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필면 원로회우가 지난 1월 8일 카나다에서 지병으로 별세했다. 향년 92세. 고인은 1921년 6월 5일 생으로 경성공립 공업학교 졸업 후 1947년 3월 합동통신 기자를 시작으로 언론계에 진출했다.
대한통신 기자시절엔 종군기자로 활약한바 있다. 1950년 9월 15일 전격적으로 강행된 인천 상륙작전 당시 육군 유일의 참전 부대인 17연대를 따라 국군의 수복과정을 취재하는 등 활약이 눈부셨다.
언론계를 떠나서는 상해염전을 창설, 인천상공회의소 상임위원, 인천상사 대표이사 인천통운(주) 대표이사 인천항부두관리 협회 상무이사 대한개발공사 대표이사 등을 역임했다.
17연대 인천상륙작전 생생하게 보도
고 이필면 원로회우는 6.25 전쟁당시 인천상륙작전 참전부대인 육군 제17연대를 따라 종군, 국군의 서울 수복과정을 취재한 기자로 유명하다. 대한통신 기자로 종군했던 고인이 당시 해병대의 서울진입은 17연대의 후방차단작전에 힘입은바 크다 고 증언한 것은 이미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인천상륙작전을 앞두고 우리 해병대에는 1개 연대 밖에 없었기 때문에 육군에서 1개 연대를 추가 하게 됐고 17연대가 그 적임부대로 선정된 것이다. 당시 17연대를 지휘한 사람은 백인엽 대령으로, 전공이 많은 지휘관이 서울을 수복해야한다는 이승만대통령의 뜻에 따른 것이라고 한다.
“17연대가 인천에 상륙한 것은 9월 24일 오전 이어 미 10군단과 함께 그날 저녁 서울 흑석동까지 진출, 25일 서빙고 방향으로 도하해 들어갔다 당시 임무는 서울 남산아래로부터 테릉과 경춘 가도 방면으로 적의 퇴로를 차단하는 것이었다. 미 32연대와 함께 노도와 같이 진격 25일 밤 남산을 점령하 는 등 왕십리 태릉으로 이어지는 차단선을 점령해 나갔다. 미 해병대와 한국해병대는 서대문방면 마포 일대에서 공세를 취했으나 적의 대대적인 반격으로 이를 격파하는 동안 전진은 불가능했다. 28일 아침 17연대는 서울 동남쪽의 적을 복멸하면서 연대본부를 왕십리에서 서울중심부로 옮길 수 있었다.” 인천상륙작전을 생생하게 보도했던 고인은 "17연대의 신속 과감한 후방차단작전이 성공하지 못했다면 서울 수복은 어려웠을 것이라고 술회한바있다. 고인의 이 같은 인천상륙작전 종군기는 전사에 남을 실록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