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효계 명예회우의 생활과 삶은 언뜻 화려한 경력과는 어울리지 않는다는 생각을 하게 한다. 생각과 삶의 알파가 믿음과 섬김이요, 사랑과 겸손이 오메가로 비쳐지기에 하는 말이다.
솔직히 말해서 어디까지 진실이며 위선은 섞이지 않았을까하는 의구심이 일 정도여서 말이다.
올곧은 신앙을 지키면서 광주직할시장, 전남지사, 총리비서실장, 농림부 장관 그리고 숭실대학교 총장을 지냈다고 하니 말이다.
성남시 분당구 금곡동 헤리티지 107동 자택을 찾았고 현관에서 인터폰으로 연락을 드렸다. 본래 길눈이 어두운 편이어서 엘리베이터를 찾는 데 시간이 좀 걸렸다. 자택 앞에 이르러 보니 문이 열려 있었고 사모님이 고운 미소로 맞으셨다.
이 회우께서는 기다리다가 마중을 나갔단다. 그 새를 못 참으시고… 좀 민망했다.
몸에 밴 겸손‧ 섬김의 생활철학
어정쩡한 위치에서 주객이 인사를 나눴다. 두 분의 첫 인상이 그렇게 조용하고 고울 수가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79세이며 74세라는 두 분의 모습은 나이를 담고 있지 않았다. 깨끗하고 맑았다.
말씀을 나누기 전에 봉투 2개를 건네 주셨다. 하나는 <李孝桂 인터뷰 기초 자료를 모아 보았습니다. 부끄럽습니다.>란 표지 글이 정갈했고 또 하나는 <아버님의 자서전을 증정합니다.>였습니다.
A4용지로 22장인 인터뷰 자료를 받아들면서 이번 원고는 그냥 해결되는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2건의 자료 봉투를 준비하고 로비까지 마중나오는 치밀함과 살뜰함이 이 명예회우의 생활 자세를 그대로 느끼게 해주었다. 남을 배려하는, 겸손함과 섬김이 몸에 밴 생활 철학이랄 까?
-두 분의 결혼 얘기부터 해주실래요? 어떻게 만나셨나요?
“저희는 아버님들이 定婚을 한 사이랍니다.”
-정혼이라니요?
“저의 아버님과 장인 되신 분이 함께 순천군에서 계장으로 일하셨는데 두 분이 친하셨고 농반진반으로 정혼을 하셨답니다.”
-그리고 만나시고 결혼을 결정하신 거군요?
“1961년이었어요. 제13회 고등고시 행정과에 합격하고 내각수반실에서 수습사무관으로 있을 때 였습니다. 부모님들이 결혼하라고 하셔서 만나보니 말도 없었고 조신했어요. 성가대 봉사한다는 말에 호감이 더 했구요. 그래서 결혼을 결정했습니다.”
-사모님께서는요?
“먼저 사진으로 봤어요. 그랬는데 성깔 있어 보이데요. 수학 선생 같은 인상을 받았어요. 그래도 아버님 말씀도 계시고 해서 그냥 따랐어요.“
사모님 유신자 권사는 친정 부모님께서 애린원이란 고아원을 운영하셨고 여순반란사건 때는 고아들을 300 여명까지 거둘 정도의 자선가였고 독실한 크리스찬이었다. 고흥군 포두면에 있는 길두 교회가 유권사님 선조 때 세우신 교회다.
“하늘에도 효도 다 하라” 는 뜻
-李孝桂란 함자가 특이한 데요? 특별한 의미가 있으신가요.
“선친께서 특별히 효에 대해 강조를 많이 하셨어요. 그래서 부모에 효도할 뿐만 아니라 나라와 하늘에도 효를 다하라는 의미에서 孝桂라고 작명을 하셨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이효계란 작명을 한 이 명예회우의 선친 故이복량 장로는 구례군수와 여천군수를 지냈고 전남부지사를 역임했다.
-공직자들에게 들려주는 나의 영성체험 자서전-이란 부제가 붙은 <영성으로 섬긴 국가>는 177페이지에서 순종으로 효도한 장남 이효계 장로, 숭실대학교 제 11대 총장이라고 소개하면서 “장남 효계는 한마디로 순종하는 자식이다. 대학에 갈 때에 다른 명문대학에 입학할 충분한 실력이 있었음에도 아버지의 강력한 뜻에 따라 기독교 학교인 숭실대학교로 진학했고 목회자의 꿈을 키우고 있었는데 공직자가 되라는 아버님 말씀에 갈등하기도 했지만 아버지는 기도의 사람이었기에 그 말씀에 따라 공직자의 길로 나섰다.”라고 썼다.
