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용우 회우(전 경향신문 논설실장)가 7월 9일 별세했다. 향년 85세. 서울 출생인 고인은 경희대 영문과 졸업 후 영어 교사로 잠시 봉직하다가 기자로 전향했다. 1964년 경향신문 기자로 입사한 후 정치부차장, 심의실장, 논설실장, 사우회장 등을 역임했다. 대한언론인회 논설고문과 6·25 참전언론인회 부회장을 지냈다. 유족으로는 부인 손혜정씨와 아들 이한, 딸 이경씨가 있다.
조사 청석 지용우 형 영전에
청석 지용우 형! 이 무슨 청천병력과 같은 비보입니까. 며칠 전 병실에서 만났을 때도 형은 금시라도 훌훌 털고 일어날 것 같은 모습이었는데, 이렇게 홀연히 가시다니! 인생의 무상함이 이보다 더할 수가 없습니다. 삼가 명복을 빌며 졸지에 상을 당하신 유가족 분들에게 심심한 위로의 말씀을 드립니다. 생각해보니 형과 나는 같은 언론인이었으면서도 출입처가 달라 취재 현장에서 자주 만날 기회는 없었지만 6·25전쟁 당시 어린나이로 참전하여 나라를 지킨 동지였다는 점에서 어쩌면 같은 피를 나눈 친 형제처럼 느껴진 사이 였습니다. 특히 7년 전 형과 함께 6·25참전언론인회를 창설한 것은 우리 둘의 만남 중 가장 값지고 소중한 인연이었습니다. 후진들에게 나라사랑의 정신을 일깨우자는 취지에서 6·25참전언론인들의 생생한 증언들을 책으로 엮고 참전언론인 명패를 프레스센터와 국방부 기자실에 헌액했던 일은 이 순간 형과의 이별을 더욱 안타깝게 하는 값진 추억이 아닐 수 없습니다. 지용우 형은 대학 졸업 후 수백 대 1의 경쟁을 뚫고 경향신문에 입사해 사회부 정치부 민완기자를 시작으로 장장 12년 동안 논설위원과 논설실장을 역임하는 동안 문자 그대로 파사현정(破邪顯正)의 신념으로 정론을 펴신 것으로 정평이 나 있습니다. 형이 경향신문에 연재한 지용우 시평은 불의를 보면 참지 못하는 형의 남다른 정의감, 언제나 투철한 국가관과 안보관으로 무장된 우리 시대 참 언론인으로서의 고매한 인격을 웅변으로 말해주고 있습니다. 형은 대한언론인회가 펴낸 6·25참전기 ‘우리는 이렇게 나라를 지켰다’에서 “6·25전쟁에 참가한 전쟁 영웅들이 나라를 구하기 위해 위국 헌신한 사실은 반드시 기억되어야 한다” 고 역설한 바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형과 같은 전쟁영웅이 아니었다면 오늘의 대한민국이 어찌 있을 수 있겠습니까! 형은 이제 이승을 떠나셨지만 형이 남기신 거룩한 행적들은 후진들에게 영원히 살아 숨쉬는 교훈이 되고 귀감이 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