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씨는 화창했고 풍광이 멋졌다. 예쁜 시화(詩畵)들을 보다가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나오는 작품을 만났다. 스마트 폰으로 간직했다. 최정순이란 여류 시인의 작품이었다.
나들이에 힘들었다는 <발님, 足>이 화를 내시는 사연이다.
전문(全文)이다.
― 분하고 억울하다/온종일 나는 너무 힘들었다.
집에 들어온 주인은/깨끗한 물에 비누로 몇 번을 닦아내더니
계란에 꿀에 인삼에 별의별 것을 다 넣어서/얼굴에 붙인다.
내가 1등 공신인데/아파서 기절할 지경인데
나는 고생했다고 더 많이 발라주겠지/기다렸는데
내게는 찬물만 끼얹어주고 누워버린다.
누구 덕에 지금까지/엉덩이 살랑살랑 흔들고 다녔는데
양심이란 개미 눈곱만큼도 없는/주인이 얄미워서 실컷 울었더니
퉁퉁 불어터져 신발이 작아/들어가지 않는다.
귀하신 나를 몰라보다니! ―
발님이 왜 화가 나셨는가? 쉽게 이해가 됐다. 그런데 바꿔 생각하니 세태를 반영하는 경구(警句)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가을 정취를 만끽한 보람에 모두에게 즐거운 나들이였던 것 같다.
발이 힘들긴 했지만 발도 나름 신명이 나서 동참했음에는 틀림이 없어 보인다. 그런데 논공행상에서 문제가 터진다.
발이 “귀하신 나를 몰라본다.” 고 심통을 내는 것이다.
나의 공(功)을 몰라준다는 말이다. 비교하는 데서 문제가 불거진다.
여기서 생각을 좀 해봐야 한다.
발뿐만 아니다. 눈이며 손이며 가슴이며 머리까지 하나하나가 내 중심으로 따져보고 짚어보면 누군들 불만이 없을 터인가?
마음먹기 따라서는 발이 시샘을 하는 얼굴이라고 불만이 없지는 않을 것이다. “내 얼굴이 얼마나 예쁜데 제가 주인이라고 멋대로 귀한 나한테 아무거나 붙여 대다니 관계기관의 검증을 받지도 않은 것들을 마구”라고 불평할 수도 있고 “무면허인 네가 멋대로 주무를 것이 아니라 마사지 전문가에게 부탁해야 할 일”이라고 억지 부릴 수도, 주장 할 수도 있을 터이다. 셀프 미용의 부작용 사례도 나타난다는 TV뉴스를 들먹일 수도 있을 터이다.
꼭 요즘 세태와 걸맞지 않는가? 내가 항상 옳고, 나만 잘났다는 사람들이 너무 많다. 길가에 세워 놓은 차를 발로 걷어차다가 발을 다치고는 차를 상해 치상 혐의로 고발하겠다고 으름장을 놓는 사람도 있는 형국이다. 내 욕심을 챙기려는 이기주의의 화신들이다.
그저께와 오늘 링컨의 연설과 케네디의 피살 이야기가 뉴스에 나왔다.
링컨은 150년 전인 1863년 11월 19일 게티즈버그 연설에서 “국민의, 국민에 의한, 국민을 위한 정부여야 한다”고 역설했다. 우리나라 정치는 내 계파와 정당의, 내 계파와 정당에 의한, 내 계파와 정당을 위한 정치라고 정의해야 맞을 것 같다.
나보다, 내 정당보다, 나라가 먼저 잘돼야 한다고 생각하는 지도자들이 있기는 한 것인가? 의아스러울 때가 많다.
1963년에 피살된 케네디 대통령은 1961년 대통령 취임사에서 “나라가 당신에게 무엇을 해줄 것인가를 묻기 전에 당신이 나라를 위해 무엇을 할 것인가를 먼저 생각해야 한다.”고 연설했다. 무슨 잠꼬대 같은 말이냐고 반박할 사람들이 쏟아질 것 같지 않은가?
민생을 먼저 다루는 정치인들을 칭찬하고 소개하는 기자들도 잘 보이지 않는다. 싸움을 잘하는 유단자들이 신문과 TV 뉴스를 독점하다 시피 한다. 나만 귀하다고 우쭐대며 나만 대접을 받아야 한다고 나서는 사람들이 많아 세상이 무섭다는 생각이 든다.
정치인들은 서로 나만 잘났다고 주먹을 쥐고 너는 못한다고 마냥 손가락질이다.
