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조어란 시대의 흐름과 사회적 트렌드를 반영한 세태 풍자다. 트위터와 SNS를 통해 실시간으로 퍼지면서 우리의 삶에도 영향을 미친다. 신조어를 모르면 구닥다리취급 받기 일쑤고 젊은이들 대화에도 끼어들 수 없다. 경기침체가 장기화되면서 가난과 빈곤을 의미하는 ‘푸어(poor)’ 시리즈는 세대를 초월하여 팍팍해진 삶을 드러냈다. 대학생시절부터 다채로운 스펙을 쌓고 많은 자격증을 가졌으나 취업이 힘든 20∼30대는 ‘스펙푸어’다.
임시직이나 비정규직 근로자로 열심히 일 해봤자 생활형편이 조금도 나아지지 않으면 ‘워킹푸어’로 전락한다. 어렵게 직장을 구한 뒤 결혼자금을 대출 받아 결혼하면 신혼의 단꿈에 빠질 새도 없이 ‘허니문푸어’가 되어 대출 이자 갚느라 허덕인다. 임신과 출산에 드는 비용 또한 만만찮아 출산과 함께 ‘베이비푸어’가 되어 쪼들리는 살림에 한숨이 절로 나온다.
무리한 대출로 집을 산 뒤 이자와 대출금을 갚느라 쪼들리는 ‘하우스푸어’는 나라가 걱정할 만큼 심각하다. 베이비부머세대의 은퇴가 본격화되면서 은퇴자금을 모아 프랜차이즈 창업에 쏟아 부었다가 ‘프랜차이즈푸어’가 되는 경우도 허다하다. 자식 뒷바라지하느라 등골이 휘면서 노후대비를 제대로 못한 채 황혼인생을 힘겹게 사는 ‘실버 푸어’는 고령화 사회의 비극이다. 하나의 푸어 고비를 넘기면 또 다른 ‘푸어’가 장애물이 되어 삶을 팍팍하게 만드는 우리사회의 서글픈 현상이다.
#엄마 재력·정보력 자녀 스펙 좌우
식을 줄 모르는 교육열풍을 풍자한 신조어가 지난해는 유난히 많았다. ‘인강(인터넷 강의)’을 2배 속도로 듣는 습관이 있는 학생들은 학교 선생님의 느린 강의에 속이 터져 ‘인강증후군’이란 말이 등장했다. 대입을 위해 필수로 준비해야 하는 수능, 학생부, 논술을 일컫는 ‘고3 죽음의 삼각형’에 입학사정관제가 추가돼 ‘고3 죽음의 사각형’이 됐다.
성적이 아닌 잠재력을 보고 신입생을 선발하겠다는 취지로 도입한 입학사정관제는 ‘엄마사정관제’라는 신조어를 낳았다. 엄마의 재력과 정보력에 따라 자녀의 ‘스펙’이 좌우된다는 얘기다. 학원가 커피전문점에 모여 사교육 정보를 교환하는 어머니는 ‘카페맘’, 경기장까지 따라가 자녀 뒷바라지 해주는 ‘사커맘’은 못 말리는 현대판 ‘맹모(孟母)’들이다.
가난한 농가에서 소를 팔아 자식을 대학에 보내던 시절에는 대학을 ‘우골탑(牛骨塔)’이라 불렀으나 요즘은 부모의 등골을 뺀다하여 ‘등골탑’이라 부른다. 자식을 해외유학 보내고 마누라는 뒷바라지를 위해 딸려 보낸 뒤 경제적 부담을 안고 홀로 사는 ‘기러기아빠’는 고전이다.
항공료 아끼느라 가족을 만나러 가지 못하는 아버지는 ‘펭귄아빠’, 가족이 보고 싶을 때 언제든지 갈 수 있는 재력의 소유자는 ‘독수리아빠’다. 해외 유학 보낼 형편이 못돼 강남에 소형 오피스텔을 얻어 아내와 자식만 강남으로 유학 보낸 아빠는 ‘참새아빠’라고 조롱한다.
#고교생 “힘들어요, 졸려요, 잘려주세요”
부모들은 사교육비 대느라 휘청거리고 학생들은 학교와 학원을 오가느라 파김치가 된다. 지난 12월 초 서울 강남의 한 고등학교 2학년 학생들이 대선후보에게 쓴 편지가 눈길을 끌었다.
