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명수 회우가 3월 10일 급환으로 별세, 12일 아침 서울 삼성병원에서 발인했다. 고인은 1937년 9월 경북 달성에서 3남 1녀 중 막내로 탄생하여 다복한 가정에서 엄격한 교육을 받으며 성장 했다. 고향 구지중학을 거쳐 용문고등학교- 농협대학을 졸업하고 이어 중앙대학교 대학원에서 언론매스컴(정보학교) 과정을 이수하고 1967년 한국방송공사 이사, 카메라취재부장과 보도위원, 검경신문 부회장, JC 광명지회장(초대, 2대)등을 역임했다. 고인은 특히 ‘상하이에서 온 편지’로 특종 상을 받는 등 재직 중 활약이 크게 돋보였다.
부인 방영옥 권사와의 사이에 아들 강태진, 딸 강미라. 사위 윤홍준. 외손자 유태일을 두고 있다.
강명수 선배를 추모하며
박 충(전 KBS 워싱턴특파원, SBS 아트펙 사장)
가스 형!
이게 웬 일입니까! 어떻게 천하의 형께서 넘어지셨단 말입니까?
더구나 넘어지셔서 세상을 떠나셨다니 아마 형을 아는 모든 이들은 믿는 사람 없을 것입니다 역시 형님은 형님 본 모습처럼 아무도 예측 할 수 없는 행동으로 우리 곁을 떠나셨습니다.
가스 형!
오래전 어느 취재 현장에서 타방송사 신입 촬영기자라 인사드리자 xx너 점심 먹었냐? 생전 처음 보는 사람에게 쌍소리를 섞어서 밥 먹었느냐고 물어보는 사람을 정상으로 생각할 사람 아무도 없을 것입니다
가스 형! 형은 그랬습니다. 아무도 생각할 수없는 여러 가지 일 들을 형은 예사롭게 하셨습니다. 그러면서도 하나도 어색하지 않으셨습니다.
형은 그런 특별한 분 이셨습니다.1980년 언론 통폐합으로 제가 KBS에 몸 담 으면서 형과의 인연이 시작되었습니다. 제가KBS 첫야근 하는날 늦은 밤 형은 거나하신 상태로 야근자들의 야식을 준비해 주신 기억이 에제 같은데 이제 형은 이 세상에 계시지 않는 군요---그때야근 하며 고량주잔을 들면서 형 께서 하신말씀이 아직도 내 머리 속에 각인되어 있습니다.
야! 니 내 생활신조가 무엇인줄 아나? 약자를 돕고 살아가자는 것이다 그래서 저는 그때 형의 별명이 그렇게 잘 어울릴 수 있다고 생각 했습니다. 강 명 수란 이름 때문에 생긴 별명이지만 늘 약자들 편에 스셔서 부글부글 끓고 계시던 형을 보면서 가스명수란 별명 잘 지은 것 같습니다. 또 기억나는 것은 1989년도 KBS가 총파업 강행 시 후배 촬영기자들이 카메라를 놓고 취재거부를 하는걸 보시며 일반방송기자들은 나중에 통신이나 신문의 기사 인용도 가능하지만 우리촬영기자는 역사적인 현장은 재현될 수 없는 것이기 때문에 방송 송출은 안 되더라도 기록은 해야 된다 고 역설하면서 카메라를 들고 현장으로 나가던 모습 지금도 눈에 선합니다
더구나 작금 KBS 의 파업을 보면서 가스 형이 그리워 지내요----
가스 형!
그렇게 예뻐하시던 외손자 태일이를 두고 어떻게 그렇게 빨리 가셨습니까?
또한 사랑하는 아들 태진이 결혼 안 시키시고 무엇이 바쁘셔서 빨리 가셨습니까? 그러나--
그러나---이제 저는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천하의 가스 형이 왜? 일찍 가셨는지----형은 제가 회사 옮겨온 후 첫 야근 때 말씀하신 “약자를 돕는다는” 생활신조를 실천 하시려고
넘어지시면서 까지 일찍 가셨다고 확신 합니다
가스 형! 형은 훌륭한 분이십니다! 존경 합니다!
형이 돌아가시면서 기증하신 간, 각막, 신장.!---돈 없고 병들은 젊은 환자에게 이식 될 것이라고 합니다. 형의 생활 신조이셨던 약한 자를 도우시려고 그들을 살리시려고---
형은 우리 곁을--- 사랑하는 가족들을 남기시고--- 영원에 길로 떠나셨습니다. 가스 형! 편히 쉬십시오--- 저세상에서는 끓지 말고--- 편히 쉬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