게다가 나라가 두 쪽으로 갈라져 있으니 더 큰 일이 아닐 수 없다. 이편이 맘에 안 들면 저편 줄에 서서 국회의원이든 뭐 그런 것 하겠다는 기회주의자들이 늘고 있는 것 같다.
줄만 잘 서면 되는 세태가 겁난다. 요즘 TV 좌담 프로그램이나 신문 칼럼에서 누가 매겼는지 모르는 무슨 평론가라고 하는 사람들이나 기자들의 말을 듣거나 글을 읽고 당황스러울 때가 많다.
억지를 부리는 정치인들의 행태에 대해 “정당의 목표는 권력유지와 집권이다. 그러니까 정권 유지나 권력을 잡기 위해서는 그럴 수도 있다”고 역성을 든다. 억지는 억지라고 지적해야 할 텐데 말이다.
국리민복은 우선순위에서 저만치 밀려있다. 화두(話頭)도 되지 못한다. 민생을 말하기는 하지만 마지못해 하는 말 같다.
한 때 민주주의란 피를 먹고 자란다고 했는데 요즘의 우리 민주주의는 사탕발림의 말을 먹고 당뇨병을 키우고 있는 것 같다.
유권자 듣기에 좋을 것 같다면 거짓말을 막 해대고 표가 될 것 같으면 턱없는 헛소리도 뱉어내는 정치인들이 참 많다. 그래서 참 밉다.
위에서 인용한 최정순 시인의 시(詩)를 멋대로 바꿔 써봤다.
―온종일 참 힘들었다/참 많은 일을 겪었다/그래도 기쁘고 기분 좋다
집에 들어온 주인은/깨끗한 물에 비누로 몇 번을 닦아내더니
계란에 꿀에 인삼에 별의별 것을 다 넣어서/얼굴에 붙인다.
주인도 힘들 텐데 아름다움을 가꾸려는 노력이 귀해 보인다.
내가 1등 공신이라 생각하니/ 더 아프다/ 기절할 지경이다.
나는 더 좋은 것/ 더 많이 발라주겠지/기다렸는데
내게는 찬물만 끼얹어주고 누워버린다/ 섭섭하다.
주인이 나보다 더 힘든가 보다고 애써 마음을 다스린다
그래도 내 덕에 지금까지/엉덩이 살랑살랑 흔들고 다닌 주인이 밉다
양심이란 개미 눈곱만큼도 없다는 생각도 들었고/주인이 얄미워서 실컷 울기도 했다./ 퉁퉁 불어터져 신발이 작아/들어가지도 않는다.
그래도 나를 돌아보니 대견하고 귀하다/화는 다스리기로 했다.
내 덕에/ 모두 귀한 하루 보냈으라고 생각한다
귀하신 나를 내일은 알아주겠지!―
고쳐 쓰고 보니 문학성은 증발됐고 잡문이 됐다. 최 시인(詩人)한테 죄송하다.
그러나 학교 도덕시간에 배움직한 글이라고 스스로 치켜세우고 싶다. 멋진 나들이를 하는 나라. 각자가 힘든 일을, 맡겨진 일을 하고 서로 격려하는 그런 나라가 그립다. 발의 분노는 어찌 보면 당연하다.
국민 모두 분노할 권리는 갖고 있다. 만인의 모든 분노를 누가 모두 다스리며, 백가쟁명(百家爭鳴)의 이기(利己)를 누가 모두 채울 수 있을 까? 참는 자에게 복이 있다고 했던가? 지금은 참아야하고 나눠야하고 봉사하고 배려해야 할 시기일 것이다.
뻔뻔하게 거짓말 하는 지도자는 악(惡)이다. 진실을 외면하는 정치는 국민의 회초리를 맞아야 한다.
그런 지도자들은 벌거벗김을 당해야 한다. 진리는 쉽고 간단하다고 한다. 어지럽고 요란한 교언영색(巧言令色)으로 국민의 마음을 훔치려는 정상배들은 뱀파이어들이다. 뱀파이어가 설쳐대면 나라는 지옥이 된다.
총에 맞아 죽으면서 “난 괜찮아”라고 했다는 지도자와 “날 몰라보다니” 하고 분기탱천(憤氣撐天)하는 지도자의 모습이 겹쳐 보인다.
이제 계절은 한 겨울이다. 밤 TV뉴스에서는 북한이 청와대를 불바다로 만들겠다고 협박했다는 뉴스를 전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