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의 일과는 빡빡하다. 나이들면 대부분 ‘아침형 인간’으로 변하는 데 젊었을 적부터 불면증 증세가 있어 간밤에도 뒤척였다. 잠이 쉽게 오지 않아 컴퓨터 앞에 앉는다. 세로쓰기로 작성 된 28년 전 김대중 전 대통령 관련 글을 가로쓰기로 워드작업을 한다. 김수환 추기경, 박정희 전 대통령 평가, 반기문 유엔사무총장, 최명신 전 주월사령관 등 주요 인사들의 인터뷰 기사를 정리하여 단행본으로 펴낼 계획이다. 자정이 넘어 잠자리에 들었다.
아침 아홉시 경 일어났다. 가볍게 아침식사를 한 뒤 종합신문 2개, 경제지 1개를 꼼꼼히 읽는다. 뉴스의 흐름을 파악하기 위해 좌편향 신문은 인터넷을 통해 검색한다. 벽시계를 본다. 오전 11시다. 인터넷신문 ‘뉴스앤피플 닷컴(newsandpeople.com)’에 주요 기사를 업데이트하고, 자신이 쓴 ‘시론’ 등을 올린다. 오후 1시가 훌쩍 지난다. 늦은 점심을 먹고 월간지 등 자료를 챙겨 읽고 매주 4편의 시사칼럼과 청탁받은 원고를 쓴다. 만추의 햇살을 받으며 집 부근 뚝방 길을 산책한다. 바쁘게 활동하는 게 운동이고 건강을 유지하는 비결이다.
현역 보다 더 바쁜 뉴실버세대 언론인 呂永茂 본회 논설위원의 일과다. 지난달 14일, 프레스센터 로비에서 만났다. 잉크 빛 양복에 빨간 넥타이를 매고 중절모를 쓴 멋쟁이 노신사다. 호적엔 1935년생이지만 실제 나이는 한 살 더 많아 79세. 우리나이로 여든이 믿기지 않을 정도로 주름살이 없다. 사진 촬영을 하고 부근 식당에 들러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나 듣자며 긴장의 끈을 풀었다. 맥주와 소주를 반주로 곁들었다. 주량은 맥주 한 잔. 술은 체질적으로 맞지 않는다고 한다. “선친도 전혀 술을 드시지 않아 대물림 같다”는 것. “술을 마셨으면 대인관계도 원만하고 세속적인 출세도 했을 것”이라며 씁쓸하게 웃는다. 담배는 두통 현상이 일어나 젊었을 때부터 피우지 않는다고 한다.
“트위터 팔로어 2만 여명”
-인터넷신문 ‘뉴스앤피플’의 경영은?
“인터넷신문이우후죽선처럼 수백개나 되어 광고수주가 어렵습니다. 처음엔 사무실을 따로 냈으나 지금은 집에서 혼자 사이트를 관리하며 운영하죠. 콘텐츠 조정과 레이아웃을 바꿀 때 웹마스터의 도움을 가끔 받아요. 본회 지용우 논설고문, 정운종 상임이사 등 열다섯 분이 필진으로 참여하여 많은 도움을 받고 있습니다.”
뉴스앤피플 닷컴은 헌법수호와 국가정체성 및 정통성확립 등을 주요 보도원칙으로 2003년 창간했다. 하루 방문자 수 1만 여 명에 페이지 뷰는 많지 않아도 소수 정예 오피니언 리더들이 즐겨 찾는다. 국내 오피니언리더 1,000여 명에게 뉴스앤피플 주요 칼럼을 이메일로 보내준다. 트위터 팔로어도 2만 여 명에 이른다.
이와는 도로 자유․평화․인권을 삼대 지표로 ‘남북전략연구소(www.libertyclub.org)’ 웹사이트를 운영한다. 남북관계와 통일․외교안보 정보를 비롯하여 언론기고문 등을 올린다. 동아일보 부설 ‘통일연구소장’을 지낸 呂 회우는 요즘도 국립외교원, 통일연구원, 국방연구원, 아산정책연구원, 관훈클럽 등 통일과 언론관련 세미나는 빼놓지 않고 참석하여 최신 정보의 흐름을 파악하고 자료를 수집한다.
