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당을 헐어 모스크를 짓고, 모스크를 성당으로 개조하고, 그 옆에 또 모스크를 증축하고를 되풀이 하다 보니 지치고 어이없어 결국은 함께 살기로 했구먼....’
스페인 고르도바에 있는 이슬람교의 모스크, 메스키타 안에 남아있는 기독교 교회의 유적 앞에 생각에 잠긴채 서 있다 “그 옛날 이곳엔 가톨릭교회 성(聖) 비센테교회가 있었다. 어느날 이슬람 세력이 북 아프리카에서 이베리아 반도로 침입, 이 교회를 빼앗아 모스크로 사용했다. 8세기가 되자 교회를 매입, 본격적인 모스크 건설을 시작해 10세기 말에는 2만 5천명까지 수용할수 있는 규모로 증축했다. 13세기에는 기독교 세력이 이곳을 재정복, 거대한 모스크는 성당으로 개조 되었고, 최종적으로 16세기에 스페인 왕 카를로스1세가 모스크 한복판에 고딕양식과 르네상스양식을 절충한 성(聖)마리아대성당을 지었다.”
수행 안내원의 숨 가쁜 설명이 계속 되었다.
모스크의 눈부신 광택을 시기한 대성당, 교회의 향기에 취한 웅장한 모스크 세상에 둘도 없는 불가사의한 건물군이 위용을 겨르며 이곳에 할거하게 된 것이다.
1998년 9월, 니혼료코(日本旅行)가 기획한 ‘정열의 스페인-안다르시아 여행 8일간’에 참가, 5일째의 일정을 소화하고 있었다.
이슬람이 역사상 처음으로 유럽 땅인 이곳 이베리아 반도에 왕국을 세웠으나 힘을 키운 기독교 국가의 침범으로 망하고, 다시 일어나고, 8세기부터 거의 8백년간을 두 세력이 죽거니 살거니를 거듭했다. 그것은 모스크를 짓고 증축하고, 빼앗겨 성당으로 변하고 또 되찾고 한 두 종교의 성지 쟁탈의 역사이기도 하다. 지리적으로나 문화적으로 적대관계인 이슬람교와 기독교가 뒤섞인 세상이 이곳에 생겨난 것은 역사의 아이러니라 할 수 있다.
코란과 성서가 어지럽게 혼합된 성지를 다녀온지 3년째 되는 2001년 9월 11일밤, 열시가 넘었는데 미국 워싱턴에 살고 있는 딸 아이 한테서 전화가 걸려왔다. 뉴욕의 쌍둥이 건물인 세계 무역센터에 여객기가 충돌 했다는 것이다. 9․11테러의 제1보는 그런 항공기사고와 같은 내용으로 알려졌었다.
TV와 인터넷을 총 동원하여 사건의 진상을 추적했다. 왠지 자꾸만, 3년 전 스페인 고르도바에 새겨 놓았던 이슬람교와 기독교의 긴 세월에 걸친 알력의 토막토막이 눈앞에 어른거렸다. 무슬림과 기독교의 다툼소리와 절규가 환각으로 떠오르고, 가슴에 십자가를 긋는 신부의 귓전을 스쳐가는 이슬람교 예배를 알리는 아잔(adhan)의 잠긴 목소리 등... 불길한 예감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아물 거렸다.
그 때 일본은 태풍 15호가 관동지방을, 16호가 오키나와를 강타, 모든 매스컴이 태풍에 휘말려 기진맥진해 있었으나 테러발생이란 비상사태로 그들의 신경은 뉴욕 쌍둥이 건물의 붕괴 현장으로 모였다. 두 건물에 돌입하는 피랍 여객기, 불타면서 내려앉는 쌍둥이 건물.. 말이 안되는 처참한 수라장이 선명하게 되풀이 방영되고 있었다.
이윽고 부시 미국대통령의 ‘명백한 테러’라는 발언, 펜타곤(美國防省)건물에 제3기(機)격돌, 처참한 테러는 단시간에 연속적으로 발생했다. ‘미국이 공격 받은 것은 진주만(眞珠灣) 공격 이래 두번째’로 역사에 남게 되었다.
이슬람 원리(原理)주의 세력에 의한 미국 테러공격의 가능성은 훨씬 전부터 심심찮게 거론 되어 왔었다. 그 이유로 미국의 대(對)아랍정책과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 점령 등을 들고 있었다. 그런데 설마했던 일이 미국 심장부에서 일어난 것이다. UN은 ‘국제사회는 결속하여 테러와 싸워야 한다’는 공동 성명을 냈다. 그러나 그 테러가 아비규환의 지옥으로 이어지고 있다.
지하드(jihad)라고도 하는 자폭테러가 꼬리를 물고 있는 것이다. 이슬람교의 코란에는 내외(內外) 두 개의 지하드가 있다고 한다. 안(內)으로의 지하드는 ‘신(神)의 가르침을 실현하기 위해 스스로 마음속의 악(惡)과 싸우는 것’이고, 밖으로의 지하드는 ‘이슬람세계를 확대 또는 방위 하기 위한 행위와의 싸움’이라고 교시 되어 있다는 것이다.
우리가 무엇을 할때는 전후(前後)라든가 내외(內外․안팎)라는 순서와 절차에 따라 하게 된다. 무슬림이 지하드를 수행할때에도 내외의 순서에 따라 먼저 안으로의 지하드인 ‘신을 위해 괴로워 하고 자기 의욕을 끊는 노력에 전념 한다’를 충실히 한다면 다음에 할 밖(外)으로의 지하드인 이교도(異敎徒)와의 대결 의지는 한층 움츠러 들지 않을까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