宋庸植(78) 한국지역정책연구원 이사장은 “늘 인생은 지금부터라는 자세로 열성적으로 산다”고 말한다. 하이 톤 음색에 자신감이 넘친다. 팽팽한 피부에 반듯하게 빗어 넘긴 검은 머리칼, 진초록 넥타이는팔순을 목전에 둔 나이가 믿기지 않을 정도로 ‘쿨~’하다.
서울대 법대를 졸업한 송 이사장은 1959년 합동통신 기자로 언론계에 첫발을 내딛었다. 특신부, 경제부, 정치부 기자, 사회부장과 편집국장을 거쳐 1980년 언론통폐합이후 이듬해 연합통신 초대 편집국장을 지냈다. 1983년 연합통신 상무를 지낸 뒤 1985년 12대 국회의원(민정당 전국구)으로 정계에 진출했다. 민자당 국가평가위원회 부위원장, 프레스센터이사장(1990~1993년)과 언론중재위원을 역임한 뒤 20년 째 한국지역정책연구원의 견인차 역할을 하고 있다.
지난 8월 19일 오후, 서초구 논현동 사무실에서 송 이사장을 만났다. 차 한잔 마실 겨를도 없이 질문을 하기도 전에 한국지역정책연구원의 설립 취지와 활동 내용을 설명한다.
“우리 연구원은 국가발전을 위한 정치, 경제, 사회, 외교, 통일, 지역균형발전등 주요정책을 분석하고 연구하는 정책전문연구기관입니다. 지금까지 160여 차례에 걸쳐 정책토론회와 세미나, 간담회 등을 열어 정책 대안을 제시해 왔습니다.” 정치적 중립을 지키며 지역균형발전과 지역감정해소에 역점을 두고 연구원을 이끌어 왔다고 한다.
정책토론회 주제가 다양하다. ‘글로벌경제와 한국경제’, ‘세계경제의 불황과 한국의 대응과제’ ‘동북아 정세와 북핵문제’ ‘21세기를 대비한 건설교통 정책방향’ 등 포괄적이고 광범위하다. ‘삶과 죽음의 극복’ ‘웰빙웃음과 건강’, ‘골프 테크닉과 멘탈’ 등 삶의 지혜, 건강, 취미생활 등의 주제도 눈길을 끈다. 특히 지역 순회 간담회를 통해서는 ‘제주발전 다시 생각한다’, 호남권의 특구 설정 방안‘ 등 그 지역의 현황을 집중 조명했다. 강사진 또한 관계장관과 교수, 주한 미국대사 등 외교관, CEO와 의사 등 각계 각층의 전문가들을 초빙했다.
정책대안 제시…회원 450여명
-회원은 얼마나 됩니까?
“450여 명 쯤 됩니다. 상임위원은 238명으로 기업인, 국공영기업체장, 경제계 인사가 대부분이죠. 재벌그룹 보다 중견기업, 중소기업 CEO들의 참여가 많은 편입니다. 연구위원은 86명으로 교수 등 학계와 연구기관 인사들이 많고요. 자문위원은 130여 명으로 관계, 언론계, 주요 사회단체 기관인사, 전 현직 장관과 전 현직 국회의원들이지요.” 1990년 1월 송 이사장 주도로 20여 명의 정․관계 인사들이 모여 발기인모임을 가졌고, 초창기 120여 명의 회원들이 십시일반으로 회비를 갹출하여 결성했으며 사단법인으로 거듭났다. “10년이 지나자 회원들이 연로해진 만큼 젊은 회원과 여성회원을 영입하여 조직에 활력을 불어넣고 있다”고 한다. “회원상호간이나 나이든 회원과 젊은 회원들 사이 소통의 가교 역할을 하여 보람을 느낀다”고 덧붙인다. 지난 1월 27일 서울 하얏트호텔에서 한국지역정책연구원 창립20주년 기념식을 성대하게 열었다.
-친교모임도 활발한 것 같은데요?
“하이쇼셜사교클럽인 셈이지요. 분과위원회별로 조찬 모임 등을 열어 커뮤니케이션 기회를 자주 갖지요. 연간 2~3회 정도 해외연수를 통해 해외정보산업 문화시설 등을 둘러봅니다.” 골프모임인 ‘지연회(한국지역정책연구원 약칭)’는 매월 셋째 주 뉴서울CC에서 호쾌하게 샷을 날리며 건강과 친목을 다진다는 것.
-운영비도 만만찮을 텐데…, 회보는 발행하는지요?
“회비로 운영하여 경비가 빠듯하지만 정부지원은 받지 않고, 정부용역도 하지 않습니다. 초창기엔 정책연구지와 여론분석 자료집을 발간했으나 경비절감차원에서 회원 동정 위주의 소식지만 발간합니다.”
-정책 대안이 실제 정책에 반영되는 경우는?
“화물연대 파업이나 의료복지 등 현황논의 등 의견을 취합하여 학계의 자문을 받은 뒤 해당기관에 전달합니다. 일부 반영되기도 하고, 검토해 보겠다는 회신이나 고맙다는 전화통보를 받기도 합니다.”
대법판례 단독보도 ‘송 판례’ 별명
-대학 졸업 후 합동통신 입사까지 3년 공백이 있던 데…
“유학을 갈까, 외무고시를 칠까, 망설이다가 언론사시험을 쳤어요. 아나운서도 관심 있었으나 당시 경향신문과 합동통신에 합격하여 어디를 갈까 선배를 찾아가 자문을 구했죠.” 그 선배는 순회특파원 등 해외취재기회는 통신사가 더 많다고 권해 합동통신에 입사하게 됐다는 것.
