趙庸中 선생을 만나다 대담 최희조 편집위원
“언론은 산업 측면에서 위기를 맞고 있을 뿐만 아니라 기자와 기사의 신뢰도가 떨어져 위기를 맞고 있습니 다.요즘 두드러진 현상은 언론사와 기자들의 파당성입니다. 특정 업자나 업계를 대변하는 기자가 저널리스트가 아닌 것처럼,특정 정파나 파당을 대변하는 기자는 저널리스트가 아닙니다.또한 정부 돈을 받으면서 권력으로부터 독립한다는 건 넌센스입니다.기자의 정체성을 확립하기 위해선 언론 초심으로 돌아가 내부의 치열한 자정노력과 현장 중심의 기자 재교육 등이 필요하다고 봅니다.”
언론 외길을 걸어온 원로 언론인 趙庸中선생의 말씀이다.대한언론인회(회장 趙昌化)는 7월16일 한국프레스센터에서 趙선생과 기자의 정체성과 관련한 대담을 가졌다.이날 대담은 文明浩부회장,成樂五 大韓言論편집위원장겸 주간,崔熙助편집위원이 참석,각각 질문을 하고 趙선생이 답변하는 형식으로 진행됐다.
趙庸中 ▲동아일보정경부차장 ▲조선일보정치부장·부국장
(79세) ▲서울신문·경향신문편집국장 ▲한국언론연구원장
▲연합통신 사장 ▲한국ABC협회장 역임
—우리 사회에는 언제부터인가 언론인이나 언론사 간에 전례없는 갈등 양상이 조성돼 ‘벽을 허물자’는 캠페인이 언론단체인 관훈클럽에 의해 전개되기에 이르렀습니다. 그 뿐만 아니라 요즘 ‘기자면 다 기자냐’라고 하는 기자의 정체성에 회의적 인식이 언론인들 사이에 팽배합니다. 언론인은 모름지기 어떠해야 하고,그 정체성을 확립하기 위해선 어떻게 해야 할지,말씀을 들어보기 위해 趙庸中선생을 모셨습니다.
“학자도 아니고 체계적인 지식을 갖고 있지도 않으며 현업을 떠난지도 오래됐습니다.그래서 요즘 돌아가는 언론계 내부의 일은 잘 모릅니다.그러나 오래 전부터 저널리즘의 위기를 강조해 왔습니다.작은 목소리였습니다만,그건 대체로 두 가지 큰 줄거리입니다.
첫째는 언론 산업면의 위기입니다.몇 년전 영국의 경제전문지인 이코노미스트가 ‘저널리즘의 죽음’이란 내용의 칼럼을 다룬 적이 있습니다. 프린트 미디어는 몇 년이 못가 죽을 것이라는 주장이었습니다.정확하다고 할 수는 없지만 아무튼 산업으로서의 언론이 대단히 위기라는 사실을 강조했다고 봅니다.
또 하나는 언론산업 종사자들로서 저널리스트들의 직업윤리라 할까,신용면에서의 위기입니다.기자와 기사의 신뢰도가 형편없이 떨어졌다는 사실입니다.신문과 방송을 막론하고 말입니다.그 원인은 신문 방송에다 인터넷매체까지 미디어가 너무 많아진 반면 파이는 줄어 산업기능을 제대로 못해서 빚어지는 위기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훈련을 제대로 받지 못하고 소양도 없는 사람들이 기자 행세를 합니다. 심하게 얘기하면 입에 풀칠도 하기 어려운 보수를 받으며 기자 명함을 내밀고 다닙니다.그래서 취재원들이나 기자들의 실상을 조금이라도 아는 사람들에게는 ‘너도 기자냐,네가 무슨 기자냐’,하는 좋지 않은 인상이 들게 하지 않나,봅니다.
요즘에 와서 더욱 두드러진 현상은 기자들의 파당성입니다. 특정 정파를 대변하는 기자들이 양산되면서 기자들의 신뢰도가 추락하고 저널리즘이 위기를 맞고 있습니다. 말하자면 정치 파트 기자 중에서 ‘정치 기자’가 기승을 부리는 반면 ‘정치부 기자’는 힘을 잃는 양상입니다.파당에 몰입돼 기자명함을 갖고 다니며 정치 하는 기자가 양산되고 있다고 외람되게 생각합니다.그래서 기자로서의 신뢰도 잃고 언론산업의 발전도 이루지 못하고 있다,이렇게 말씀드리는 겁니다.”
—기자의 정체성에 대해 좀 더 구체적으로 말씀해 주시죠.
