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인은 1933년 6월 18일 충북제천에서 태어나 용산고와 중앙대 법대를 졸업했다. 미국 인디애나대 신문대학원을 수료하고 1955년 한국일보 견습 3기로 언론계에 투신, 한국일보 사회부차장 외신부장 기사심사부장, 주월특파원, 편집부국장 겸 주일특파원, 편집국장대리, 코리아타임즈 편집국장, 부사장 겸 편집인, 한국일보 편집인 상임고문, 코리타임즈 사장을 두 번 역임 했다..
언론에 종사하시면서 고인은 세계 안가본 곳이 없을 정도로 해외 취재를 많이 다닌 것으로 유명하다. IOC위원회 보도위원으로서의 눈부신 활약도 돋보인다. ‘파사현정’이 좌우명인 고인은 퇴직 후 대학 강단에서 신문편집론 등을 가르치고 ‘인형의 계곡’ 등 외국 소설들을 번역, 한국문학상과 한국예술문화단체총연합회 예술문화대상 등을 수상했다.
대한언론인회는 지난해 12월 16일 오후 3시 고인의 빈소에서 언론인장을 거행했다. 이날 언론인장 행사에는 홍원기 회장을 비롯 제재형 고문, 김은구 한기호 상담역, 송효빈 감사, 이태영 부회장, 권혁승 홍순일 유일연 김두근 이억순 회우 등 30여명이 참석했다.
정태연 고문님을 애도하며
홍선희 (전 코리아타임스 편집위원)
정태연 고문님!
어찌 이렇게 어이없이 가십니까.
정 고문님은 부지런하고 깐깐하며 악바리 근성이지만 속으로는 맑고 정이 깊은 분이었고 오랜 기간 유일한 여기자였던 저를 아껴주셨습니다.
성년이 되어서는 제 아버지와 지낸 시간보다 더 많은 시간을 한 공간에 있었던 것 같습니다.
고문님은 58년 동안 한국일보사와 성쇠를 함께 하며 중학동 14번지를 지키셨습니다. 영어를 유창하게 구사하여 장기영 사주의 오른팔로 특별 취재 혹은 사주를 보좌하기 위하여 국내외를 누볐고 공항을 사회부 출입처로 발굴했습니다. 사회부 차장, 외신부장, 편집국부국장을 거쳐 4년간 주일특파원으로 근무했습니다.
1959년 방콕으로 파견, 민항기 비행관할 구역설정을 위한 ICAO 취재를 시작으로 1백회 이상 해외취재를 다닌 덕분에 동료 기자들의 시샘의 대상이 되기도 했습니다. 1960년 라오스 내전, 61년 미국과 중남미 14개국 및 유럽 26개국 순레, 62년 올림픽예선 원정 축구단, 63-65년 동남아 순례 취재 등 굵직한 취재를 다녔습니다.
1960년 4·19 혁명으로 이승만 대통령이 하야, 하와이로 망명했을때 고문님은 유학생을 가장하여 단독 취재에 성공해서 사진과 기사를 항공편으로 보냈고 장기영 사주는 좋아서 춤을 덩실덩실 춤을 추었다고 합니다.
IOC총회에 장기영 위원 보좌관으로 동행했고 이후 장강재회장 재임시에도 한국일보 및 자매지들을 통해 올림픽을 홍보하는데 애쓰셨습니다. 1988년 서울올림픽기간중에는 코리아 타임즈가 공식 신문 제작을 맡았으며 그런 노력 덕분인지 장강재회장이 사마란치 위원장으로부터 IOC 위원을 제의받는 쾌거를 만들어냈습니다.
지난해 11월25일 발행된 한국일보 전직사우회신문인 한우회보와의 인터뷰에서 정고문은 자신의 인생 모토가 파사현정(破邪顯正· 나쁜 것 잘못된 것을 피하고 올바른 것을 세운다)이라면서 창간 60주년을 맞는 한국일보를 재창간하는 정신으로 하루속히 난국을 해결해주기를 신신당부하셨습니다.
정고문님은 오랜 기간 코리아 타임즈의 랜드마크이셨습니다. 1974년 편집국장으로 부임해 이사, 상무, 사장, 고문으로서 영자일간지의 입지를 단단하게 만들었습니다. 지방판을 신설하였고 대사관이나 재한 외국인 커뮤니티에서 벌어지는 일에 지면을 할애했습니다. 초짜기자시절 몇 년간 제 업무는 저녁에 열리는 대사관 리셉션을 취재하여 시내판 신문에 올리는 것이라 이태원 꼭대기에서 인적없는 밤길에 잡히지 않는 택시를 기다리며 원망한 적이 부지기수였습니다. 담당자가 확실하지 않은 기삿거리나 외국인과의 즉석 인터뷰를 수시로 지시하고 편지쓰기 혹은 창립기념일 봉투 타이핑 등을 시키셔서 ‘왜 하필 나’냐며 툴툴거리곤 했습니다. 저를 가깝게 생각하신 것이겠지요.
부음을 접하자 코리아 타임즈 사우들이 여기 저기에서 전화를 해오기 시작했습니다. 그만큼 사우들의 청춘, 장년 시절 삶에 있어서 정태연이라는 분이 막중한 몫을 차지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인생은 정태연님으로 인해 맛깔스러웠습니다. 우리 마음속의 빈 자리는 오래 갈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