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고향은 강원도 양구(楊口). 중동부 전선의 휴전선을 접하고 전국에서 울릉군 다음으로 적은 군(郡)이다. 양구에서 출생 초등학교 시절을 보냈기에 양구 고향에 대한 애정은 남다르다. 1972년 부산일보 정치부 기자 시절 우연한 기회에 고미술에 조예가 깊은 강원일보 한영달(韓英達) 기자로 부터 양구 방산자기(백자)는 꾸미거나 치장한 것이 없고 소박한 정서가 그대로 녹아 있다는 설명을 듣고 방산자기에 대한 관심을 갖게 됐다. 그로부터 고향을 사랑하는 마음과 함께 방산자기(方山瓷器)수집에 나섰다. 우선 전문적인 식견이 없어 기초적인 지식을 습득하며 수집에 나섰지만 경제적인 부담과 골동품점이라 해서 다량으로 있는 것도 아니어서 수집이 쉽지 않았다. 지방출장 및 해외(중국, 대만) 출장 가는 기회에 골동품점을 돌며 한점 한점 모았다. 문경(聞慶)의 국회의원 선거유세 출장시 시내식당에 식사하러 들렀을 때 식당 부엌 뒤편에 높이 11.8cm 구경 8.6cm 저경 7cm되는 백자 청화화문호(白資靑畵紋壺)항아리를 소변통으로 쓰고 있는 것을 발견, 다른 항아리로 바꿔주고 수집했고 중국(中國) 연변출장시 고물상에 들러 소형청화백자호(小形靑畵白磁壺)를 3만원에 구입하기도 했다.
수집한 양구방산자기는 백자 청화 양구방 명호 백자청화목단문호 백자청화 초화문호 소형 청화 백자호 백자병등 57점이었다. 방산자기를 수집하면서 “흙은 만물의 기원이자 탄생의 시원(始原)이다. 인류의 위대한 발견인 도자기는 그러한 흙을 바탕으로 만들어졌기에 더욱 위대하다”는 생각과 함께 “우리민족에게 있어서 자기는 서민부터 귀족에 이르기까지 가장 폭넓게 사랑받는 공예품”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 방산자기의 순수한 색조 하나만으로도 조상들의 따뜻했던 마음을 새삼 더듬어 보는것 같았다. 한마디로 양구 방산자기는 담백한 아름다움을 느끼게 한다. 2003년 4월 양구군청 임경순(任璟淳)군수를 방문한 자리에서 임군수가 양구에 방산자기박물관을 세워야 하는데 예산을 신청할 근거가 없어 고민이라는 이야기를 듣고 소장한 방산자기를 기증하겠다고 제의, 소장품 57점을 모두 군(郡)에 기증했다. 양구군은 기증한 57점의 방산자기를 양구방산자기박물관 건립의 초석으로 삼았다.
양구방산자기박물관은 2006년 6월 27일 사업비 41억원을 들여 총부지 8,160㎡에 체험관 230.40㎡을 건립하여 개관 했다.
현재 400점에 이르는 자기를 전시하고 있다. 매해 1,2회 정도의 기획전을 개최하고 있으며 관람객과 체험객이 해마다 증가하고 있다.
또한 옛 가마터를 발굴 보존하고 이를 바탕으로 전통가마도 제작했다. 기존의 제토(制土)시설을 이용, 백토를 가공 정제하여 문화상품도 만들어 전통가마에서 구워내고 있다.
양구지역 특히 방산면(方山面)은 예로부터 백자와 백토가 유명하다. 우리에게 익숙하게 알려진 방산자기는 양구방산지역에서 나오는 백토로 만들어진 백자를 말한다. 백자에 대한 기록은 ‘조선왕조실록’과 ‘신증 동국여지승람’ 등의 기록에서 확인할 수 있다. 또한 백토에 관한 기록도 여러곳의 문헌에서 확인이 된다. 양구에서 처음백자가 제작되었던 시기는 ‘이성계 불사리장엄구일괄품’과 여러 관사명이 새겨진 백자의 발견 등을 통해 고려 말부터 일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양구에서 고려 말부터 백자가 제작될 수 있었던 가장 큰 요인은 이 지역에 매장되어 있는 풍부한 백토라고 할 수 있다.
더불어 자기를 제작하기 위해 필요한 용수와 땔감도 자기제작에 좋은 환경이 될 수 있었다.
방산면 일대에 매장되어 있는 백토는 철분함유량이 0.1~0.6%로 아주 적어 백색도 높은 자기를 제작할 수 있다.
이렇게 우수한 원료가 양구지역에 존재했기 때문에 1350년경부터 내륙으로 확산되었던 강진일대의 사기장들을 비롯한 여러 사기장들이 양구지역에 쉽게 정착할 수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청자나 분청사기의 제작보다는 백자의 제작지가 될 수 있었던 것이다. 1467년 경기도 광주에 왕실자기를 제작하던 분원이 설치된 이후에 양구지역의 자기소는 공납자기를 제작하던 곳에서 지역민이 사용하는 자기를 만드는 곳으로 성격이 바뀌게 됐다. 광주의 자기소들은 질 좋은 백자를 제작하기위해 전국에서 양질의 원료를 공급받아왔는데 주요 공급지가 양구지역인 것은 물론이다. 양구지역의 백자 제작은 분원으로 백토를 공급하면서도 계속되었고 분원이 번성한 이후에는 분원 자기 제작사기장의 일부가 양구지역으로 유입되어 분원의 기술력이 이전되기도 했다. 이후 일제 강점기에도 백자의 원료매장지로 주목받았었으며 1933년에는 도자기 공동작업장 등과 함께 상당히 많은 자기소가 양구지역에서 운영되었고 해방 이후에도 요업이 지속되었다. 뿐만 아니라 6․25한국전 이후에는 2개소의 가마가 현대적 시설로 명맥을 유지해오다 1993년 강원대와 이대박물관에 의한 지표 조사결과 양구지역의 가마터를 확인하게 된 것이 박물관 건립의 계기가 됐다.
양구 방산자기박물관은 우리 도자 문화의 역사에서 가장 서민적 대중적이며 한국적인 정서를 지니고 있다. 또한 조선백자의 시대적 색깔을 현대적 관점에서 계승하고 가장 한국적이고 가장 강원도적인 양구의 색깔을 지켜내며 대대로 내려온 값진 문화의 맥을 잇고 발전시키는데 무한한 노력을 기울이겠다고 다짐하고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