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두호 (본회 회원/스포츠서울연예부장,편집부국장 굿데이신문편집국장 전무이사 /제15대 한국영화평론가협회장/ 현재 인터뷰365 발행인)
‘하얀 손수건’ ‘사랑이야’ ‘고래사냥’ ‘그건 너’ ‘왜불러’......지금은 60, 70세대가 된 노령층이 40여년 전 젊은 날에 애창하던 노래들이다. 노래를 부른 가수들도 더불어 회갑을 넘어 섰다. 최근 제주 국제컨벤션센터에서 그 노래를 다시 부른 올드 싱어들의 공연에 객석을 채운 1,500여 관객들이 환호성으로 열광을 나타낸 반응이 화제에 올랐다. 지방 순회공연으로 이어진 그들의 분주한 활동은 이미 금년 하반기 미국지역 등 해외 공연 일정까지 짜두고 있다.
TV 예능 프로그램에서의 일시적 복고 현상 정도로 쉽게 식을 줄 알았던 이른바 ‘세시봉 친구들’에 대한 관심이 아직은 수그러들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불똥이 음반시장에서 악기시장까지 튀었다. 그들의 히트곡들을 담아 발표한 앨범은 아이돌 일색이었던 차트에서 상위권에 올랐고 악기점에서는 통기타까지 잘 팔린다. 대학에 통기타동아리가 생기고 포크나 올드 팝을 배우는 학원까지 등장했다. 참으로 놀라운 현상이며 변화무쌍하게 앞으로만 질주하던 대중문화가 갑자기 역류, 추억으로 회귀한 이례적인 사건이다.
1960년대 젊은 시절을 보낸 사람은 서울 무교동의 음악감상실로 당시 유행하던 팝송을 들려주고 간혹 라이브 공연을 하던 ‘세시봉(C’est si bon)’을 기억한다. ‘세시봉 친구들’인 조영남 윤형주 송창식 김세환 등은 그곳을 찾아 가수의 꿈을 나누고 키웠고 이어서 통기타 가수의 전성기를 이끌어 낸 주역들이다. 세시봉의 MC시절을 보낸 이상벽, ‘그건 너’의 가수 이장희도 빠질 수 없는 통기타 친구들이다.
정치적이든 사회적이든 무겁게 가라앉은 환경 속에서 젊음과 욕망이 분출할 곳을 찾지 못하고 방황하던 시절, 청바지에 통기타 하나 들고 감미로운 포크송을 들려주던 얼굴들이다.
그들에 대한 추억을 간직하고 있는 사람들이야 반가운 게 당연하지만 요즘 젊은 세대들까지 세시봉 붐에 동참하고 있다는 점은 놀랍다. 이유가 어디에 있을까?
세시봉 신드롬의 원인을 알려면 최근 화제가 되고 있는 ‘나는 가수다’(약칭 나가수)를 눈여겨 볼 필요가 있다. 수년 간 일요일 저녁 시청률 경쟁에서 뒷전으로 밀려있던 MBC 예능프로를 기적적으로 소생시킨 이 프로그램의 형식은 단순하다. 가창력 있는 가수들이 출연해 마음껏 노래 부르는 게 전부다. 가수들 간 경쟁 체제를 갖췄다 뿐이지, 이전에도 노래 잘 부르는 가수들이 출연하는 프로그램은 얼마든지 있었다. 박정현은 ‘유희열의 스케치북’에서도 열창했었고, 임재범은 ‘수요예술무대’에서도 이미 폭발력을 보여줬었다.
그럼에도 사람들이 ‘나가수’에 열광하는 건 경쟁을 내세운 게임의 흥미와 순위에 따라 희비가 엇갈리는 드라마적 오락성 이야기를 제공하기 때문이다. ‘나가수’는 무대 사이사이에 출연자들의 비화와 세세한 감정을 잡아내고 있다. 똑같은 무대라도 ‘나가수’를 볼 때만 눈시울이 붉어지는 이유다. 가수활동을 해온 프로들의 세계에 순위라는 것은 말도 되지 않는쇼이지만 매순간 감정을 움직이는 연출의 리얼리티가 시선을 끌어 잡게 한다.
‘세시봉 친구들’도 분명히 바람의 출발점이 된 창구는 방송이지만 ‘세시봉 친구들’이 신문과 인터넷을 뜨겁게 달구며 음반시장과 공연무대에서 전성기를 새롭게 맞이하게 한 힘은 나이와 세대를 가리지 않고 그들을 받아들이는 그들의 마니아들이 있기 때문이다.
