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우식 전 회장 별세 신우식 고문이 9월 22일 별세했다. 향년 83세. 고인은 경북 김 천에서 1934년 출생하여 서울대 영문과 졸업, 컬럼비아대학원 (신문학 전공)을 수료했다. 대학 졸업 후 서울신문 기자로 입사, 주일특파원, 문화부장과 사장( 1990년 ~ 1992년)을 거친 올곧은 서울신문 맨이다. 평소 온화한 성격에 인품이 온화하여 인간관계가 두루 원만하여 주변에서 두루 칭송을 받아왔다. 대한언론인회 회장, 고문, 국제신문인협회(IPI) 한국위원회 이사, 한국언론 연구원장 등 언론계 요직을 두로 거쳤다. 유족으로는 외딸 신경 순씨가 있다.
조사
스스로 ‘古鐵’이라시던 그 너털 웃음 그립습니다. 신우식 前 대한언론인회 회장을 보내며 삶이 있으면 죽음이 있고, 만남이 있으면 이별이 있는 것은 누구도 피할 수 없는 자연의 섭리라 하지만 형의 부음이 너무 뜻밖이어서 아직도 어리둥절 합니다. 돌이켜보면 형과 나는 지난 1957년 봄 서울신문사 견습기자로 함께 언론계에 들어오면서 금년이 꼭 60주년 회갑이 되는 해가 됩니다. 그 동안 옛 견습동기들이 많이 세상을 떠났지만 형과 나는 그런대로 건강을 유지하면 서 그럭저럭 살아왔는데, 오늘 형을 떠나보내니 이 적막함을 어찌해야 할지 인생의 무상함이 격렬히 느껴집니다. 이제 고인이 된 형은 몇가지 점에서 특이한 족적을 남긴 언론인이셨음을 추모하게 됩니다. 우선 형은 견습기자로 입사하여 한번도 직장을 옮기지 않고 한 우물만 파 면서 성장하여 그 신문의 사장자리에 오른 몇 안되는 언론인의 한 사람이었 습니다. 뿐만아니라 형은 서울대 영문학과를 졸업한 그 전문성을 살려 평생 문화부 기자로 일관했던 전문 저널리스트이기도 했습니다. 일본 특파원 시 절에는 한-일 간에 있었던 고대문화교류의 흔적을 수준높은 기사를 많이 썼고 한일문화교류 촉진에 힘쓴 기자였습니다. 신문사 사장 자리를 물러난 후에는 대한언론인회 회장을 맡아 노후가 쓸 쓸한 퇴역언론인들의 권익을 높이는데 많은 공헌을 했습니다. 그리고 또 퇴역 문화부 기자들의 친목모임인 고철회(古鐵會)를 조직해 많은 활동도 했습 니다. 고철이란 녹쓴 낡은 쇠붙이란 뜻인데, 쇠는 모든 건축물의 핵심재료가 될 뿐아니라 온갖 장식물의 원료로 쓰이는 문화의 상징성이 있어 언론인다운 이름이라는 칭송을 받기도 했습니다. 신우식 사장. 형이 겪어왔던 우리나라의 지난 세월은 한시도 편한 날이 없 었던 격변의 가시밭길이었습니다. 언론계는 더 고단했습니다. 이제 모든 짐 을 내려놓고 하늘나라로 가셨으니 이승에서 이루지 못했던 참된 문화생활을 그 곳에서 맘껏 누리시를 간절히 바랍니다. 거듭 두 손 모아 명복을 빕니다. 최서영 再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