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0년대 중반부터 나는 판문점을 드나들었다. 1972년 여름 彼我(피아)의 군인들끼리 만나 舌戰을 벌이던 양철지붕의 회담장에서 남북의 적십자회담이 열리기 시작 하면서 나의 판문점 출입은 막을 내렸다. ‘출입’이라고 하지만 한달에 한두번 군사정전위원회(Military Armistice commission‧MAC) 본회의(속칭 MAC Meeting)가 열릴때만 지루하기 짝이 없는 설전을 취재하러 그곳엘 갔다.
설전은 회담장 안팎에서 벌어졌다. 회담장 안에서는 군사문제(북측은 정치선전을 주로 했지만). 주로 비무장지대(DMZ)내에서의 정전협정 위반사항을 다루었고 밖에서는 남북의 기자들이 정치체제 논쟁을 벌였다. 우리는 왼팔에 'PRESS', 저쪽은 '보도'라는 완장을 달았다.
처음 만날 때는 서로 매우 점잖게 인사를 나눈다. 회담장 안에서는 악수나 인사도 없이 본회의를 소집한 쪽이 대뜸 발언을 시작한다. 그러나 밖에서는 악수도 하고 修人事(수인사)도 한다. 우리는 그저 취재가 목적이지만 저쪽으로서는 판문점은 선전장이요, 정보수집장이며 대남공작장이기도 하다. 그들의 수법은 이쪽의 처음 나오는 기자에 대한 정확한 정보로 겁을 주는 것이다. 내가 처음 나갔을때 저쪽에서 카메라를 들고 반가이 다가온 40대 후반의 늙수구레한 ‘보도일꾼’이 “리선생 반갑소” 하는 것이었다. 나는 깜짝 놀랐다. 그러나 놀란 기색을 안보이고 그저 웃고만 있었다. 부인한다는건 못난 짓이다. 그는 이어 “아기들은 잘 자랍니까?” 내가 가만히 있자 “딸만 셋이라고 들었는데…” 漸入佳境이다.
그는 처음 보는 나의 성격까지 알았다.
“아아 리선생같이 열정적인 반공투사는 공산주의를 리해하고 우리 편으로 오게되면 누구보다도 열성당원이 될 수 있을 것이오” 그러면서 그는 공산주의자로 전향한 야나기(?) 모라는 사람의 저서를 소개하기도 했다.
그 후 그는 만나기만 하면 나에게 친근하게 접근하며 설득했다. 대체로 만나면 인사가 끝나자마자 설전을 벌이곤 하는데 나를 잘 아는 40대 후반 (나는 그에 관한 정보가 없었다) 만은 그렇지 않았다. 그런 가운데서도 그는 김일성 체제를 늘 자랑했다. 그때만 해도 모든 경제지표가 북한이 우월했다. 나는 말 끝에 “당신네 체제가 우월하다고 합시다. 그런데 왜 해방후 지금까지 5백만이나 되는 사람들이 그 좋은 체제를 버리고 대한민국으로 도망쳐 살고 있을까요” 라고 했다. 나는 그의 말문이 막힐 줄 알았다. 그러나 웬걸 그는 남쪽 임진강쪽을 바라보면서 말했다. “5백만 아니라 5천만이라도 인간 쓰레들은 가도 좋소” 그의 말투는 당당했다.
나는 되물었다. “어째서 월남 동포들이 인간쓰레기란 말이오?” 하자 그는 “혁명의 대열에서 낙오된 자는 인간 쓰레기요” 하는 것이었다.
그들에게 있어 월남 동포들과 그 가족들은 적대계층이다. 1,500만~2,000만명은 된다. 그 ‘인간 쓰레기’ 중 가끔 100명을 골라 남쪽의 월남동포를 만나게 한다. “우리는 장군님 덕에 행복하게 잘 살고 있다”라는 말 훈련을 시켜서. 직경 800m의 판문점 공동경비구역 (Joint Security Area ‧ JSA)은 영화 JSA 같은 젊음의 낭만이 있는 곳이 아니다. 그곳은 인간과 비인간, 평화와 혁명, 말과 폭력이 겉보기에 그럴듯 하게 공존하는 기이한 곳이다. 그곳에는 우리와는 별종의 인간들이 一觸卽發之態勢로 우리를 노려보고 있는, 언제 폭발할지 모를 活火山의 噴火口 같은 곳이다. 거기서 그들은 태권도로 미군을 때려 눕히고 도끼로 미군장교를 때려 죽였다. 그래도 우리는 참아 왔다. MAC본회의가 4백여차례 열려도, ‘평화’를 가장한 복면의 노동당원들과 수없는 대화를 벌였어도 그곳은 60년째 변함없는 非情, 非人間의 非武裝지대일 뿐이다. 그나마 남북이 자유롭게 왕래할 수 있던 (북측보도일꾼들은 남쪽으로 오지 않았지만) JSA는 1976년 8‧18 도끼만행사건후 가운데 선을 그어 서로 넘지 못하게 만들었다. 그전엔 우리가 도시락을 싸가지고 북측 판문각 앞 팔각정에서 까먹으며 “같이 먹자” 하면 처음엔 사양하다가 나중에야 하나둘씩 와 함께 도시락을 먹기도 했다. 우리가 “맛있느냐?”고 물으면 “시장이 반찬이라지 않는가” 라고 대답하던 그들 노동당원도 본래는 역시 인간이었나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