“앞에서 기자의 파당성을 말씀드렸습니다만,기자가 어떤 정파를 대변하는 한 저널리스트가 아닙니다. 특정 업자나 업계를 대변하는 기자가 저널리스트가 아닌 것처럼 특정 정파나 파당을 대변하는 기자는 저널리스트가 아니라는 점을 강조합니다.손태규교수가 관훈저널 여름호에 언급한 미국의 허친스보고서에 나와 있는 내용 한 가지를 소개합니다.미국에서도 돈을 많이 번 사업가가 어느 날 명예욕을 채우기 위해 언론사에 손을 뻗치는 사례가 많은데 그에 관한 코멘트입니다.
‘미국의 신문 발행인들은 너무 자주 저널리즘보다 다른 분야에서 돈을 번다.그는 권력과 명예를 추구하는 부유한 사람이며 컨트리클럽 콤플렉스(주:상류층에 대한 콤플렉스)를 가지고 있다.발행인은 신문 편집 쪽은 거의 모르지만 그 지역에서 유망한 사업가 중 한 명이 된다.그는 신문을 공공서비스 기관으로 보기보다 우선적으로 사유재산으로 간주한다.’
보고서는 이러한 비판이 모든 발행인에게 보편적으로 적용될 수는 없을 것이라고 덧붙이고 있습니다.
지금 한국 언론계에도 많은 부분이 그런 게 아닌가,그런 생각이 듭니다.
장사를 해서 어느 정도 돈을 번 사업가가 부는 쌓았지만 자신의 명예욕은 충족시키지 못해 그 아쉬움을 덜기위해 언론사에 진출하고 저널리스트에 편입됩니다.그래서 좀처럼 가까이 닥아가지 못했던 고위 공직자를 쉽게 만날 수 있는 위치에 올라갑니다.궁극적으로는 언론을 자신의 업체 이익 방패막이로 이용하게 됩니다. 거기서 무슨 저널리즘으로서의 사명감이 우러 나올 수 있고 기자의 정체성을 말할 수 있겠습니까.
방송사나 언론사 종사자들이 모두 저널리스트라고 할 수 없듯이 어느 쪽이 진짜고 아닌지,엄밀히 구분해야 하지 않나,그런 생각도 합니다.언론연구원장 시절에 아나운서는 언론인이 아니라고 말했다가 아나운서협회 대표들의 항의 방문을 받아 곤혹을 치룬 적이 있습니다.아나운서가 뉴스를 전달하는데 써준 것만 읽는 게 아니지 않느냐,어째서 언론인이 아니라고 했느냐며 따지는 거였어요.
언론인의 정체성을 확립하기 위해서 저널리스트들의 내부 자정 노력이 절실합니다.
—PD는 어떻습니까.
“방송기자와 PD 관계는 신문에서 이해하기 어려운 측면이 있다고 봅니다.PD는 독립된 분야로서 발전할 수 있습니다.문제는 한국의 저널리스틱한 PD가치가 주관적이며 의도한 방향으로 작품을 만든다는데 있습니다.일방적 얘기를 방송한다는 게 이른바 PD저널리즘의 큰 단점입니다, 이걸 극복해야 합니다. 기자 신용 추락의 최대 원인이 기사의 객관성과 중립성 독립성이 떨어지기 때문이란 지적이 지배적입니다. PD사회에 있어서도 취재보도에서 요구하고 있는 기준을 엄격하게 적용하고 있는지,만약 그렇지 않다면 더욱 차이가 생기는 게 아닌 가 봅니다.”
—기자들의 처우 문제에 대해선 어떻게 보십니까.
“제대로 된 급여체계를 갖고선 지탱할 수 없는 신문사가 적잖게 늘어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거기엔 여러 가지 원인이 있겠지만 신문의 성장속도가 일반 기업에 비해 크게 뒤지기 때문이 아닌가 봅니다.그렇다 하더라도 정부가 언론발전을 위한다는 명목으로 지원한다는 건 넌센스입니다.스웨덴이 어떻게 한다더라며 말도 안되는 논리를 강조하는 소장 학자가 있는 줄 압니다.그러나 정부에서 재정자금으로 신문사를 도와줘 결과적으로 기자들이 월급을 더 받을 수 있다면 그런 저널리스트가 떳떳하겠습니까.정부 돈을 받으면서 권력으로부터 독립한다는 건 넌센스입니다.독립재정 확보는 언론사 책임이지,정부나 정치의 문제가 아닙니다.어디까지나 신문사 사주의 책임입니다.”
