없는것이 있다면 서러워할 우리나라에 아직 싹수를 보이지 않고 있는 것이 일본에서 노인과 부녀자들의 환영을 받으면서 번창하고 있는 정골원(整骨院 )이다. 정골원은 유도정복사(柔道整復師)가 수기(手技)요법인 유도정복술로 몸의 비틀림을 당기기 누르기 풀기 등으로 뼈 관절 근육을 본래의 형태로 되돌리는(整福) 고정술(固定術)을 기본으로 하고 있다.
알다시피 일본은 유도의 나라로 군경(軍警)이 되면 무엇보다도 유도를 잘해야 진급이 빨랐다. 유도정복술은 일본고래의 전통의료로 학문적으로 체계화된적도 있었으나 근래에 와서 세계보건기구(WHO)가 주도 세러피(Judo Therapy)로 인정한 후 부터 날개를 폈고, 1992년 부터는 일본정부가 정복사에게 국가자격증과 면허증을 내주면서 부터 정골원이 부쩍 늘어났다.
내가 정골원에 관심을 가지게된 것은 가정 게임기의 소프트를 만들어 재벌이된 고나미(KONAMI)가 사업이익의 사회환원으로 시작한 고나미스포츠클럽 오사카 쿄바시점(京橋店)에 회원가입 하면서부터였다. 한주일에 이틀은 짐(GYM)에서 근육트레이닝을 하고 나머지 날은 풀에 들어갔다. 레인이 여덟개 있는 풀장에는 개인으로 헤엄치는 자유수영레인과 시간을 정해 그룹이 헤엄치는 레슨반 레인으로 나누어져 있었다. 잘 살펴보니 비슷비슷한 사오십대의 남녀 스위머 10여명이 지도원의 지시아래 헤엄치고 있는 팀이 마음에 들었다. 이 그룹은 상 중 하의 하급반인데 나도 그속에 끼어들어 45분 동안에 1천미터 전후를 헤엄치는데 도전했다.
멤버들은 레슨에 들어가기전 10분간을 스팀 채난실(採暖室)에서 몸을 데운다. 뭉게뭉게 하얀 수증기에 둘러싸인 한창때인 여자스위머들이 실한 몸매의 흩어지지 않은 라인을 증기의 흐름에 맡기면서 서서히 체온을 올린다. 그녀들은 날마다 쑥덕공론을 즐겼는데 화제는 수영후에 들리는 정골원 얘기가 태반이다.
“30분 가량 몸을 풀고나면 그만 노근노근해지는게 극락이 따로 없어, 정골원이 극락이야” “보험이 들으니 참 많이 도움을 받고 있는거야…” 흘려버릴수 없는 이야기들이다. 정골원엔 한번쯤 들러볼 값어치가 있는 곳이란 말은 자주 들었으나, 9․28 서울수복 후 서울거리에 범람했던 접골원(接骨院)의 살벌한 쇼윈도 광경이 미리 떠올라 주춤하곤 했었다. 이제 그 이미지는 스팀 채난실에서 부지불식간에 들은 달콤한 소리에 밀려 멀리 사라져 갔다.
당시 살던 동네에서 제일 큰 정골원이 M정골원 이었다. 베드수가 10여개되고, 내부구조는 우리나라 경락마사지센터와 비슷한데 적외선 조사기 등이 설치되어 있었다. 먼저 문진표(問診表)에 ‘50견(肩) 및 척추관(脊椎管) 협착증’이라 적고 빈 베드에 가 누었다. 잠시후 “잘 부탁합니다. 나카지마(中도)라고 합니다” 라면서 다가온 젊은이는 20대 중반의 중키에 다부진 몸가짐으로 시코쿠(四國)의 도쿠시마(德島)현 출신이라고 했다. 그는 고향에서 고교를 졸업하고 오사카(大阪)로 나와 유도정골사 전문학교를 3년간 다닌후 국가시험에 합격, 이길에 들어와 3년째라고 했다.
그의 설명에 따르면, 관절의 삠 타박 골절등의 치료는 보험으로 그 이외는 실비치료 라는 것이다. 내 문진표를 본 그는 우선 전신의 근육과 관절을 당기고 누르고 풀면서 아프거나 기분좋게 느끼는 부분, 스트레스가 걸리는 정도 등 상태를 그림으로 해설한 인체해부도를 만들었다. 한시간 가까이 걸려서 만든 해부도로 다음날 부터는 약 30분이면 시술이 끝난다고 했다. 치료비를 치르고 나오니 날아갈듯 몸이 가벼웠고, 기혈(氣血)의 흐름도 순조로웠다.
다음날도 풀장에서의 귀로에 M정골원에 들러 나카지마군의 시술을 받았다. 도중, 우리나라에서 시각장애인과 비시각장애인 사이에 벌어졌던 안마사 자격문제 시비가 머리에 떠올라 일본에서는 어떤 상태인지 넌지시 물어봤다. 안마사와 정복사의 일은 비슷비슷하지만, 경락(經絡) 원리와 정복(整復)이론은 다르다는 것. “우리는 안마사의 영역을 침범하지 않으며, 폐도 끼치지 않는다. 그들도 마찬가지이다”라는 대답이었다.
‘그러니 무슨 싸움이 일겠느냐’는 묵시였다. 분명하게 말꼬투리를 안남긴 그의 언행이 어쩐지 의연스럽게 보였다. 그리고 그의 시술은 더욱 신비스럽게 느껴지는 듯 했다.
지금 우리사회에서는 나눔의 문화의 보편화에 애를 쓰고 있다. 그 한편에서는 대기업이 중소기업의 영역을 침범, 생존권을 위협하고 있는 문제로 소란스럽다. 남에게 폐를 끼치지 않고, 걱정을 서로 나누면서 살아가는 사회는 언제 올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