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 내내 사나운 비바람에 황사까지 겹쳐 지나가더니 요즘의 서귀포는 말그대로 계절의 여왕다운 5월의 절정을 구가하고 있다. 해뜰무렵 산책에 나서면 청자빛 바다로부터 떠밀려 오르는 미풍은 나뭇잎, 풀잎을 다독거리며 달려가고 초록빛으로 옷 갈아입기 바쁜 가로수가지마다 온갖 텃새들 또한 시끄럽도록 재잘거리며 푸드득푸드득 날아다니기 바쁘다.
내가 사는 신시가지에는 주로 담팔수와 후박나무 먼나무 벚나무 굴거리나무 그리고 워싱턴야자수를 비롯한 몇가지 야자나무들이 큰길가 가로수로 고루 퍼져있고 그밖에 조경수로는 한겨울에 꽃을 피우는 동백을 비롯 적갈색 잎으로 둥글게 다듬어서 키우는 홍가시와 먼데서보면 꼭 육지의 밤나무처럼 노오란꽃을 피우는 녹나무 매화 감나무 목련 등나무 삼나무 소나무 단풍나무 전나무 대나무 그리고 요즈음 한창 개화를 서두르는 철쭉에 장미등등 이루 다 헤아리기도 어렵다.
이상과 같은 가로수 조경수들은 내가 내려오던 11년전만 해도 대부분 4,5년생 정도로 그저 고만고만한 것들이었으나 지금은 몰라보게 웃자라서 시가지전체를 말 그대로 숲속의 마을로 변모시켜놓았다. 하기야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고는 하지만 내가 느끼는 서귀포전역의 녹화속도는 육지의 그 어느곳 보다도 빠르고 무성하다. 그것은 아마도 대부분의 나무들이 남방식물인데다 시당국의 관리 또한 철저하기 때문일 것이다. 이곳의 나무들은 벚나무 등을 제외하고 대부분 가을에 낙엽을 떨구지 않는다. 그래서 사람들은 서울처럼 가을이 깊어갈수록 낙엽청소에 바빠지는 풍경 같은 것은 거의 모른다. 그러니까 이 고장 나무에게는 가을이면 모든 잎을 훌훌 털어버리고 겨우내 푹쉬는 휴식기간이 없는 것이고 그만큼 성장을 계속하는 셈이 된다.
그 대표적인 것이 가로수의 대종을 이루는 담팔수와 후박나무 먼나무 굴거리나무등으로 지난 10여년사이 모두가 제법 큰 나무로 자랐다. 간간이 가지치기를 하고 있음에도 한두해만 지나면 하늘을 가릴 정도로 무성해지는데다 특히 뿌리부분이 상하수도 등 인프라시설들을 마구 들쑤시는가하면 마치 용틀임처럼 보도위로까지 뚫고올라와 적잖은 민원이 일기도 한다. 그러나 나는 이토록 무럭무럭 무섭게 자라는 나무들을 볼 때마다 한없이 대견하고 사랑스럽다. 그중에서도 집 앞을 지나는 기간대로를 따라 인도안쪽으로 높다랗게 웃자란 굴거리나무군락의 도열은 누구에게나 자랑하고 싶은 존재다. 상록 활엽 교목으로 평균10센티가 넘는 타원형의 잎은 흡사 거인의 두 손가락을 좍 펴서 겹쳐놓은 것 같은, 그런 모양새다. 예부터 가지와 잎은 만병초라해서 약용으로도 널리 쓰였다는데 맨밑에서 부터 넓직한 잎이 겹겹이 퍼져 오르기 때문에 그만큼 방풍, 방음의 효과도 크지 않을까 싶다. 이른 새벽 그 굴거리나무 군락안에 들어서보면 마치 밀림 속에라도 갇힌 것처럼 어둡고 서늘하다.
그러나 저러나 아무리 서귀포에 많은 나무가 자라고 있다고 해도 요즈음 한창 개화기에 접어든 귤나무를 당할 수는 없다. 귤은 이고장의 대표산업이고 서귀포전체농경지면적(26.65㎢)의 반이상을 점하고 있다. 5월부터 벚꽃보다 조금 작은 흰색의 5판화를 피우는데 그 향기가 꼭 그 옛날 서울근교에 흔하던 아카시아 꽃내음을 닮았다.
노지감귤의 경우 늦가을부터 황금빛열매들이 주렁주렁 땡볕아래 탐스럽게 익어가는 모습은 북쪽하늘위로 높게 솟아오른 한라산의 위용과 함께 이고장만의 아름다운 풍경이다. 그렇게 무르익은 서귀포 귤은 하우스생산량까지 모두 합쳐 한해평균 50여만톤이나 쏟아져 나온다.
서귀포감귤의 역사는 생각보다 꽤 오래다. 고려사중에는 1052년(문종6년)당시 탐라에서 공물로 올라온 감귤의 양을 1백포로 늘렸다는 기록도 있으나 20세기 들어서는 그 같은 재래종이 아닌 온주밀감이었다. 중국의 온주지방이 원산지인 온주밀감은 1911년께 서귀포에 있던 한 프랑스신부가 일본에 사는 친구에게 제주왕벚나무를 선물, 그 답례로 받은 14그루의 온주밀감을 키우면서 재배되기 시작 했는데 지금도 서귀포시 서흥동 성당앞뜰에는 그중 2그루가 남아있다. 하지만 오늘날 제주전역에 걸쳐 널리 재배되는 귤은 1953년 휴전직후부터 주로 일본에 사는 제주출신교포들이 보내온 개량종묘목들로 제주귤 산업은 그 무렵부터 비로소 본격화 되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 귤산업은 오늘날 웰빙 시대에 걸맞는 새로운 품종으로의 획기적인 또 하나의 도약을 서두르고 있다는 소식이다.
아무튼 입하, 소만을 지나 망종, 단옷날을 열흘 남짓 앞에둔 서귀포의 산과 들은 지금 한창 변신에 바쁘다. 그동안의 연초록으로부터 초록빛 또는 진초록으로. 어떤 것은 보다 짙은 암녹색으로 하루가 다르게 물감색을 바꾸면서 나날이 살쪄간다.
조석으로 산책길을 오르내리며 이렇듯 날로 무성해지고 풍요로워지는 서귀포의 자연속에 파묻혀 사는 나는 참으로 복받은 노인이라 확신하고 있다. 더구나 10여년전 전후2차례에 걸친 대수술로 거의 탈진상태의 몸으로 내려온 나를 오늘 이만큼 일으켜세워준 것이 바로 이곳의 물과 바람 그리고 푸근한 인심이었음은 두고두고 잊을 수 없다. 그런데 나의 처지나 환경이 이럴수록, 그리고 늙어갈수록 두고 온 내고향 북한땅의 헐벗은 산하가 눈에 밟혀 잠을 설칠 때가 한두번이 아니다. 1972년 첫번째적십자회담 때 평양을 다녀오면서 내 눈으로 직접 본 민둥산들, 그것과 요즈음 뉴스를 통해 접하는 북의 풍경은 어느새 40년이 지났음에도 조금도 달라진게 없다. 그래서 서귀포의 짙푸른 5월을 엄청 사랑해 마지않는 내마음의 한구석은 오늘도 조금은 무겁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