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 말 정몽주의 ‘丹心歌’와 이방원의 ‘何如歌’를 패러디하여 쓴 崔永定 본회 원로회우의 시조 ‘골프 丹心歌’와 ‘골프 何如歌’이다. 국내 1호 골프기자인 최 회우는 골프 시조라는 새로운 형식으로 ‘핀 向한 一片丹心이여’를 최근 펴냈다. 80세 기념 골프 시조집 출판기념회는 지난 4월 18일 호텔리츠칼튼서울 그랜드볼룸에서 조촐하게 열렸다. 나이를 잊은 채 왕성한 집필활동을 하는 그를 지난 8월 10일 낮 서울 용산구 서계동 집필실에서 만났다.
비좁은 계단을 4층까지 걸어올라 집필실에 들어서니 국내외 골프서적들이 벽면에 빼곡하다. 지금까지 모은 책이 3000권이 넘는다. 건장한 체구에 건강미가 넘친다. 집무실 출입구 벽에는 ‘바람의 파이터’로 잘 알려진 최배달(1922~1994)이 1951년 황소와 세기의 격투를 벌인다는 일본 순회공연 낡은 포스터가 붙어있다. 최배달의 본명은 최영의, 최 회우의 친형이다. 태권도 9단, 공수도 9단, 유도 5단, 중국 남권, 태껸 등 각종 무술에서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실력의 소유자. 전 세계를 돌며 100회 이상 벌인 다양한 무술 고수와의 대결에서 모두 승리했다. 최 회우 또한 유도 3단에 씨름판에서 황소를 탄 무골형이다.
#시조운율에 골프 접목 팔순기념 시조집
-골프시조집을 펴낸 동기는?
“골프와 시조의 행간을 재미나게 해보자는 의도로 시조 운율에 골프를 접목시키는 시도를 해봤습니다. 골프에 얽힌 애환을 쉽게 풀어 써보자는 의미지만 시조형식에 글자 수를 맞추려다 보니 다소 매끄럽지 못한 점이 있어 ‘시큰둥 시조’라고 주석을 븥였어요” 라운드가 잘되면 ‘노세노세 젊어 노세…’ 라운드가 엉망이면 ‘…석양이 재넘어가노니 임자 그려 우노라…’ 등을 예로 들며 “골프는 시조적이고 시조는 골프스럽다”고 말한다.
-40년 넘게 우리나라 골프 발전 과정을 지켜 본 골프계의 산 증인이다. 골프실력은?
“1987년 호주에서 홀인원을 한 적이 있어요. 7번홀(파3․121m)에서 7번 아이언으로 친 공이 핀 방향을 조금 벗어났지만 그린에 떨어진 공은 경사를 타며 핀 쪽으로 5m 정도 옆으로 곡선을 그리며 휘더니 홀로 빠져 들었죠. 취재를 통해 많은 홀인원을 구경했지만 정작 자신의 홀인원은 큰 감흥을 받지 못했다”며 웃는다. 그는 잘 나가던 시절 핸디캡 10, 베스트스코어 76타, 프로골퍼를 능가하는 장타자로 알려졌다. 조선일보 입사동기이자 도서출판 삶과 꿈 대표 김용원 씨는 “최영정과 필드에서 플레이를 해본 사람들은 그의 올곧은 매너와 교과서적인 스윙폼에 놀라게 된다”며 한 칼럼에서 소개했다.
-‘이것이 골프 매너다’라는 저서도 펴냈다. 골프에서 매너란 무엇인가?
“영국이 낳은 명 골퍼 에이브 미첼은 ‘골프에서 매너가 첫째이고 스코어는 둘째이다. 그리고 그것은 헌법이다’는 명언을 남겼지요. 또 ‘볼을 잘 못치는 사람과 함께 라운드를 할 수는 있지만 매너가 꽝인 사람과는 함께 라운드를 할 수 없다’는 말도 있다”고 소개하면서 “기본적인 매너는 누구나 아는 것이고 한 가지 덧붙이면 우리는 스코어를 카드에 스스로 적는 일이 없으며 멀리건을 너무 주거니 받거니 하고 김미(gimme) 퍼트, 즉 ‘OK’도 필수 예의인양 주고받는다. 하지만 이것은 모두 골프의 본질을 훼손하는 것이므로 유념해야 한다”고 당부한다.
