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일본의 NHK-TV 을 자주 보는 편이다. 그러다가, 작년 연말에는 이 텔레비전을 통해 참으로 기이한 장면을 내 눈으로 직접 보고는 참으로 놀랐다.
그것은 일본의 하원 격인 중의원이 해산을 결의하는 장면이었다. 의장이 짤막한 천황의 ‘해산’ 명령서 낭독을 끝내자, 의석에서는, 누구의 선창도 없이 일제히 ‘만세 삼창’이 일어났다. 여야의원들은 한결같이 대단히 즐겁다는 듯이 이 기이한 행사에 동참하고 있었다.
그렇다면 그들은 왜 박수를 치고 만세 삼창을 한 것일까, 또 중의원 해산권은 현직 수상의 전권 사하이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천황의 해산 명령서 낭독은 왜 필요했던가. 일본과 일본의 정치에 관한 약간의 지식을 가졌다는 나로서도 전혀 이해가 안되는 광경이었다.
이 충격 때문에 나는 내가 젊었을때 읽었던 일본에서는 꽤 유명한 한 논설을 다시 찾아볼 생각이 났다. 그것은 ‘타락론’ 이라는 제목의 것이었다.
‘반년동안에 세상은 변했다. 천황폐하의 방패를 자처하는 나는 천황의 슬하에서 웃여며 죽겠고 결코 뒤돌아보지는 않으리. 이와같이 젊은이들은 꽃으로 졌지만 같은 그들이 살아남아 암시장의 장사꾼이 되었다. 백년의 목숨을 원하지는 않으리, 언젠가는 천황의 방패로 사라질 그대와 맺어지고 이렇게 용감하게 배필을 보낸 아낙들도ㅡ 반년의 세월이 지나자 부군의 위패 앞에 엎드리는 일도 사무적인 행사로 변하고 얼마 안 가 죽은 낭군과는 다른 새 모습을 가슴에 품어 안을 날이 멀지 않았다. 인간이 변한 것이 아니다. 인간은 원래 그런 것이고, 변한 것은 세상의 거죽뿐이다.
타락론은 이렇게 시작된다. 내 번역이 시원찮아 그렇지 이것은 실로 명문장이었다. 이논설은, 우리로 치면 해방 다음해인 1946 4월 당시 마흔살이었던 괴짜 문인 사카구치 앙고(1906~1955)가 한 잡지에 발표한 작품이었다.
그는 걔속해서 쓰고 있다. ‘이 전쟁을 일으킨 자는 누구인가. 마지막 수상을 한 수상을 한 도조’ 인가 군부인가. 그렇기도 하지만 그러나 또한, 일본을 관토하는 거대한 생물, 역사의 어쩔수 없는 의지였다고 할 수도 있다. 일본 사람들은 역사 앞에서는 그저 운명에 유순한 어린아이에 불과했다. 그렇다면 어떤 사람이 전쟁의 근원이었던 무사도를 안출했는가. 이것도 역시 역사의 독창이거나 또는 후각이었을 것이다. 무사도는 인성과 본능에 대한 금지조항이기 때문에 비인간적 반 인성적인 것이지만 동시에 그 인성이나 본능에 대한 통찰의 결과이기 때문에 오히려 전적으로 인간적인 것이다.
내가 특히 이 논설을 여태껏 기억하는 이유는 곧 이어 전개되고 있는 천황의 본질론 때문이었다.
‘나는 천황제에 관해서도 극히 일본적인(따라서 혹은 독창적인)정치적 작품성을 본다. 전황제는 천황에 의하여 만들어진 것이 아니다. 천황은 때로는 스스로 음모를 일으킨 일이었지만 대체로 아무 일도 하지 않았으며 그런 음모는 언제나 성공한 일이 없고, 귀양을 가거나, 스스로 깊은 산골자기에 숨거나 하는 결과를 낳았고 그래서 결국은 언제나 정치적 이유에 의하여 다른 무리들로부터 그 존립을 인정받아 왔던 것이다.
