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일락 향기 그윽한 5월 어느 날 시청 옆 그의 사무실에 들렀다. 긴장되고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라 내심 당황했다. 안 좋은 소식을 접하고 처음 얼굴 대하는 날이다.
“나는 아무렇지도 않은 데 주변에서 더 난리야. 식구들은 더 난리고...-대학병원에선 우선 약물치료를 해 보재” “저녁약속? 이 수첩 봐, 점심-저녁-점심-저녁...계속이야. 당신은 저 밑이야.” 언제 차례 올지도 몰라. 우리는 웃었다. 즐거운 얘기 끝에 웃는 것처럼 그렇게 웃었다.
“내가 내일 모레 죽는 줄 알고 가기 전에 밥 한 그릇 사준다고해서 스케줄이 꽉 찼어. 나는 아무렇지도 않은 데 말이야. 허허허” 우리는 더 크게 확 웃었다. 췌장암 3기 진단인 데도 이렇게 말했다. 그 뒤에 자주 보았어도 애써 숨기지도 않았고 평상심을 잃지도 않았다. ‘췌장암 3기, 최장 3개월’이란 속설 같은 정설을 모를 리 없건 만 그는 끝까지 이처럼 초연했다.
그래, 그래서 꽃 같은 나이에 가시면서도 그처럼 환하게 웃어 보이시는 겁니까? 사진 속 웃는 당신의 모습 대하고 만감 속에 저도 허탈하게 덩달아 웃었지요. 당신은 대인이십니다. 참말로 큰 사람이십니다. 당신을 아는 선후배들은 당신을 인맥사전, 족보학의 거성 그리고 마당발이라고 부릅니다.
그 사람? 학교는 어디 출신이고, 고향은 어디며 어디 어디 성 씬데 어디를 거쳐 이 자리에 왔고, 누구하고 친하고 앞으로 어떻게 될 사람이다 까지를 거침없이 풀어놓았지요. 그 많은 정계와 관계, 사회 인사들과의 폭넓은 교류가 당신에게 마당발이라는 훈장을 달아줬고요.
모두가 ‘이 시대의 수첩’ 하나가 사라졌다고 애통해합니다. 그의 법조계 기사는 특종에 특종으로 언론계에 한 획을 그었고 신문 1면과 TV화면을 화려화게 장식했다. 신아일보 검찰출입기자-MBC 청와대출입기자-정치부장-선거기획단장-안동MBC사장 그리고 방송위원회 위원으로 근 40년을 언론계서 생을 불 태웠고 이후엔 명보국제항공 회장- 포럼회장-국회잡지 동행 회장 등으로 활동영역을 넓혀갔다. 그가 얼마 전 “이젠 집에서 쉬고 싶어. 회사 나오기도 싫어” 라며 마음 한 자락을 보여줬다. 병마의 그림자를 느껴서였을까?
이별을 위한 통과의례도 없이 훌쩍 떠나시니 감당하기 힘듭니다. 받아들일 수 없습니다. 천수를 다 했다면 몰라도 꽃다운 나이에 떠나 시 면서도 왜 그리 환하게 웃으십니까? 밉습니다.
“어제 같이 왔던 틀 좋은 친구 누구야? 우리 견습 기자야 그 친구 다방에서 형사과장하고 커피 마시고 있던 데...물건이네” 선배가 전한 동대문 경찰서 수습기자 시절 얘기 한 토막이다. 그때 벌써 대기자의 싹수(?)가 보였다고 덧붙인다. “수석으로 들어와서 수석으로 졸업했지요. 나이 많은 나하고도 잘 지내고요..” 천안공원묘지에서 본 그 보다 다섯 살이나 많은 경남 거창고교 동기생은 명석하고 대인관계가 좋았다고 회고했다.
2012년 8월 26일 하늘아래 편안한 곳, 따뜻한 남쪽을 내려다보며 그는 자연으로 돌아갔다. 흙 한 줌 그의 가슴에 뿌렸다. 당신은 가셨지만 우리는 당신을 보내지 않을 것입니다. 가슴속 깊은 곳에 당신을 묻어두고 보내지 않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