-첫 근무 부서인 특신부는?
“해외토픽과 생생한 지구촌 포토뉴스를 다루는 부서로 재미를 느꼈지요. 경제부, 정치부 등을 거쳤지만 혁명재판부, 법원 등을 출입하며 사회부기자로 많이 뛰었습니다. 특히 대법원의 권위의식으로 취재장벽이 높던 시절, 대법원판례를 단독 보도하는 횟수가 잦아 ‘송 판례’란 별명을 얻기도 했지요.”
-가장 기억나는 특종이나 기사는?
“1978년 7월 합동통신 이실(전 경향신문 주필) 기자가 특종을 터트린 서울 압구정동 ‘현대아파트 특혜분양사건’은 파장이 무척 컸습니다. 유신정권이 극에 달하던 시절이라 편집국장으로서 이실 기자의 신변보호를 위해 우선 피신시켰지요. 그 뒤 청와대 사정수석 등에 연락하여 특혜분양의 전모를 밝히라고 촉구했어요.” 결국 청와대는 순순히 사실을 인정했고, 검찰의 조사를 통해 전모가 세상에 알려지게 됐다. 정․관계 고위 공직자 등 모두 650여명이 현대측으로부터 뇌물성 특혜분양을 받은 것으로 드러났고, 이 사건에 연루된 언론인들도 30여명이나 됐다. “하지만 합동통신 연루자는 1명도 없어 오해를 사기도 했다.”고 회고한다. “이실 기자가 기자협회상을 수상하는 자리에 사건의 단초를 제공한 정주영 현대그룹 회장이 참석하여 “송 국장, 축하해요" 인사하기에 ‘통이 큰 분’이라는 인상을 받았다”고 덧붙인다.
-요즘 언론의 문제점은?
“세상은 빠르게 변하는 데 언론내부는 오히려 변화에 둔감하다는 느낌이죠. 언론인 재교육을 통해 전문성을 강화하고, 다양한 정보를 습득하는 게 중요합니다. 전문성이 부족하기 때문에 무책임하게 여론을 오도하는 일이 자주 발생하지요.” 선정적인 기사 남발, 심층취재 역량 부족, 국민 속에 파고 드는 공통 인자 부족 등을 지적하며 “언론의 신뢰확보가 무엇 보다 절실하다”고 강조한다. “언론중재위원 시절에도 느낀 점이지만 확인 안 된 ‘카더라 식 보도’로 오보가 많아 중재위를 노크하는 경우가 다반사”라고 꼬집는다.
-후배들에게 당부하고 싶은 말은?
“내실을 다지고 스스로를 돌아 볼 줄 아는 자기 통찰이 필요합니다.” 언론인 후배 뿐 아니라 한국지역정책연구원의 젊은 회원들 가운데도 사업에 실패하거나 인생의 고비를 맞아 실의에 빠지거나 우울증에 시달릴 때 인생상담을 통해 “오늘의 시련은 소중하다. 오늘을 딛고 일어서라”고 격려하면 ‘힘이 솟고 용기가 생긴다’고 하여 보람을 느낀다고 말한다.
술, 담배 못해도 ‘분위기 달인’
-정계에 진출하게 된 동기는?
“민정당 전국구 직능단체대표로 12대 국회의원이 됐어요. 언론계에서는 신문사 출신 조선일보 최병렬, 방송인 KBS 강용식, 그리고 통신사 출신으로 저가 선정됐지요.”
-의정활동은 어느 분과위 소속이었나요?
“민정당내에서는 국책평가위원이었고, 국회에서는 재무위에서 활동했어요. 기업 자금지원 안건이 상정되면 대기업 보다 중소기업 지원 폭을 늘리라고 주장하여 미운 털이 박히기도 했고, 힘이 밀리면 수정안을 제시하여 정치적 절충안을 마련하기도 했어요”
-한국프레스센터 이사장 시절 역점을 둔 사업은?
“언론기관 사이 경쟁과 반목이 심해 상호 소통이 부족하던 시기였기에 편집인 모임 등 주기적인 회합을 주도했어요. 광고 부서를 신설하여 정부 광고를 직접 제작하는 등 시스템 구축과 제도보완에 주력했습니다.” 언론인 해외연수를 늘리고, 당시 프레스센터 내에 중국요리를 추가하여 식사메뉴 다양화에도 힘썼으며, 근무기강 확립을 위해 최초로 출입 체크카드 시스템을 도입했다고 한다.
-무척 바쁘게 사시는 데 건강관리는?
“아침에 일어나 스트레칭을 40여 분 하고 나면 몸이 한결 유연해 집니다. 조찬 모임이 있을 때는 오전에, 점심 약속이 있는 날은 오후에 짬을 내 헬스클럽에서 2시간 안팎 근력강화 운동을 하고 가끔 필드에 나가 골프를 칩니다” 젊은이 못지 않게 탄탄하다며 발목을 살짝 보여준다.
-술과 담배는?
“전혀 못합니다. 술은 못 마셔도 잘 놀지요. 노래면 노래, 춤이면 춤, 유머는 유머대로 분위기를 잘 맞춰 ‘분위기의 달인’이란 소리를 듣지요”
송 이사장은 중매 결혼한 林秀姸(75) 여사와의 사이에서 태어난 1남 2녀를 훌륭하게 키워 자식농사도 잘 지었다. 장남 錫俊(45) 씨는 현대자동차 차장, 장녀 貞旼(43) 씨는 중학생과 초등학생 자녀를 둔 주부, 차녀 貞倫(40) 씨는 스페인어 통역사로 일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