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재영 원로 회우가 지난 10월 20일 부산 행복병원에서 숙환으로 별세했다. 장례는 10월 22일 오전 부산 침례병원 장례식장에서 가족장으로 치러졌다. 고 김재영 원로회우는 1930년 5월 21일생으로 1957년 광주신보기자를 시작으로 언론계에 진출, 광주신보 사회부장, 전남매일신문 사회부장, 전남일보 사회부장, 서울신문 사회부기자 지방부차장, 전남일보 편집부국장, 한국경제 신문 사업부국장등을 역임했다. 대한언론인회와도 인연이 깊어 한 때 대한언론인회보 제작에도 남다른 열정을 보였으며 이사, 자문위원 겸 논설위원을 역임했다.
<김재영 형 영전에>
◇이구열 원로회우 (미술평론가·전 서울신문 문화부장)
김재영 선생. 우리 지난날의 막역한 친분으로 김 형이라 부르겠소. 아니 형의 부음이라니 믿어지지 않고 믿을 수가 없습니다. 사실이라면 이 애통함을 어찌 삭일수 있단 말입니까.우리 다 같은 80 노령자 중에서 가장 단단한 체력에 등산과 산행의 명수여서 누구보다도 장수하실 걸로 모두 믿었던 형이 아닙니까.
지난 여름께만 해도 해남 귀향지에서 외롭긴 하지만 마음 편하게 잘 지내고 있다는 말을 가끔 전화통화로 들으며 언제 서울에 올 것이냐고 정담을 나누지 않았습니까. 한데 그 사이 건강에 문제가 생겨 부산의 아들집으로 가서 병원에 다니며 병세를 다스리고 있단 말을 이종윤 형을 통해 알고 있었습니다만 이렇게 비통한 기별을 금세 듣게 될 줄이야 어찌 상상인들 했겠습니까.
듣자니 김 형이 결국 장암 수술을 받았고 그 병고가 매우 깊은 듯하다는 근황도 간접적으로 알고 있기는 했으나 우리의 발전된 의학이 형의 그런 병고를 능히 쾌유시킬 것이라고 확신했던 것인데 끝내 이승을 떠나고 말았다니 인간 생사의 허망함이 새삼 가슴을 미어지게 합니다.
나와 이종윤 형은 김 형과 더불어 주말과 휴일에 북한산 산행을 약15년이나 같이한 바 있었죠. 그때 형이 보여준 강인한 체력과 전국의 명산을 모두 등반한 풍부한 등산 체험의 산악인으로서의 헌신적인 리더십, 그리고 깨끗한 언행의 매너는 동행자 누구나가 칭송한 인품이었습니다. 그런 전문적 산행인이던 김형은 대한언론인회 회원으로서 퇴직한 언론계 선후배 동료들과 건강 및 친목의 모임으로 2003년에 새롭게 결성된 ‘대한언론인회 산악회’를 앞장 서 이끌며 여러 해 회장을 맡았었죠. 그런 활동은 형의 본성적 적극성이자 희생정신의 실천이었습니다. 형은 남다른 친화력의 소유자로서 언론인회 4, 5백명 회원 동료들의 이름을 거의 다 외울 정도로 놀라운 기억력을 나타내 우리를 감탄케 했습니다. 그런 활동성으로 언론인회의 이사를 수차 역임하기도 하셨죠.
형의 그 모든 활동은 신문기자 출신으로서의 긍지와 바른 정신 및 건전한 사회의식을 반영한 것이었습니다. 형은 놀라운 속필의 문필인으로 많은 글도 쓰셨고 대한언론인회보(현 대한언론) 지면의 유력한 필자이기도 했습니다. 형의 속도감과 순발력 있는 문장은 쉽고 부드러우면서도 내용에 충실성이 충만했습니다.
김 형은 일찍이 상처한 처지였음에도 그 망처에 대한 지극한 사랑의 일념으로 재혼 따위를 일절 염두에 두지 않은 도덕적 고결함을 보이기도 했죠.
언젠가 산행 길에 들려주기를 서울에서 머지않은 공원묘지에 외로이 묻혀 있는 망처를 당신이 저 세상 갈 때 고향의 가족묘역에 자신이 조성해 놓은 곳으로 같이 가 합장되기를 바라고 있다고 했는데 이번에 그리된다면 참으로 애틋한 부부애의 표상이 되겠습니다.
나는 형의 상사(喪事)에 큰 죄를 지었습니다. 먼 거리 부산의 상청에 문상을 못간 것입니다. 소생도 노령에 무릎 관절을 앓느라 보행이 여의치 않은 핑계를 댑니다만 서울에 앉아서나마 형의 명복을 빌고 또 빕니다. 기회가 되면 형의 해남 향리 산소에 한번이라도 찾아가 술 한잔 올리리다. 광주에서 기자생활을 시작하여 광주신보, 전남매일신문, 전남일보에서 사회부장을 지내다가 1963년에 서울신문 사회부로 스카우트되어 1970년 까지 지방부 차장을 역임하는 등 맹렬한 사회부 기자로 활약한 형의 언론계 업적은 향리에 전설이 될 걸로 믿습니다. 병고 없는 저승의 동산에서 오래도록 사별했던 부인과 다시 만나 오롯이 영혼의 정을 나누소서.
※ 10월22일 장례시에는 집안사정으로 부인과 합장이 이루어지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