“지도층 몰염치에 사회 혼탁”
-박근혜 정부의 대북정책은 어떻게 보시는지요?
“원칙과 신뢰를 강조하는 박근혜 정부의 한반도 신뢰프로세스 기본 스탠스는 옳다고 봅니다. 정부는 북한의 핵 폐기와 개혁 개방, 호전성을 버려야 대화가 가능하다고 주장하지만, 북한은 군을 전진 배치하고 대남 체제전복과 사이버전을 이용한 교란작전을 펼 뿐 아니라 모든 약속과 합의를 헌신짝처럼 버리기 때문에 신뢰프로세스 실현성은 회의적입니다.”
북한 김정은 세습 수령 독재체제는 권력투쟁과 억압정책으로 인한 민심이반, 자유의 바람 유입 등으로 체제든 국가든 붕괴위협이 항상 도사리고 있다고 전망한다. “우리 정부는 평화통일기반 구축은 물론 북한 붕괴에 대비하여 유엔을 활용하고 국군진입에 대한 국제법적 논리 개발, 난민 수용문제 등 만반의 대책을 세워한다”고 주문한다.
-요즘 국회는 정치는 없고 정쟁만 있는 것 같습니다.
“그렇습니다. 대선이 끝난 지 1년 가까운 지금 민생은 도탄에 빠졌는데 여야가 국정원 댓글과 NLL을 둘러싸고 자고 깨면 이전투구에 매몰돼 있으니 정치권에 대한 국민들의 좌절과 혐오증은 하늘을 찌를 듯 합니다” 여야정치인들의 역사의식 결여와 안보불감증, 성숙하지 못한 정치행태는 정신연령을 의심할 정도라고 꼬집는다.
“사회지도층의 도덕불감증과 몰염치가 사회를 더욱 혼탁하게 만든다”고 지적하며 “小我를 버리고 大我를 위해서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발휘, 청렴성, 준법정신, 리더십 등을 솔선수범해야한다”고 강조한다.
공채 경향 2기, 동아 3기 합격
呂永茂 회우는 1959년 고려대학교 법대를 나와 경향신문과 동아일보 공채 기자로 언론계에 입문했다. 취업이 하늘의 별따기처럼 어렵던 그 시절 공채로 들어갈 수 있는 곳은 극히 제한적이었다. 신문사와 은행 두 곳을 두고 저울질하다 신문사를 선택했다. 1959년 말 60대1의 경쟁을 뚫고 경향신문 공채 2기에 합격했다. 입사 동기는 林判鎬, 鄭泰卿, 曺圭晉, 申光日, 金珍培 6명. 우연인지 몰라도 서울대 2명, 고려대 2명, 연세대 2명이 뽑혔다. 자유당 독재와 경향신문 폐간사건은 누구나 아는 사실. 입사 4개월 만에 신문이 폐간 되어 실업자 아닌 실업자 신세가 됐다. “언론의 생명은 政派와 권력으로부터의 독립과 자율성의 견지입니다. 언론이 이 두 가지 원칙을 지킬 때 일시적 난관은 있을지라도 영원한 생명력을 가질 수 있을 것으로 확신한다”고 당시를 회고한다.
-경향신문 공채 출신으로 동아일보에 경력기자로 입사할 수도 있었을 텐데요?
“경향 폐간 후 실업자의 고통을 무한정 견디기 힘들어 현역 입대를 했어요. 제대 한 뒤 한종우 경향신문 사장께 인사를 드렸더니 다시 일하자고 하더군요. 경향의 경영도 어려운 상태였고, 고시공부를 하려고 고사 했습니다”
1년 가까이 고시공부에 매달렸으나 졸업 후 공백기가 길었고, 나이는 들어 불안한 생각이 들었다고 한다. 마침 동아일보 공채기자 모집 공고를 보고 도전, 1961년 1000대 1의 경쟁을 뚫고 합격했다. 공채 3기 동기생은 張潤煥, 劉秉武, 朴舜在, 安聖悅등 다섯 명으로 세 분은 이미 고인이 됐고, 張潤煥과 呂 회우만 생존해 있다는 것.