그리고 이 명예회우는 광주직할시장, 전라남도지사, 국무총리비서실장, 내무부 차관, 한국토지공사 사장을 거쳐 1997년에는 농림부장관에 오른다.
-공직 생활 중에 가장 기억에 남아있는 일을 하나 꼽아 주신다면?
“1974년에서 1976년까지 내무부 새마을기획과장일 때입니다.
청와대에서 새마을 비서실 행정관으로 박정희 대통령을 모시고 근무했습니다. 불철주야로 일했습니다. 매달 청와대에서 열린
‘새마을 국무회의’실무책임자였지요. 새마을 운동의 부처별 실적을 장관들이 직접 보고하는 회의였습니다. 그 때 긴장하던 장관들의 모습, 열정적이던 회의 분위기는 지금도 생생한 기억으로 남아있습니다.”
“새마을 운동은 현재 진행형”
-그렇게 터를 닦으신 ‘새마을 운동’이 세계화되어 간다고 하지요.
“새마을 운동이 시작 된지 40여년이 지났습니다.
그러나 새마을 운동은 여전히 ‘진행형’입니다. 달라진 것이 있다면 세계로 진화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아시아와 아프리카의 빈곤 퇴치와 국가발전의 모델이 되고 있으며 ‘대한민국의 국격과 국가브랜드 가치제고’에 크게 기여하고 있지요.
UN의 ‘새천년개발목표’의 핵심 모델로 논의 되고 있는 것도 우연한 일이 아닙니다.
한국의 새마을 운동에 관심이 큰 나라는 단연 중국입니다.
2001년 9월에 중국정부 초청으로 ‘제4기 중국국가지도자 연수회의’에서 강의를 한 일이 있습니다. 한국의 새마을 운동 성공사례를 듣고 싶어했습니다. 중국의 시진핑 국가주석은 중국을 한국의 새마을 운동방식으로 발전시키겠다는 새마을 운동 예찬론자이기도 합니다.”
-다양한 공직생활을 하셨습니다. 40년 가까운 세월을 지탱해준 ‘힘과 정신’이 있다면?
“한마디로 철저한 기독교 신앙과 국가 섬김의 정신이었다고 생각합니다. 공인으로서 멸사봉공하고 교회장로로서는 진실하고 겸손한 그리고 경건한 삶의 참 크리스찬이 되는 것… 이정신과 힘이 나의 공직생활과 신앙생활을 양립할 수 있게 한 두 축이었습니다.”
인터뷰를 시작하기 전에 품었던 작은 의구심이 풀리는 듯 했는데 사모님이 거들어 주셨다.
“사실 저의 집 이야기와 주변 이야기는 모두 종교, 예수와 하나님 얘기예요. 너무 하나님만 생각하고 세상 재미는 없이 생활해서 따분한 적도 있었지만 지금 와서 돌이켜 보면 모두가 복된 삶이었구요. 잘 자란 1남 3녀와 그 자녀들이 모두 하나님 안에서 잘 성장해 줬고 잘 자라고 있어 행복해요. 그리구 너무 하나님 얘기만하면 듣기 거북해 하시는 분들도 계실텐데요.”
이 명예회우가 기독집안임을 설명하기 위해서는 지난 2007년 작고하신 이복량 장로의 자서전을 풀어보아야 한다.
고 이장로는 부인 고 박정희 권사를 가문의 아브라함이라고 했다. 집안에 믿음을 가져왔고 신앙을 키운 장본인이기 때문이다. 이복량 장로는 생전에 슬하 자손 56명을 위해 새벽 마다 기도를 올렸는데 일일이 기억하기가 쉽지 않아 수첩에 이름을 적어놓고 중보기도를 했다고 썼다.
2남 3녀 중 장남이 이효계 명예회우이며 차남이 화정 충현교회를 담당하는 이효은 목사이다. 그리고 세 딸도 모두 권사와 집사로 교회에 봉사하고 있으니 하나님이 주신 은혜 이루다 헤아릴 수 없을 뿐이라고 기술하고 있다.
