 떠나간 형! 저승길에서도 엷은
웃음으로 이승에 남은 가족과 후배들을 위로
하듯 다정한 눈빛을 보내던 형! 돌이켜 보면 형
과 얽힌 추억이 참으로 많았지요.
1975년 5월 사수도에서 30년 동안 낙오됐던
오노도시오 발굴 특종을 위해 제 방패막이가
돼주셨던 일, 아직도 마음에 새기고 있습니다.
어디 그뿐입니까. KBS제주방송국 최초의 다
큐멘터리 ‘돌, 바람의 문화 제주’제작을 위해 동
분서주했던 일, 오사카 이쿠노꾸의 제주인 생
활모습을 다룬 ‘현해탄 200리, 일본 속에 핀 제
주의 얼’을 함께 취재했던 추억들이 파도처럼
밀려오는군요. 형! 그때 도쿄로 가는 신칸센에
서 나눴던 형과의 대화 잊지 않고 있습니다. 숙
취로 꾸벅꾸벅 졸고 있는 취재진들에게 “병든
닭처럼 그렇게 졸면, 일본 땅 좋은 풍치를 어떻
게 보냐!”고 하던 핀잔 한 일. 형이 가고 나니
생시처럼 귓전을 맴도는군요.
지난 여름에 후배 정용군과 함께 소줏잔을 기
울일 때만 해도 정정하시던 형이 아니었던가
요. 그럼에도 바람처럼 홀연히 우리 곁을 떠났
으니 참으로 믿기지 않습니다. 인생의 무상감
이란 이런 것인가요. 이제 칠순을 조금 넘긴 연
세, 100세 시대를 구가하는 요즘의 상식으로
보면 청년인 형이 이승을 하직하다니 기막히
고 허망한 마음 가눌 길이 없습니다.
지금 이승에 남았다면 잡았던 소주 약속 다
시 잡아 눈빛 속에 감춰진 형의 은근한 정감을
안주삼아 고향 얘기로 꽃을 피우고 있을 텐
데… 무엇이 그리 급했나요. 사랑하는 가족을
남겨두고 그렇게 홀연히 가실 수 있나요. 형에
게도 그런 매정함이 있었나요. 형은 그렇게 표
표히 떠났지만 우리는 아직 형을 떠나보내지
않았습니다. 가슴에 사무치는 절절함과 고적
감이 휘몰아칠 때는 형을 데려간 하늘의 무정
함을 원망하기도 하지만, 모든 게 부질없는 일
이겠지요. 한번 가면 다시 못 오는 저승길 편안
히 가시고, 이승의 모든 은원 잊으시고, 편히
잠드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