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5월 7일 토요일, 경향OB산악회는 오랜만에 원지산행, 문경의 명산 주흘산을 찾았다. 새벽잠을 설친 탓인지 몽롱해진 정신으로 지하철 신세를 지고 세종문화회관 뒤편에 대기 중인 버스에 오르니 약속된 출발시간(7시 30분) 5분전,. 서울을 출발 해 약 3시간 정도 달려 문경 제1관문 주차장에 도착했다. 시계는 오전 11시 10분 전을 가리키고 언젠가 와본 기억이 새로운 문경새재길 울긋불긋 배낭을 멘 등산객들이 붐빈다. 영남지방 선비들이 청운의 꿈을 안고 과거를 보기 위해 거쳐야만 했던 그 길. 몇날 며칠을 걸어서 한양에 당도했을 그 시절 선비들 청운의 꿈이 영상처럼 펼쳐진다. 백두대간 마루를 넘는 고개 문경새재는 조선시대 영남과 기호 지방을 잇는 영남대로 상의 중심으로 사회, 경제, 문화 등의 문물 교류지이자 국방상의 요충지였다. 태조왕건, 제국의 아침, 무인시대, 대조영 등의 드라마를 촬영한 곳이 바로 여기다.
제1관문을 통과하자 주흘산 주봉을 오르는 오솔길이 눈에 들어온다. 주흘산 주봉 1075m, 만만치 않은 산이다. 한국명산 100위 안에 드는 명산이라는 명성대로 주흘산을 오르는 재미는 시작부터 압권이다. 빼어난 계곡을 따라 물소리 벗 삼아 40분쯤 올랐을까 그 이름도 매력적인 여궁폭포가 소리치며 반긴다. 누가 여궁폭포라 명명했는가, 말 그대로 여궁형세가 야릇한 미소를 자아내게 한다. 줄기차게 내려 쏟는 폭포를 중심으로 양편 바위절벽이 정말 여궁의 깊은 곳을 보는 느낌이다. 저마다 발길을 멈추고 기념촬영하기 바쁘다.
한시간 쯤 올랐을까 혜국사가 저만치 손짓한다. 통일신라시대 문성왕 8년(서기 846년)에 보조국사가 설립한 천년고찰이다. 내려올 때 들르기로 하고 멀리 대웅전과 산신각에 망배만 한 뒤 오른쪽 비탈길로 치달으니 끝도 없이 눈앞에 등산로가 펼쳐진다. 오르고 또 오르고 언제 정상이 나타날까 인내심을 시험해 보려는지 가도 가도 끝이 없다. 쉽게 생각하고 올랐다가는 큰코다칠 정말 녹록지 않은 산. 누군가 주흘산이아니라 죽을산이라며 비지땀을 닦는다.
산 중턱 쯤으로 생각되는 곳엔 목마름을 알아 차렸는지 약수가 기다리고 있다. 이보다 더 꿀맛 같은 약수는 없을 것 같다. 그 옆 공터는 이름 하여 대궐 터, 고려 공민왕이 홍건적의 난을 피해 살았다는 궁궐터다. 엉금엉금 기다싶이 올라가다 머리를 드니 정상은 안보이고 능선만 선명하다. 누가 여기 까지 올라와 묘를 썼단 말인가. 이곳에 묻힌 고인은 꽤나 등산을 좋아 했던 산악인이 아니었을까 자손들 건강을 위해 이 처럼 높은 곳에 정좌했는지 좌청룡 우백호 천하명당이 따로 없다.
능선을 지나 가파른 나무 계단을 헐떡이며 오르니 드디어 해발 1075미터 주봉이 왜 이제 왔느냐는 듯 반색을 하며 악수를 청한다. 정상을 둘러보니 아직 피다 만 진달래 망우리가 복스럽기 그지없다. 주변엔 주흘 영봉(1106m)과 주흘관봉(1040m 일명 꼬깔봉)이 시야를 사로잡는다.
시계를 보니 오후 1시 50분. 옹기종기 모여 앉아 준비해간 점심을 들며 산하를 굽어보니 문자 그대로 천하운어장(天下運於掌)이라, 세상 모든 것이 다 내 손안에 있는 듯, 힘들게 정상에 오른 보람에다 밥맛 또한 꿀맛이다. 서둘러 기념촬영을 하고 쏜살 같이 내려 달리니 하산 길 역시 오를 때만큼이나 끝이 없다. 길 옆 곳곳엔 돌탑이 커다란 돌을 이고 헤어짐이 아쉬워 서인지 쉬어가라 손짓 한다. 계곡을 어찌 그냥 지나칠 손가. 차디찬 계곡에 발을 당구니 피로가 싹 가신 기분, 여궁폭포와는 얼싸 안고 춤이라도 추고 싶은 욕심이 절로 난다.
하산해보니 오후 4시 30분. 거의 다섯 시간 가까이 주흘산과 씨름하며 풍류를 즐긴 꼴이다. 단풍철 주흘산은 보나마나 천하 절경, 힘든 산행이었지만 가을에 다시 오고 싶어진다. 뒷 풀이 현장에서 맛본 시원한 오미자 막걸리와 약돌 돼지고기 정식, 생각할수록 입에 군침이 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