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인들은 세상 돌아가는 일에는 눈에 불을 켜고 파고들어 누구보다도 해박하지만 자신들의 자산관리에는 무관심하고 무지한 분이 많다고 들었습니다."
홍용수 회장. 1980년대초부터 코리아 리쿠르트 대표이사로 8년간 재직했고 그 후 한국경제 논설위원으로 10년간 모두 18년간 언론출판 분야에서 일했다. 그의 언론 경력은 이에 그치지 않는다. 방송출연을 포함하면 그의 언론경력은 단순히 햇수로만 헤아리는 게 무색하다. 세미나, 특강을 하러 다니느라 과로로 쓰러지기까지 했다. 기업체와 대학, 공공기관에 초청되어 전국을 다니면서 기업엔 경영전략을, 대학에선 대학생들의 졸업 후 진로에 관한 특강을 했다. 진로와 취업지도 특강에는 대학생들이 언제나 구름 같이 몰려들어 한때 경찰의 감시와 견제를 받아 곤욕을 치르기도 했다.
지난해 팔순을 맞았지만 10년 이상 젊어 보인다. 요즘에도 나이에 상관없이 NSI자산관리연구회회장 직함을 갖고 자산관리 전문가로서 여기저기 초청을 받아 세미나에 참석하고 강연을 하며 개인 자문을 하러 다니느라 바쁜 일과를 보내고 있다. 지금도 그렇고 그의 지난 세월은 치열하게 살아온 삶의 궤적이라는 생각을 떨쳐버릴 수 없게 한다.
―누가 보더라도 연세를 80대라고 여기지 않을 것 같아요. 젊어 보이시는 무슨
< 1 >
비결이라도 있습니까.
"글쎄요. 비결이 있는 건 아니구요. 운동은 그런대로 열심히 하는 편입니다. 매일 아침마다 아파트 주변을 3Km이상 걷기를 하고 집에서는 자전거 페달 밟기를 합니다. 무엇보다 나이 들어서도 바쁘게 살고 있는 게 어떤 상관관계가 있는 건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언론인으로서 그의 경력은 다양하고 이채롭다. 영남대학교에서 법학을, 같은 대학 대학원에서 경영학을 전공하고 총무처에 들어가 첫 사회생활을 시작했다. 2년간 인사국에서 공무원 생활을 하고 그만 둔 뒤 대한알루미늄공업에서 총무 인사 감사 영업을 총괄하는 부장직을 맡아 3년간 일했다. 그런가 하면 미국계 한국회사 대표로 5년간 근무하기도 했다.
"자랑 같지만 직장을 옮겨 다닐 때마다 나름대로의 역할을 했습니다. 총무처에 있을 때에는 소속 기관 대표로 서울대학교 행정대학원 주최 전국학술토론대회(1961년2월4일)에 나가 국회의장상을 받았습니다. 당시 장면 총리로부터 칭찬과 격려를 받았던 순간이 지금도 기억에 생생합니다. 대한알루미늄에서는 박정희대통령이 직접 참석했던 울산공장 준공식 행사 책임을 제가 맡아 치르기도 했습니다. 5개월에 걸쳐 행사준비를 두루 지휘하고 대통령 앞에서 준공식 사회를 보았습니다."
―언론과는 어떻게 인연을 맺었습니까.
"1982년 코리아 리쿠르트 대표를 맡으면서 언론분야에 발을 들여놓게 됐습니다. 코리아 리쿠르트는 81년에 설립된 인재채용 전문회사입니다. 대표 취임 직후 국내 최초의 고용정보지 ‘월간 리크루트’를 비롯, 각종 정보지를 발행, 전국대학에 배포하고 다양한 행사를 창안, 거행했습니다."
―한국경제 논설위원은 또 어떻게 부임하게 되셨습니까.
"논설위원이 된 사연을 말씀 드리려면 리쿠르트 사장 때 얘기를 좀 해야
<2>
하겠습니다. 89년까지 회사 대표로 있으면서 대학과 기업간 전국취업합동설명회를 매년 개최했습니다. 서울세종문회회관을 비롯, 전국 주요 도시에서 취업설명회가 열릴 때마다 수천명의 대학생들이 몰려 들었습니다. 연간 1백여개에 이르는 전국대학별 초청 취업진로특강에도 대학생들이 대거 참여해 리쿠르트 주최 행사에는 언제 어디서나 대학생들이 구름 같이 몰렸습니다. 제 이름이 알려지면서 방송국에서 출연요청이 쇄도, KBS ‘직업의 세계’ MC를 하는 등 여러 방송국에 출연하느라 바빴습니다. 그러다 한국경제에서 저에게 인사 고용 직업 분야 담당 논설위원을 하면서 관련 사업을 하자며 적극적으로 대해 주었습니다."
여기서 홍 회장이 전하는 1980년대 대학생 대상 설명회 개최 당시의 에피소드를 소개한다.