#언론계 골프 마니아를 꼽는다면?
“2007년 본보에 ‘언론계의 골프 꾸러기’를 3회에 걸쳐 소개한바 있습니다. 언론인 골프를 부흥시킨 트리오는 한국일보 장기영 사주, 합동통신 박두병 사장, 동양통신 김성곤 사장이라고 할 수 있어요. 장기영 사주는 ‘大兄’역할을 자임하며 바람잡이이자 ‘봉’이 되기를 꺼리지 않았지요. ‘골프신사’ 박두병 사장은 실력에 매너까지 갖췄어요. 김성곤 사장은 경기골프에도 집착이 강한 지기 싫어하는 ‘不倒翁’이었습니다.”
1970년 7월 언론인 최초로 골프모임 ‘七月會’가 발족했다. ‘골프망국론’의 논객 최석채씨가 골프에 입문하면서 신문계의 화제로 등장하던 무렵이다. 신문발행인 골프모임이 기폭제가 됐고, 회원 수를 제한 할 정도로 붐이 일었다는 것. 그 뒤 언론사마다 골프모임이 생기고, 회원 이동이 잦은 데다 언론-골프 유착 우려가 대두되면서 ‘매스컴회’는 12년의 종지부를 찍었다고 회고한다.
최영정 회우는 골프 칼럼니스트로 명성을 날리며 지금도 왕성한 집필 활동을 한다. ‘칼럼․골프의 세계’(1986), ‘19홀의 세미나’(1991) ‘골프는 세상을 바꾼다’(1998), ‘한국 골프 인물사’(2000), ‘두뇌골프’(1994) 등 17권의 골프 관련 저서를 남겼다. 지금까지 신문이나 잡지 등을 통해 발표한 칼럼이 3만 건을 넘는다. 한창 잘 나갈 때는 팔이 아파 글을 쓰지 못할 만큼 바빠, 자신이 불러주는 대로 글을 쓰는 아르바이트생을 고용하기도 했다.
-요즘도 원고를 육필로 쓰시는지요?
“네∼. 잉크가 잘 나오는 파카 만년필을 고집하고 있어요. 그동안 소모시킨 만년필만 수천 개는 넘을 겁니다.
-컴퓨터 워드로 쓸 계획은 안 하셨나요?
“컴퓨터는 물론 아직까지 휴대폰도 없습니다. 집에서 TV도 잘 안 봅니다. 딸이 컴퓨터를 사줬지만 불편해서 포기했어요. 문명의 이기는 빠르고 편하지만 사람들의 생각을 얕게 만들어요. 뉴스도 텔레비전으로 보는 것 보다 읽어야 제 맛이 나는 걸 보면 어쩔 수 없는 구시대적 思考인가 봅니다. 그래도 큰 불편 없이 살고 있잖아요”. “텔레비전 안 보고 컴퓨터와 휴대폰도 없으면 IT시대의 ‘골동품’이자 인간문화재감”이라고 말하자 “그런가요?”하며 웃는다.
#왕성한 집필 활동… 골프저서 17권
최 영정 회우는 1931년 전북 김제출신으로 전주고, 전북대 농업경제학과를 졸업했다. 이리공고 영어교사를 하다가 1959년 조선일보 수습기자 2기로 입사했다.
-영어교사를 하다가 신문기자 된 동기가 궁금합니다
“활자매체에 관심이 많았어요. 당시 월간 ‘농업경제’를 구독하며 전공을 살려 농업경제와 관련된 새로운 잡지를 만들어 보고 싶었습니다. 또한 교사직에 매력을 느끼지 못해 새로운 길을 모색해보려던 차에 조선일보 기자모집 공고를 보고 응시하여 합격했습니다. 국어, 영어, 상식, 논문 가운데 영어 성적이 좋았다는 소리를 들었습니다. 입사동기로는 이규태, 신종오, 김용원 씨 등이고, 당시 편집국장은 천관우 선생입니다.”