동아일보 입사 한 달 반 만에 5․16이 터졌다. 경향신문 폐간으로 1년 간 고생했는데 또 다시 정치 소용돌이에 휩싸여 충격이 컸다. 당시 李雄熙(전 문공무장관) 선배를 따라 李振羲(전 문공부장관) 기자와 함께 중앙청에 출입했는데 취재라기보다 최고회의 배포문을 기다리는 게 고작이었다. 민정이양이 가까워지던 1963년부터 취재 탄압이 다소 누그러져 독자취재가 가능했다.
1971년부터 3년 간 청와대 출입을 하면서 “고 박정희 대통령은 권력 비판자들에겐 단호했으나 이웃집 아저씨처럼 다정다감했다”고 회고한다. “청와대의 야당으로 통하던 육영수 여사가 나환자촌을 방문했을 때 환자들의 손을 잡고 격려하는 모습을 곁에서 지켜보며 그 분의 인품을 존경하게 됐다”고 한다. 육 여사가 연말이면 예쁜 다이어리에 ‘아무게 기자님’이라고 직접 이름을 적어서 청와대 기자실로 보냈는데, 성할무(茂)자를 호반무(武)자로 잘 못썼다. 육영수 여사는 청와대 행사 때마다 만나면 “내 참 미안해서∼”하던 모습이 지금도 선명하게 떠오른다고 한다. 유신체제를 강력하게 비판한 동아일보는 1974년 세계 언론사에 유례가 없는 ‘광고 탄압’을 받았고, 그는 몇 개월 월급을 받지 못했다고 한다.
‘땡全 뉴스’계기 시청료 거부운동
-가장 기억에 남는 취재는?
“1970년 3월17일 밤11시께 서울 강북 강변도로(지금의 강변북로) 코로나 승용차 안에서 미모의 여인이 숨진 채 발견 된 ‘鄭仁淑 사건’이죠. 세상을 발칵 뒤집어놓은 이 사건은 고관들의 섹스 스캔들로 고위층과 위정자들의 도덕성에 치명타를 가했지요. 사건 다음 날 정일권 총리를 공관에서 만났습니다. 정 총리는 “내가 평소 여자를 좋아하고 정인숙을 사랑한 것은 사실입니다”라고 솔직히 말했어요. “그러면 누가 총을 쏘았습니까” “경찰수사결과 보고를 받아보니까 오빠 정종욱이가 쏘았어요” “왜 쏘았답니까” “오빠가 앞에서 운전을 하는데 뒤에서 동생이 남자와 키스를 하고 난잡하게 노니까 오빠로서 울분이 치밀어 올라서 그랬다는군요” “정종욱 자신은 왜 다리에 총을 맞았습니까” “자세한 것은 앞으로 수사를 더 해봐야 알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정총리가 취재 도중 몇 차례 응접실서 안으로 들어갔다 나와 수사당국과 의견을 조율하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석간 마감이 임박하여 그대로 나와 정치부장에게 보고하고 기사를 쓰려는데 총리실에서 다시 불러 하루아침에 총리를 두 번 만났다. 새로운 얘기는 없었고 앞에 말한 것이 진실의 전부라고 강조했다. 19년간 옥살이를 하고 풀려난 정종욱은 “나는 동생을 죽이지 않았다"고 살인혐의를 부인해 미스터리는 여전히 남았다. 논설위원으로 근무하던 1983년 ‘신동아’의 청탁을 받아 ‘정인숙 미스터리’를 집중 취재하여 9월호에 실었다. 40만부가 팔려 ‘낙양의 지가’를 올렸다고 한다.