우선 랩을 비롯한 새로운 음악 장르에 귀를 막고 살았던 장 노년층에게는 노래다운 노래를 다시 만난듯 반가움을 느끼게 했다면 젊은 층에서는 여유와 빈틈이 없이 기계적으로 조립된 느낌의 음악 속에 살다가 시원한 목청과 감미로운 노랫말로 통기타를 치며 불러주는 추억의 노래를 신선하게 받아들인 면이 있다. 포크송이나 올드 팝 중에는 젊은이들이 어릴 때부터 흥얼거리는 어른들의 노래 속에서 귀에 익은 노래가 많다.
‘세시봉 친구들’은 음악프로보다 예능이라는 이름으로 보여주는 오락프로의 출연을 통해 한층 높은 호응도를 불러 모았다. 조영남 이장희 등이 MBC TV의 대표적인 예능프로인 ‘황금어장 무릎팍도사’에 출연하면서 세시봉 스토리가 수시로 살아났다.
예능프로에서 자신들의 음악이 탄생하기까지의 사연을 먼저 들려주었기에, 최소한 방송을 봤던 시청자들을 스펀지처럼 흡수할 수 있었던 것이다.
또 세시봉의 부상은 서너 해 전부터 불기 시작한 대중문화계 복고열풍과도 무관치 않다. 대표적으로 KBS ‘불후의 명곡’이 있다. 혜은이, 윤수일, 이선희, 박남정 등 청소년들에게 생소한 가수들이 매 회 등장해 예능 프라임타임을 장식했었다. ‘옛날TV’라는 프로그램에서는 ‘여로’ ‘배반의 장미’ ‘서울의 달’과 같은 70,80년대 연속극들을 재조명해 히트했다. 오락프로에서는 차화연, 김진아, 김청, 금보라가 ‘전설의 여배우’로 초대됐다. 방송만이 아니었다. 포털 네이버는 옛날 신문을 ‘다시보기’ 서비스하면서 이슈가 생길 때마다 활발하게 활용 했다.
한 마디로 복고 콘텐츠가 상품성이 있다는 건데, 핵심은 세대 간 소통에 있다. 복고 아이템이 TV에 나오면 아빠와 딸이, 엄마와 아들이 이야기를 나눈다. 어릴 적 동화책을 읽어주던 게 고작인 단절된 가정에 이야깃거리가 생긴다. ‘엄마 아빠는 몰라’하던 아이가 진심으로 부모에게 조언을 구하는 것이다. 다채널 다매체 소재 고갈의 시대에 배경과 의도마저 건전한 복고 콘텐츠가 열풍을 일으킨 건 당연한 현상이다.
세시봉 부활에는 다시말해 현 대중문화를 이끌어 가는 일부 뮤지션에 대한 불신감과 거부심리도 어느 정도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가요무대에는 가창력보다는 춤과 몸매, 화려한 의상, 조명과 요란한 무대장치에 의존하고 연출 스태프에 의해 기계적으로 움직이는 패션형이나 로봇형 립싱크형 가수에 대한 부정적인 시각도 적지 않다. 공개적인 선발시스템의 검증과정이 없이 아이돌 스타의 반열에 오른 엔터테이너 중에는 가수와 탤런트, 오락프로의 게스트 중 어느 직업인인지 전문성을 인정받지 못한 경우도 있다. 예나 지금이나 물질만능의 시대적 환경은 촉망받던 가수와 예능인들이 부조리한 현실과 생활고를 비관하며 목숨을 버리는 사건도 수시로 발생하고 있다.
‘세시봉의 친구들’로 활동하는 소수의 가수들은 통기타시대를 이끈 인물들에 포함시킬 수 있지만 그들 외에도 많은 히트곡을 내면서 그 시대를 이끌었던 주역 뮤지션은 신중현, 김민기, 김창완, 양희은, 서유석 등 적지 않은 수에 이른다. 느닷없이 대중음악의 앞머리에 등장한 세시봉 음악인이 어떻게 생각하면 흘러간 물로도 물레방아를 돌릴 수 있다는 희망을 대중음악계와 올드 싱어들에게 안겨준 것처럼 소중하게 느껴진다.
그러면서 한편은 복고풍 바람의 진원지인 방송의 위력과 예능 프로그램 제작에 따른 방송의 책임감에 대한 두려운 시각을 버릴 수가 없다. 여전히 대중문화를 움직이는 막강한 파워를 보여주고 있는 방송이 예능프로만으로도 이처럼 사회와 시대를 변화시킬 수 있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특히 대중문화는 방송에서 한번 이슈가 되면 관련 분야에 크고 작은 사태가 발생한다. 가장 위험한 것은 시청률을 염두에 둔 선정적 상업적 이야기 구성과 사물이나 인물에 대한 침소봉대의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데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