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의 멀티플레이어 오전식 선배 ‘대단한 기자’로 제게 감동주시더니… 이형균 전 경향신문 편집국장
아! 오 선배님! 어이하여 이승을 홀연히 떠나셨습니까? 사람을 워낙 좋아해서 언론계 선배이건 후배이건 만나는 사람마다 그냥 헤어지지 못했던 선배가 무엇이 급해서 무술년 새해가 밝기도 전인 섣달 스무 아흐레 날에 저 세상으로 가셨습 니까? 1965년 태평로 국회의사당에서 중앙일보 기자이셨던 오 선배가 그 많은 정치인들과 재담을 나누는 모습을 눈여겨보며 대단한 기자라고 감탄해 마지 않던 때가 엊그제 같은데 아무런 말씀도 없이 가셨습니까? 서울신문 기자를 스타트로 언론인이 되신 선배는 이전에 육군사관학교 13 기에다가 경찰전문대학을 다니셨고 고려대 법대를 나와 한때는 군 사단장, 경찰국장, 고위 공직자가 모두 친구들이라고 자랑하셨습니다. 박정희 대통령이 존슨 미국 대통령과 회담 후 미육군사관학교를 방문했을 때 풀기자였던 선배님은 한국군 전투부대를 월남에 파견키로 합의한 사실을 알아내어 뉴욕에서 택시를 대절해 워싱턴까지 간 후 기사를 보내 특종을 했 으나 동료 기자들로부터 원망을 들었던 일화를 소개하기도 했지요. 어느 때인가 박 대통령이 공화당 당직자들과 태릉 골프장에서 운동한 후 식사자리에서 오 선배에 관한 얘기를 하자 다음날 당직자들이 대거 오 선배 를 찾는 일도 있었지요. 경향신문 정치부장 시절 돈까스 김형욱 중앙정보부장 자택을 방문해서도 “아니끼(형님) 계셔?”하며 안방까지 무상출입하곤 했지요. 또 정치부원들에게도 ‘동생’이라는 부르며 한 가족처럼 지내기도 했습니다. 저녁 때 회사에 돌아 온 부원의 모습이 후줄근하면 수표 한 장을 건네며 “동생, 이발이나 해” 하시던 모습이 잊혀 지지가 않습니다. 오 선배는 이후락 대통령 비서실장과 워낙 가까워 진관외동 그린벨트에 묶인 땅을 풀어 기자촌을 건립하는데 앞장서서 기자들의 주택문제를 해결 해 주었지요. 피스톨 박종규 대통령 경호실장과도 호형호제하여 박 실장, 김 운용, 신용석, 박갑철씨 등과 함께 세계사격대회를 서울로 유치하는데 공을 세우기도 했습니다. ‘오 참새’라는 별명으로 불리기도 한 오 선배는 언론계를 떠난 후 개인 사업체의 대표를 지내기도 했으나 경기도 덕소에서 화초를 기르면서 대한언론 인회 선후배, 동료들과 술자리를 갖고 한때 잘 나갔던 과거를 되새기며 시간 을 보내셨습니다. 대한민국 고위 인사들과 막강한 인맥을 자랑했고 만나는 사람에게 베풀기 를 좋아하셨던 오 선배 모습을 이제 어디에서 다시 볼 수 있겠습니까? 온갖 번뇌를 잊으시고 평안히 영면하세요.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오 선배는 우리 모두의 마음속에 영원히 살아 계실 것입니다. 삼가 명복을 빕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