—언론사 간의 갈등문제에대해선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과거 언론사간의 경쟁은 다분히 애교가 있었다고 봅니다.그러나 지금은 정치적 이해관계 때문에 파당을 짓고 언론사 간에 선의의 경쟁이 아닌 갈등과반목, 대결양상을 나타내고 있습니다.기자들까지 덩달아 거기에 휩쓸려 가는 모습입니다.이런 현상이 빨리 사그러들 것 같지 않아요.언론 초심으로 돌아갈 수만 있다면 모를까, 답답하고 안타까운 현실입니다.”
—언론사간의 벽을 허물 수 없을까요.
“마찬가지지요.단시일 안에 그렇게 하기는 어렵지 않겠어요.일례를 들어 공채에 의한 기자수습제도와 순혈주의가 기자들의 언론사간 이동을 어렵게 하고 있어요.공채제도가 일반화 하기 전에는 기자들의 신문사 이동이 아주 빈번했고 자연스러웠어요. 수습제도와 순혈주의가 좋은 점도 많지만 언론사간 벽을 만드는데 일조하고 있어요.오늘 날 언론사 간의 벽이 정파성 때문에 생성된 측면을 더 강하게 꼽는다면 기자의 신뢰회복문제와 마찬가지로 언론 내부의 자정 노력에 따라 시간이 지나면서 벽도 점차 사라지지 않을까,생각합니다.”
—요즘 기자들의 취재활동이나 기사작성,보도태도에 대해선 어떻게 평가하십니까.
“요즘 기자들은 참 바쁘겠다고 생각합니다.뉴스 소스(취재원)가 많아졌으니까요.기자들의 교육수준이나 견문도 그 전보다는 높아진 것 같습니다.기사의 어휘와 같은 경우도 궁리를 많이 해서 골라 쓰는 것 같아 좋아 보여요.그러나 최근 기자들의 기사에는 저돌적인 면이 덜하지 않나 싶어요.다투기도 하는, 그런 저돌성이 부족하지 않은 가,하는 점 입니다.매끄럽게 쓰면서 문제점을 얘기하는 것 같지만 과연 기자 자신이 취재해서 쓰는 건지,아니면 그냥 자기 머리로 쓰는 건지,현장의 문제점을 쓰기 보다는 기자가 생각하는 문제점을 쓰는 건 아닌지,그런 지적입니다.
또 하나는 기자가 자신에게 제공되는 무수한 정보만 갖고 기사를 쓰지 말고 실제로 그 내부에서 벌어지는 속 알맹이를 파헤쳐 기사화 해야 하는데 언론에는 그것이 잘 안 나온다는 사실입니다.미국 워싱턴 포스트의 컬럼니스트 데이비드 브로더(David Broder)가 왜 ‘언론의, 언론에 의한, 언론을 위한 기사를 쓰거나,언론인 만이 알 수 있는 얘길 갖고 기사를 쓰면 안 된다’고 피력했는지,새삼 그 의미를 되새기게 합니다.”
—후배 기자들에게 들려주실 말씀을 해주십시오.
“옛날엔 기자들에게 지사정신이 있었어요.특정 정파를 대변한다는 건 상상도 할 수 없었죠. 요즘엔 정보를 모두가 공유하는 세상이 됐어요.그러니까 정보를 모르는 사람을 향해 기사를 쓴다거나 전문가 연(然)하면서 기사를 쓴다면 그건 기자의 착각일 수 있습니다.기자가 조금 빠를 수는 있지요.지난 번 천성관 검찰총장 내정자의 자진사퇴를 몰고 온 인사청문회 때 박지원 의원은 자신이 입수한 근거 자료를 바탕으로 천내정자가 거짓말을 한 걸 들춰내 보였는데 왜 언론사는 모르고 있었는 가,하는 점을 아쉽게 생각합니다.
기자는 자신보다 더 잘 아는 사람이 기사를 본다는 전제아래 기사를 취재보도해야 합니다.그러려면 전문적이고 이해하기 어려운 내용을 전문가가 보더라도 아주 쉽게 기사를 썼다는 평가를 받을 수 있을 만큼 기사를 쉽게 쓸 수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앞서도 얘기했지만 언론사와 권력은 유착해서는 절대 안 됩니다.또한 기자들의 재교육이 필요합니다.그것도 커리큘럼 교육이 아닌 현장 중심의 재교육을 강화해야 합니다.”
정리=崔熙助편집위원(중부대초빙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