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타는 열정 꺼질 줄 몰라
정재도 회우와의 인터뷰 약속을 잡기 위해 전화를 드렸다. 내가 정 회우에 대해 알고 있는 정보는 나이가 여든 여섯이며 교열기자 생활을 오래했고 한글 사랑이 남다르다는 정도였다.
“요즘 어떻게 소일하십니까?”라는 일상적인 인사말을 드리자 전화 저편에서 카랑카랑한 의외의 답변이 왔다.
“저요? 지금 엄청난 일을 하고 있지요. 그리고 많이 바빠요. 가려진 우리말 찾아내고 아름다운 우리말을 새로 만드는 일도 하고 있지요.”
당당하고 확신에 찬 말에 순간 혼란스럽기도 했다. 여든 여섯의 나이에...
서울 마포구 염리동에 있는 아파트에서 만난 정재도 회우는 두말이 필요없는 선비 모습 그대로 였다. 옷차림과 걸려있는 동양화 등 집안 분위기도 마찬가지였고 서재는 온갖 사전류로 둘러 싸여 있었다.
거실에서 마주한 정 회우는 지금 우리 국어사전에서 한자말이 차지하는 비중이 70%이며 우리말은 30% 정도 밖에 되지 않는다며 바른 우리말을 위해 바로잡고 찾아야 할 일이 태산이라고 ‘태산’ 같은 걱정을 털어 놓는다.
우리 말 사전인데도 한자말은 안 쓰이는 것, 못 쓰는 것, 거짓말까지 많은 반면에 우리말은 쓰이는 말도 없는 말이 너무 많다고 한다.
대표적인 예로 제비집이나 푸른하늘 같은 우리말도 우리말 사전에서 찾을 수 없다고 탄식한다. 반면에 같은 뜻의 창공(蒼空)이나 창천(蒼天). 청천(靑天), 벽공(碧空), 벽천(碧天) 같은 한자말은 버젓이 비슷한 어휘까지도 우리말 사전에서 당당하게 20개쯤이나 있는 것이다.
왜 이렇게 됐는가? 조선 총독부에서 조선어 사전을 만들면서 우리말을 경시하는 풍조가 반영된 탓이라는 설명이다.
한자말은 없는 것까지 만들어 싣고 우리말은 있는 것도 싣지 않고 한자말로 둔갑까지 시켰으며 그 후 여러 가지 사전이 나왔지만 맹목적으로 깊은 연구 없이 그 사전을 따랐으며 지금도 그런 생각의 틀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우리말 사전을 한자말 30%로 낮춰 바로잡아야 하고 쓰이는 우리말을 최대한 살리는 정말 값진 실용 우리말 사전을 만들겠다는 것이 정재도 회우의 꿈이다.
그 꿈을 실현하기 위해 지금도 팔순의 정재도 회우는 새벽 1시부터 우리나라와 중국 일본의 갖가지 사전과 고전(古典)을 넘나들며 가려진 우리말 찾기와 잘못된 말 바로잡기에 온힘을 쏟고 있다.
정회우는 새벽이어야 조용하고 전화도 안 오고 영감도 떠오르고 해서 일의 진도가 잘 나가지만 낮에는 일이 안 된다고 한다.
한글의 혼으로 태어나고 자랐다
정재도 회우의 삶은 한마디로 한글과의 연애, 사랑, 결혼 그리고 동거동락(同居同樂)과 헌신이다.
정 회우는 당시 보통학교에 입학하기 전부터 언문을 깨쳤다고 한다. 누구한테 배운 기억도 없는데 마을 동각(洞閣) 노인들에게 ‘류충렬뎐’ ‘됴웅뎐’ 등 언문소설을 읽어 주며 귀여움을 받곤 했다고 한다.
광주사범에 다닐 때는 조퇴하고 충장로에 있는 헌책방인 삼복서점(三福書店)에서 언문으로 된 헌책을 뒤져 탐독했다. 언문과의 사랑에 빠졌던 것이다. 들키면 사상범으로 몰리는데 한글이 지켜 준 것 같다. 사범학교 졸업 후 초등학교 교사로 생활 하던 중 해방이 되자 정 회우는 뛰어난 한글 실력으로 유명해졌다.
정 회우는 당시 호남신문 사장이던 노산 이은상 선생을 만나 1947년 22살의 나이에 호남신문 교정기자로 언론계에 투신했다.
그리고 교정부장의 일을 하던 1953년에 다섯살 연하의 이영배여사와 결혼한다.
혼담이 진행되던 중 친구들이 짓궂게 정 부장은 이미 결혼했으며 그 애인은 한글이라는 농담을 해서 이 여사를 골리기도 했다고 한다.