서울세종문화회관에서 3천여명의 대학생들을 초청, 설명회를 가져야 하는데 경찰이 집회허가를 내주지 않아 치안본부(경찰청 전신) 학원반에 사흘 내리 찾아가 경찰을 설득한 끝에 겨우 행사를 치렀다고 한다. 대학생들이 모여 청와대로 몰려갈 것을 우려해 허가를 내주지 않으려 했다는 것. 부산에서도 기업체와 대학 합동으로 취업설명회를 갖기로 한 하루 전날 집회를 취소하라고 압력을 가해 온 적이 있었다. 알고 보니 당시 전두환 대통령이 부산에 내려온다는 이유 하나였다. 시간이 지나면서 정부 당국에서도 홍 회장 측의 대학생 대상 취업 설명회의 순수성과 필요성을 인식하게 돼 경찰의 감시와 규제는 더 이상 지속되지 않았다.
―리쿠르트 사장직을 그만두고 논설위원을 맡으신 이후 활동이 궁금하구요.
"논설위원을 하면서 경제 경영분야 집필과 강연 방송출연 활동에 본격적으로 나서게 됐습니다. 그 중에서도 1990년부터 93년 사이 매주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아침 한 시간 동안 KBS라디오 ‘경제전망대’ 프로 MC를 진행한 일을 잊을 수 없습니다. ‘직업의 세계’ TV MC를 맡아 방송을 진행했던 일과 함께 ‘경제전망대’ MC는 저에게 언론인으로서의 자부심과 긍지를 심어주었습니다. 지난 밤 사이에 들어온 통신기사와 국내외 경제 경영정보를
<3>
취합하여 코멘트를 곁들여 방송하는 것입니다. 대한무역투자진흥공사(KOTRA)네트워크를 생방송으로 연결해 해외 경제동향을 알아보고 국내 업체가 참고할 만한 사항들을 전달하느라 항상 촉각을 세우고 긴장의 나날을 보내느라 과로로 쓰러지기까지 했습니다. 그러나 기업체를 비롯한 각계각층에서 방송을 듣고 내용이 좋다고 칭찬과 함께 격려를 보내올 때마다 큰 보람을 느꼈습니다."
홍회장은 KBS 뿐만 아니라 MBC, SBS, CBS 출연을 포함하면, 언론출판 분야에 종사한 18년간 방송출연만 1천5백여회가 넘는 것으로 추산된다고 말했다. 그는 재정경제부 인력정책심의회 고용대책위원, 한국과학기술총연합회 과학기술정책 자문위원, 한국직업능력개발원 기관경영 자문위원을 역임했다. 1999년 66세에 논설위원을 그만두고 한양대학교에서 경제경영분야 겸임교수를 잠시 하면서 그 뒤부터는 아예 자산관리 전문가로서 세미나를 주관하거나 특강을 하는 등 다양한 활동에 발벗고 나서고 있다.
―NSI자산관리연구회는 어떤 조직입니까.
"국가경영전략연구원(National Strategy Institute∙NSI) 산하의 자산관리연구를 목적으로 하는 회원 모임입니다. 7년전 대전과학단지 등을 순방하고 귀경길에 버스 안에서 어느 회원이 저더러 자산관리에 관한 설명을 해 달라고 해 아무런 준비도 없었지만 즉석에서 설명 겸 해설을 했더니 자산관리 연구모임을 만들자고 만장일치로 의견을 모아 만들어진 모임입니다."
―구체적으로 어떤 일을 합니까.
"회원들끼리 자산관리 정보를 교환하고 매월 한 차례 이상 세미나를 갖습니다. 현장방문도 하구요. 한편으로는 기업체와 대학, 공공기관, 지방자치단체, 로터리클럽, 일반인 등을 상대로 자산관리와 재테크 특강을 합니다. 최근에는 9월10일 서울 여의도 대우증권에서 정부의 2013년 세법개정안과 NPL(Non Performing Loan∙무수익 여신 혹은 부실채권)사례, 금,은 투자에 대한 설명회를 가졌습니다. 9월6일엔 김광희 동우회 회장 초청으로 전직 동아일보 임직원들을 대상으로 ‘노후생활설계와 재테크’주제의 특강을 했습니다."
<4>
―홍회장의 요즘 하시는 일은 말하자면 은퇴 후 사회봉사활동으로 자산관리 요령을 전도하러 다니신다고 할까요, 그렇게 하시게 된 어떤 동기나 계기 같은 게 있었습니까.
"네, 있었습니다. 15년전에 아들에게 증여한 시골 땅을 어떤 사기꾼이 팔아먹었어요. 매도한 땅의 양도소득세를 내라는 세무서 고지서가 날아와 서류 일체를 위조해 팔아 넘긴 사실을 알게 됐습니다. 재판을 해서 되찾아 오느라 애를 먹었어요. 변호사도 없이 혼자 공부하면서 소장을 작성했는데 담당 판사가 아주 잘 썼다고 하더라구요. 모르면 당합니다. 나 자신과 사랑하는 가족을 위해 자산관리에 관심을 갖고 신경을 써야 합니다. ‘가난하게 태어난 것은 당신의 잘못이 아니지만 가난하게 죽는 것은 당신 책임’이라고 빌 게이츠가 말했습니다. 노후준비가 안 되었으면 ‘축복이 아닌 재앙’이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
―홍 회장 자신은 자산관리와 재테크를 잘 해서 돈을 많이 모으셨습니까.