“학교와 학원을 쳇바퀴 돌 듯 도는 일상에 새벽 5시30분에 일어나 학교와 야간 자율학습, 학원, 독서실까지 거치면 밤늦게 귀가합니다. 언제나 잠이 부족합니다”
“0교시(정규수업 시간 전 아침 수업)까지 하면서 쉴 시간이 줄고 웃음도 잃었습니다. 제발 살려 주세요”
“자는 학생이 4분의 3이 넘습니다”
고교생들의 호소를 요약하면 “힘들어요, 졸려요, 살려 주세요”이다. NIE 특강을 하다보면 조는 학생들이 많아 강의 주제가 어렵거나 내 강의가 재미없어 그러려니 했지만, 공교육과 사교육을 겹치기로 받느라 학생들이 지친 탓이다. 미래학자 앨빈 토플러는 “한국 학생들은 하루 15시간 이상 학교와 학원에서 자신들이 살아갈 미래에는 필요하지 않은 지식을 배우기 위해 허비하고 있다”고 지적했듯이 삶의 지혜보다 대입에 필요한 지식습득에 매몰되고 있는 게 우리의 교육풍토다.
#사교육비 월 평균 134만원…노후까지 위협
사교육 의존도가 높아지면서 사교육비에 허리가 휘는 ‘에듀푸어(Education Poor)’ 가구가 부쩍 늘었다. 현대경제연구원 조사에 따르면 소득이 낮은 편인데도 교육비를 많이 지출하는 에듀푸어가 전국에 82만4000가구에 이른다고 한다. 자녀를 유치원 이상에 보낸 9가구 중 한 가구 꼴이다.
한 시중은행의 사교육비 지출 조사결과 유치원은 월평균 89만원, 초등학교 93만원, 중학교 108만원, 고등학교 149만원 등 월평균 134만원을 쓴다는 구체적인 수치가 이를 뒷받침한다. ‘에듀 푸어’는 중산층의 붕괴를 가속화하고 노후까지 위협한다.
자녀교육은 부모의 의무이고 미래를 위한 투자라지만 가계 상황을 고려하지 않고 자녀교육에 올인 하다 보니 빚을 내서까지 사교육에 매달리는가하면, 자녀를 유학 보냈다가 빈곤층으로 전락하는 가정을 주위에서 흔하게 본다. 자식이 설령 성공한다고 해도 예전처럼 부모의 노후를 책임지는 것도 아닌데도 교육열은 식을 줄 모른다.
#사교육 금지 박근혜정부가 풀어야 할 몫
아이들은 사교육에 시달리고 학부모는 사교육비 대느라 허덕인다. 박근혜 대통령 당선자는 사교육의 원인인 선행학습을 ‘공교육정상화특별법’을 만들어서라도 없애겠다고 공약했으나 그리 쉽지는 않을 것이다. 헌법재판소는 2000년 ‘과외금지 조치'에 대해 ‘과도한 기본권 침해’라며 위헌 결정을 내린바 있다. 민주통합당도 ‘헌법을 개정해서라도 사교육 없는 세상을 만들겠다’고 했다. 공교육 정상화와 사교육 금지는 우리 모두의 바람이다.
박 당선자는 이밖에도 유아에 대한 수당 지급, 0∼5세 무상보육, 필수 예방접종 확대, 국공립 어린이집 확충 등을 공약했다. 또 고등학교까지 의무교육을 확대하고 대학 등록금을 반값 수준으로 낮춰주겠다고 약속했다. 이 같은 교육 및 보육공약을 실행하기 위해서는 5년간 44조 원 가량의 재원이 필요한 만큼 실현성 여부는 미지수다. 학교폭력과 자살, 교권 붕괴, 학생들을 이념교육으로부터 벗어나게 하는 것도 풀어야 할 과제다.
12‧19 대선과 함께 치러진 서울시 교육감 재선거에 당선된 문용린씨는 학생인권조례 등 ‘곽노현표 혁신교육’에 브레이크를 걸고 ‘도덕ㆍ인성교육 활성화’를 통한 교육의 기본 확립을 우선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공교육이 제대로 작동해야 아이들을 안심하고 학교에 보내고 ‘에듀푸어’로 전락할 염려도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