“또 한 가지 기억에 남는 것은 1986년 4월 3일자에 제가 쓴 사설 ‘KBS시청료 거부운동-공정보도 원리 살려 공영방송 신뢰회복을-’입니다. 5공 시절 ‘땡全’뉴스를 계기로 편파왜곡방송의 문제점을 지적하고 시청료 거부운동의 불가피성을 제기 했어요” 그 뒤 동아일보는 KBS와의 날선 공방을 펼쳤고, 편파보도와 시청료 거부운동의 불씨를 지폈다.
“돈은 없어도 일이 있어 행복”
呂 회우는 격동기 언론현장에서 퇴임한 뒤에도 인터넷신문을 운영하고 저술활동과 칼럼을 집필하며 언론 외길을 외롭게 걷고 있다. 1990년대 이후 매년 또는 격년으로 ‘괴물제국 중국’, ‘국제테러리즘 연구’, ‘테러리즘과 저항권’, ‘통일의 조건과 전망’, ‘북한 어디로 가나’, ‘좌파대통령의 언론과의 전쟁’ 등 통일과 테러리즘, 언론에 관한 저서 20권을 출간했다.
-인세는 많이 받으시나요?
“출판계가 불황인데다 자기계발서나 회고록, 소설과 힐링류 등 가벼운 읽을거리나 팔릴 뿐 교양물과 인문서적은 외면하는 추세지요. 3800만대의 스마트폰 등장으로 출판계는 쑥대밭이 되었습니다. ‘좌파대통령의 언론과의 전쟁(2007년)’은 권력에 의한 피해공포 때문에 출판사 마다 외면해 자비로 출판하여 전무후무한 언론탄압사의 기록으로 남겼습니다”
고려대학교에서 국제법 박사학위를 취득한 그는 세종대 석좌교수, 미국 조지워싱턴 대학 방문교수를 지냈다. 고려대학교 대학원, 외국어대학교, 한양대학교 등에서 강의한 학구적인 언론인이다. “언론인 보다 교수가 더 어울리는 직업 같다”고 하자 “교수는 아무래도 따분한 것 같다”고 말한다.
-이제는 치열한 삶에 여백이 필요한 것 같은데요?
“이 나이에 생계형 글쓰기를 한다면 믿겠어요?”하며 반문한다. “그래도 씀으로서 삶을 확인한다”는 것. 연금이 없으니 노후가 불안하다. 한국인의 수명은 늘었으나 삶의 질을 따질 여력 없이 병치레하며 막막한 노후를 보내는 이들이 많다. 가정 마다 한 가지 걱정거리를 안고 살듯이 ‘무거운 業報’가 생활의 근간을 흔들었다고 한다. “신세진 사람은 많은 데 죽기 전 식사한 끼 제대로 대접 못해 늘 미안하다”고 덧붙인다. “한국에서 떵떵거리며 살려면 부패구조에 가담하거나 불그스레한 진보에 발을 담그든지 양자택일 밖에 없는 것 같다”고도 한다.
“내성적 성격으로 처세술은 제로”라고 자평한다. 무대 에서 ‘함량미달들’이 ‘완장’차고 설치는 꼴은 못 봐주는 스타일이다. 부화뇌동하거나 아부성 발언은 체질에 맞지 않는다. 친화력은 부족해도 남을 해코지하거나 험담은 않는다. 원칙과 신뢰를 존중하며 묵묵히 자신의 일에 최선을 다할 뿐이다.
“건강을 지키면서 바쁘게 하루를 보낼 스케줄이 풍부하다는 것을 하나님께 감사하고 행복하게 생각하며 산다”며 웃는다. 올해 결혼 51주년을 맞은 殷官姬(76) 여사와의 사이에 1남1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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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건강을 유지하며 바쁘게 하루를 보낼 스케줄이 있다는 것을 행복하게 생각하며 산다”는 呂永茂 본회 논설위원.
2. 呂永茂 회우가 1972년 청와대 출입기자 시절 신년하례식 때 육영수 여사와 악수를 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