"정신 없이 뛰어 다니다 보니 자신의 자산관리에는 신경을 쓸 겨를이 없었다는 말씀을 먼저 드리지 않을 수 없습니다. 주식이나 부동산투자로 성공한 경우도 있고 실패한 케이스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전체적으로 먹고 살만큼의 돈은 있습니다."
―집값은 앞으로 어떻게 될 것 같습니까.
"오는2020년까지 매년 0.5%씩 내리고 전세값은 평균 7.8%씩 올라2021년에는 전세금이 집값보다 더 비싸지리라는 게 주택산업연구원의 분석전망입니다. 저출산과 노령인구 증가 등 요인을 감안할 때, 개발지구 등 특수 지역을 제외하고 1가구 다주택 소유자나 임대업자는 부동산 값이 하락하는 경우를 생각해야 하고 주택값이 더 떨어지기 전에 주택연금 가입신청을 해야 유리할 수 있습니다."
―노후의 자산관리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 일반적인 필수사항 몇 가지를 소개해주시죠.
<5>
"돈은 버는 것도 중요하지만, 소유자산을 제대로 관리하는 게 더 중요할 수 있습니다. 노후의 자산운용은 환금성과 안전성, 절세문제가 우선돼야 합니다. 주택연금 가입으로 생활비를 조달하는 방법도 권장할만 합니다. 60세 이상 9억원 이하 1주택 소유자가 집을 담보로 연금을 받는 상품입니다. 부부 중 어느 한 쪽이 먼저 사망해도 나머지 한 사람은 연금을 계속 받을 수 있습니다."
―은행 금리가 아주 낮습니다. 은행 금리만 갖고선 생활하기가 힘든데 퇴직금등 노후자금을 어떻게 운용하는 게 좋다고 보십니까.
"기본적으로 생계형 저축, 세금우대종합저축, 상호금융권 예금에 들거나 특판환매채권(RP)을 사들여 이자 수익을 높이는 방법을 생각할 수 있습니다. 금융소득종합과세 기준이 4천만원에서 2천만원으로 대폭 낮아지면서 과세대상이 확대되고 비과세보험 한도도 2억원으로 축소됨에 따라 세금회피 수단으로 고액 자산가들이 예금을 빼내 장기저축성보험 등 비과세 금융상품으로 돈을 옮기고 있습니다. 이미 가입한 보험한도가 과세기준을 넘어서는 경우엔 머니마켓펀드(MMF)와 같은 단기 금융상품에 넣어 두기도 하고 원금이 보장되면서 연4~5%의 수익을 올릴 수 있는 주식연계증권(ELS) 등 파생상품에 투자하기도 합니다. 은행금리가 낮아지면서 금괴나 현찰로 보유하려는 자산가도 많은 걸로 압니다."
―증여와 상속 문제에 대해 원칙적인 수준에서 유의할 점을 소개해 주시죠.
"노후생활에서도 그렇지만 사후를 대비한 자산정리를 위해서도 증여 상속문제는 아주 중요합니다. 보유세나 상속세를 절감하고 가족간의 불화나 유류분 청구 등을 예방하여 가족간 화목을 도모하기 위해 이제부터라도 꼼꼼히 따져 볼 것을 적극 권유드립니다. 증여는 한 사람에게 재산명의를 집중하지 말고 분산해야 절세를 할 수 있습니다. 또 10년 단위로 증여하면 상속세 과세가액을 효과적으로 줄일 수 있습니다. 특히 배우자에게는 10년 동안 6억원까지 비과세 증여할 수 있다는 점을 염두에 둘 필요가 있습니다. 세금 없이 배우자에게 증여할 수 있는 금액(증여재산공제액)이 종전 3억원에서 6억원으로 확대됐기 때문입니다. "
―나이든 사람들의 자산관리에 유의해야 할 점이 있다면 무엇입니까.
<6>
"부업은 고려해 볼 수 있지만 사업은 하지 않아야 합니다. 자녀의 사업에 보증을 선다거나 담보를 제공하는 일은 신중해야 합니다. 현실적으로 어려움이 있겠지만 안 해 주는 게 상책이지요. 주식에 직접투자 하는 건 삼가고 어떤 경우든 원금에 손해가 가지 않는 간접투자를 하도록 권장합니다."
―대한언론인회에는 어떻게 가입하셨습니까.
"신상우 전 국회부의장의 소개로 알게 된 김준하 전 강원일보 사장님(전 청와대 대변인)과 로타리클럽에서 만난 신우식 전 서울신문 사장님 추천으로 가입했습니다."
홍 회장은 대한언론회보에 노후생활 설계와 자산관리에 관한 글을 여러 차례 소개한 바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