대학 발전기금 900억 모금
-古稀의 나이인 2005년에 모교의 총장이 되셨어요.
“숭실대학교 11대 총장이 돼서 들여다 본 숭실대학교의 현실은 암울했습니다. 특히 재정사정이 어려웠어요.
8만여 대학 졸업생과 8천여 교회에 기도 편지를 썼어요. 일상처럼 새벽기도회에서 기도하고 있을 때 갑자기 음성이 들렸습니다. ‘너부터. 너부터’라는 또렷한 음성이었습니다. 환청인가 했지만 똑 같은 소리가 일주일 동안 계속되었습니다.
기도를 계속하는 중에 깨달음이 왔습니다. ‘다른 사람에게 손을 벌리기 전에 너부터 하라’ 는 말씀이었던 것입니다.
임기4년 동안의 연봉을 ‘학교발전기금’으로 먼저 바치라는 얘기가 아닌가? 솔선수범하라는 명령을 받들기가 참으로 힘들었습니다.”
-말들도 많았을 것 같은데요?
“찬반이 분분했습니다. 반대하는 일부 교수들의 불만도 있었구요. 그러나 무보수 총장으로의 결단은 숭실대학의 재단이사회 뿐만 아니라 대학 내 구성원 간에 특히 동문회 그리고 기독교계와 교인들에게 엄청난 충격을 주었습니다.
총장 보수를 발전기금으로 헌납한 일은 시너지 효과를 발휘하여 4년 임기를 마치게 될 즈음에는 숭실대학교 개교 108년 사상 가장 많은 발전기금이 조성되었습니다. 약 900억원이었습니다.”
-모든 공직에서 물러나셨지만 요즈음도 바쁘시지요?
“네 바쁘게 지냅니다. 중학교 2학년 때부터 시작한 ‘새벽기도회’의 기도생활을 새벽 4시부터 계속하고 있구요. ‘생명의 삶’을 교재로 QT(묵상시간)를 갖고 있습니다. 2007년에 설립된 사단법인 ‘누가선교회’회장직을 맡고 있고 34년 전에 설립된 ‘한국성서연구회’회장일도 계속하고 있습니다. 각종 친목 모임에 참가하고 그러다 보면 한 주일이 바쁘게 지나가곤 합니다.
특히 토요일에는 아침 7시 서울 ‘새순교회’에 모여 성경공부를 합니다. 그리고 매주 토요일 오후 3시에는 장신대 MDB 출신인 막내딸
이소윤 전도사가 이끄는 베델 공동체 예배모임에도 참석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주변 산책과 헬스 등 운동도 게을리 하지 않고 있습니다.”
언론이 바로서야 나라가 바로선다.
-대한언론인회명예회원이 되신 동기하고 언론관에 대한 말씀을?
“숭실대학 총장시절인 2007년에 ‘한국성서연구회’의 회원으로 만난 제재형회장의 추천으로 영광스럽게 명예회원이 되었습니다.
40여년의 공직생활을 통해 국민의 알권리가 중차대함을 느꼈고 그 매개체인 언론은 破邪顯正의 본질을 구현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언론인에 대해서는 마음속으로 경외심과 고마움을 간직하고 있습니다.“
그럼 요즘 언론에 대한 소견은 어떠신지요하고 캐물었다.
잠시 멈칫하던 이 명예회우의 답변이 가슴을 때렸다.
“요즘 언론요. 어휴! 파사현정이란 말씀을 드렸는데 언론이 바로서야 나라가 바로 선다는 말이 생각납니다.”
-아직 정정하시고 열정도 넘치십니다. 나라를 위해 한 번 더 뜻을 펼치신다면 어떤 일을 하시고 싶으십니까.
“다시 한 번 새마을운동을 승화 발전시키는 데 남은 열정을 불태우고 싶은 생각은 있습니다. 이른바 ‘실버 새마을 운동’을 펼치고 싶은 생각입니다. 아울러 새마을 운동의 국제화에도 작은 힘이나마 보탤 수 있다면 말입니다.”
이 명예회우와 인터뷰 한 3일 뒤 박근혜 대통령은 “새마을 운동은 현대사를 바꿔놓은 정신혁명이었다”며 시민의식 개혁운동으로 승화시키자고 말했고 근면, 자조, 협동의 새마을 정신에 나눔과 봉사, 배려의 정신을 더하여 승화시키자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