요컨대 전쟁도 교육도 다 천황의 명령에 의하여 실시되는 것으로 알고 있었다. 이것이 다 허구였다니, 사카구치 앙고의 글을 읽고 놀라지 않을 사람이 없었던 것이다.
일본은 천 여년동안 무인정치를 해내려왔다. 전국을 지배하게 된 ‘막부’의 역대수장들은 자기가 자기 이름으로 직접 호령을 하기보다는 천황이 호령하는 것으로 위장하고 자기 스스로가 맨 전저 이에 적극 복종하는 자세를 취하는 것이 통치에 덩축 효과적이라는 것을 깨달았던 것이다. 그래서 무력한 천황은 천황대로 그대로 두고 자기 천황으로부터 이른바 ‘정이대장군’(오랑캐를 다스리는 장군의 우두머리)으로 임명되었다고 주장하면서, 기실, 정치의 전권을 행사했던 것이다. 이것은 일본사람이라면 누구나 다 아는 사실이엇지만 아무도 그 허구성을 입으로는 말하지 않고 지내왔을 뿐이었다. ‘막부’ 정치가 끝나고, 이른바 ‘명치유신’ 으로 ‘천황의 친정체제’ 가 확립되었다고 떠들었으나, 이런 체질은 달라지지 않았다. 유신이후의 정치를 주도한 군부도 국민들 앞에서는 천황을 지극정성으로 모시는 태도를 취하였지만 실지에 있어서는 아무도 천황의 명령을 기다리지는 않았다. 천황은 다만 의전용이었다.
일본 군부는 누구보다도 천황을 높이 받드는 척 했지만 진실로 천황을 받들지도 않았고 제대로 보고조차 하지 않았다. 천황의 이름을 빌린것은 반대파의 비판을 제압하기 위한 수단이었다. 그러나 일반 국민으로 보면 여전히 천황은 최고 군주요 신화적인 신앙의 상징이었다. ‘막부’ 라는 말도 도꾸가와 시대에는 없었고 당시에는 ‘조정’ 또는 ‘공의’ 라고 지칭했다는 연구결과가 나오고 있다. ‘도꾸가와 막부’ 라는 말은 명치유신 이후에 신군부가 만들어낸 용어 였다는 것이다. ‘조정’이란 무엇인가. 군주가 정치를 의논하고 결정하는 곳이라는 뜻이 아니던가. 역대의 도꾸가와 장군은 그들 자산이 왕이었고 그들의 본부였던 ‘에도’ 성이 바로 ‘조정’이었던 것이다. ‘막부’라는 말은 정치의 중심이라는 뉴앙스보다는, 전장에 가설된 하나의 천막, 하나의 야전군 사령부라는 느낌이 더 강한 용어이다.
어쨌든 많은 일본 사람들이 다 알고는 있었으나, 아무도 입으로 들어내 놓고 말하지 않고 있던 사실을 처음으로 말했다는 점에서 ‘타락론’의 필자는 위대한 사람이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21세기에 접어든 지금도 중의원 해산에 천황의 해산 명령이 낭독되고 여야의원들이 일제히 환호하며 황공하다는 듯 만세삼창을 부르는 장면을 목격하고 내가 놀란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이 아닌가 한다.
이명박18대 대통령이 한국 대통령으로는 처음으로 독도를 찾아갔다는 것도 간단한 일이 아니었지만, 이에 덧붙여 ‘일본 천황이 앞으로 한국에 오려면 역사에 대한 사과부터 해야한다.고 한 말은, 우리로서는 지극히 당연한 요구이겠지만, 일본으로서는 크게 충격적인 발언ㅇ라는 것을 짐작하기에 별로 어려움이 없다.
따라서, 우리는 앞으로 ‘천황’을 ‘일왕’으로 부를 것인가 말 것인가 를 심사숙고해야 할 것같다. 외교를 하려면 상대국의 역사와 상대국 국민의 정서를 깊이 이해하는 것이 필요하다, 따라서, 앞으로 양국간에 불필요한 마찰을 피하려면, 꼭 필요한 경우를 제하고는, 전황에 관한 언급은, 되도록 피하는 것이 옳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