-‘골프 망국론’이 나오던 시절 골프기자 1호가 된 계기는?
“수습을 마치고 사회부와 국제부 등에 근무했어요. 당시 윤주영 편집국장이 유도 3단에 씨름도 잘 하니 체육부에서 일하라고 보냈어요. 1968년 멕시코올림픽 골프 취재를 계기로 본격적으로 골프를 시작한 게 골프인생 40년의 시작이었죠.”
기자출신으로 골프 기사를 쓴 것은 조선일보가 처음이다. 골프에 대한 국민정서가 좋지 않아 다른 언론사에서는 골프장에 출입하는 자동차 번호판을 찍어 보도하던 시절이다. 조선일보 방일영 사장, 방우영 전무가 골프에 심취했기 때문에 가능했다는 것. 당시 취재라야, 유명 인사들이 ‘어디서 누구와 골프를 쳤는데 몇 타를 기록했다’는 동정성 보도가 고작이었다. 골프장을 출입하는 인사들도 박정희 대통령을 비롯, 정계 고위 관계자와 기업인들이 주류를 이뤘다.
-골프는 언제부터 누구에게 배웠는지요?
“1969년부터였지요. 서울CC 운영위원장이던 허정구(1999년 작고) 회장이 ‘골프를 알려면 쳐봐야 한다’며 자신이 쓰던 클럽 중 ‘하프 세트’를 건네주었습니다. 이일안, 한장상 프로에게 처음 골프를 배웠고 이후 손흥수, 문기수, 조태운 등 당대 이름 있는 프로에게 레슨을 받았어요. 그러나 프로마다 교습 내용이 달라 헷갈렸고, 외국에서 발간된 골프 책을 보며 스스로 터득한 거죠”
-골프 취재 에피소드는?
“박정희 대통령은 골프 마니아는 아니었지만 주 1∼2회 정도는 머리를 식히기 위해 골프장을 찾았어요. 골프 파트너는 주로 김형욱 중앙정보부장이었고, 간혹 김 부장이 데리고 온 기업인들과 함께 쳤습니다. 어느 날 박 대통령이 골프를 친다는 제보를 받고 서울CC(현 광진구 능동 어린이대공원)로 갔다가 김형욱 부장의 홀인원을 목격했고, 그에게 들켰지만 기분이 좋아 사진을 찍어달라고 하더군요” 대통령 일정은 보안사항이라 골프장에서도 함구하기 일쑤였으며 골프장에 잠입해 취재하다가 경호원에게 붙들려 쫓겨나기도 했고, 중앙정보부에 끌려간 적도 있었다고 한다.
-골프를 한마디로 정의 한다면?
“티샷부터 홀 아웃까지 이어지는 플레이는 인생과 많이 닮았습니다. 벙커와 워터해저드의 난이도는 삶의 위기 극복과 비슷하고요. 누구와 더불어 어떻게 살아가는 것이 중요하듯, 동반 경기자가 누구냐에 따라 스코어에 영향을 받습니다.” 최 회우는 “인생의 홀인원은 아니더라도 반평생을 골프와 더불어 살아온 삶에 보람을 느낀다”고 말한다. 셰익스피어의 희곡처럼 ‘끝이 좋으면 다 좋다(All's Well That Ends Well)’고 강조한다.
-요즘도 필드에 나가시는지요?
“골프는 건강과 경제력, 동반자 3박자가 맞아야 하는 데, 요즘은 함께 필드에 나갈 동반자가 줄어들었다”며 웃는다. 한 달에 한 두 번 정도 골프채를 잡는다는 것.
언론사 퇴임 후 신문협회 사무국장과 한국신문잉크 대표를 지냈으며 지난 1995년 레저신문이 제정한 제1회 골프라이터 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동갑인 부인 朴貞順 여사 사이에 3녀 1남. 외동아들 승욱씨도 한국경제에 근무하며 언론인의 뒤를 잇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