사모님에게 평생 한글과 연애하고 한글 연구에만 빠졌으며 요즘도 새벽마다 사전만 뒤지는 정 회우가 못마땅하지 않느냐고 물었다. 초등학교 교사출신인 사모님의 대답은 간단했다. “ 괜찮아요. 열심히 하시니까!”
서재에서 성경책이 눈에 뜨이기에 교회에 나가시냐고 물었더니 사모님은 열심이지만 본인은 아니라며 덧붙이는 말이 재미있었다.
“집사람이 보채서 한때 교회에 가봤어요. 그런데 목사 설교를 들을 때도 한글과 사전 생각이 나고 영감이 떠오르면 설교 듣기를 중단하고 메모를 해야 했어요. 목사님과 상담했더니 ‘그 일 끝내시면 꼭 교회에 나오셔야 해요’” 라며 교회 불참을 허락했다고 가벼운 미소를 흘리는 정 회우의 모습이 천진스러웠다.
정 회우는 한글학회 사전편집실 편찬원, 조선일보 소년조선 편집위원 주간, 한글학회 한글맞춤법 수정위원, 땅이름학회 회장, 한말글 연구회장 등 언론과 한글 연구기관과 단체에서 우리말 사랑에 오로지 헌신하며 열정을 불태웠고 지금도 같은 길을 달리고 있다.
그래서 최근에는 우리말 살리는 겨레모임이 수여하는 ‘우리말 지킴이’로 선정되고, 한국어문교열기자협회 어문대상의 영예를 안기도 했다.
정 회우는 외아들인 홍익대 컴퓨터공학과 정균락 교수와 세 딸을 두었으며 모두 건강하게 사회에 기여하면서 잘 살고 있어 기쁘며 8명의 손자 ․ 외손녀들도 자랑스럽게 성장해 행복하다고 말했다.
건강도 나이에 비해 웬만한 편이다. 다만 20여 년 전 과로로 가벼운 뇌졸중이 와서 예전 같지는 않지만 일상생활에는 불편이 없다고 한다.
요즘에도 거의 매일 외출할 일이 생긴다고 한다. 한글학회에는 한 번 씩은 들르는 편이고 사범학교 동창이나 교열기자 관련 모임 등 나들이 할 일이 자주 생긴다고 한다.
하늘공원으로 산책 나가는 일도 거의 일상화됐다고 한다.
올바른 사전 보고 싶은게 소망
모든 일이 다 괜찮은 정 회우에게도 한 가지 고민거리가 있기는 하다.
심혈을 기울이고 있는 우리말 연구의 마무리가 어려울 거라는 우려다.
올바른 우리말 사전의 탄생을 보고 싶은 소망을 이루기 위해 정 회우는 7년째 ‘가려진 한말과 한말 도로찾기’ 자료 모으기에 몰두하고 있다.
우리말과 중국어 일본어 사전을 섭렵하고 목민심서 등 조선시대 각종 문헌 500여 가지를 넘나들며 3만장의 낱말 카드를 만들었다.
앞으로 17만장 정도는 돼야 완성될 것이며 그러자면 30년 남짓은 걸려야 할 텐데 나이 생각을 하지 않을 수가 없어 안타깝다는 정 회우다.
더구나 우리말을 바로 알고 가려진 옛말을 바로 찾아내기 위해서는 우리말 뿐만 아니라 한자말과 일본어에 대한 소양을 갖춰야 하고 그런 인재들 5,6명이 5년 안에 이 일을 끝내야 하는데, 그런일들이 쉽지 않은 현실도 한 걱정이다.
취재가 끝난 뒤에 정 회우가 전화로 연구실적의 구체적인 실례(實例)를 알려주었다.
가려진 우리말 가운데 다시 찾은 말로는 ‘葛吾蕪哩(갈나무리)’와 ‘迷藏(장님놀이)’들이었다.
정약용의 목민심서에서 찾아낸 ‘갈라물이’는 전답을 매매했을 때 매매당사자 쌍방이 나라에 세금이며 학원사의 고사성어 사전에서 찾아낸 ‘장님놀이’는 술래잡기와 비슷하나 눈을 가리고 술래가 상대를 찾는 놀이라는 말이다.
정 회우가 만든 우리말의 예(例) 중 하나가 ‘나라갈피’다. 사물의 갈래가 구별되는 어름이란 갈피의 뜻을 살려 국경(國境)을 풀어쓰는 말로 적절해 보였다.
정 회우가 필생의 사업으로 벌이고 있는 우리말 연구가 잊히지 않고 나라와 사회의 관심을 얻어 그 ‘엄청난 일’이 정말로 엄청난 결실을 얻기를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