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말에 새해 다이어리 두 개를 샀다.“기껏 해야 1년에 한 살 밖에 먹지 못하면서 무슨 다이어리를 두 개씩이나 산담” 늘 핀잔받아온 바 이지만,긴 세월 길들여온 버릇이라 가벼이 버릴수가 없었다.
나는 같은 해의 다이어리 두 개를 한 세트로 쓰고 있다. 우리 가정에서 유선전화와 무선전화를 세트로 쓰는 유무선(有無線)전화처럼, 다이어리도 두 개가 상부상조 하도록 꾸며서 쓰면 편리 하기 때문이다.
줄에 묶인 유선전화는 책상 위에 고정하고 무선전화는 들고 다니면서 이동통신 하듯이,무거운 책 다이어리는 책상위에 놓아두고,매일 한 장씩 넘기는 탁상일기는 당일 것 한장 만을 떼어 호주머니나 지갑속에 넣고 다니면서 언제 어디서나 그날의 스케줄과 할 일을 확인하는 버릇이 붙은 것이다.휴대용‘모바일 다이어리’라는 이름을 붙여 특허를 내볼까 하는 생각도 했었다.
일본에서 지내는동안 제일 골치 아팠던 일은 그쪽 사람들이 ‘애매한 미소’를 지어가면서 쓰는‘혼네(本音․진짜 의견)와 다데마에(建前,立前․형식적 의견)’를 교묘하게 섞아 가면서 쓰는 혼란스런 화술(話術)이었다.자기 소원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원치않는 사실도 긍정하면서 일부러 인정하는 술법...
“본심에서 나온 말을 하는것이 틀린 것은 아니지요”
“형식적인 의견이라면 그런 거 아니겠습니까”
“진짜 의견을 말씀드린다면 이런 거 겠지요”... 라는 식으로 서로 얽히는 말수를 미묘하게 돌려가면서 쉽사리 속내를 보여주지 않는 것이다. 어디에서 어디까지가 진짜이고, 어느부분이 거품인지 도저히 헤아릴수가 없었다.
우리는 자신의 요구를 직선적으로 내 밀거나 또는 최대한의 요구를 먼저 제시한후 서로의 요구 안에서 중요성이 낮은 부분을 깎으면서 타협점을 찾지만,그들은 먼저 표면적이고 형식적인 면으로 들어가 교섭의 여지를 남기면서 서로의 타협점을 메워 나가는 것이다.
일본인 고유의 가치관인 ‘Honne and tatemae’에 대항할 전략 전술을 지니지 않고서는 그곳에서 취재활동하기가 힘들었다.그래서 전략의 하나로 매일 홍수 같이 쏟아지는 각종 정보를 그 가치와 내용에 따라 대 중 소로 나누고, 행사는 시간대별로 1 2 3으로 순번을 정한 자료로 짠 일정표를 책 다이어리에 기입하고 휴대용 다이어리에는 그 요약을 옮겼다. 그것을 호주머니에 넣고다니면서 임기응변으로 꺼내 보기로 한 것이 세트 다이어리를 쓰게된 동기였다. 대인관계에 필요한 정보와 자료는 항상 호주머니 속에 대령하고 있었다.
“오늘이 아마 일본의‘문화의 날’이지,메이지(明治)천황 생일이라 옛날에는 메이지세츠(明治節)라 했었지,그 전에는 덴초세츠(天長節)라 했고..” 자료에서 얻는 기지로 대화를 시작하면 대개의 젊은 층은 “(일본사람도 아닌)당신이 어떻게 그런 것 까지..” 라면서 약간 주눅들기 시작한다. “나에게는 너희들 수법이 안 통 할걸, 일본통이란걸 몰라 임마…” 입 밖에는 안 내지만 넌지시 상대를 붙좇게 한후,본 용건으로 들어가면 어느정도 효과를 보곤 했었다.
두 개의 다이어리는 서로가 맞 물리면서 연대를 이루고 보조도 잘 맞았다. 그 연대감을 높이는 것이 나의 능률을 높이는데 직결되곤 했다.매일 자기전, 두 다이어리 사이를 지우개가 달린 연필이 바삐 왕래하면서 첨삭(添削)의 얼룩을 만들기도 했다. 그렇게 남은 얼룩점은 사회의 주름으로 그리고 우리 삶의 녹으로 기록되고 있다.
고락을 같이해온 세트 다이어리가 늘 나에게 슬기를 제공해 준 것은 아니다.관리소홀로 큰 봉변을 당한 일도 많았다.몹시 가슴 아팠던 것은 러시아 여행중 기록한 메모내용을 귀국 즉시 정리하지 않고 차일 피일 하다가 분실해 버린 것 이다. 그 당시의 다이어리를 뒤져보면 여행기간중의 날짜란에는‘여행중’이란 석자가 나란히 남아 있을뿐,여행기간중 삶의 흔적은 하얀 공백이 교만하게 대변하고 있다.
‘늙은이 아이 된다’고, 중학교때 배운 교훈 ‘오늘 할 수 있는 일은 내일로 미루지 말라’를 새해에는 꼭 지키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