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탈린의 유해는 당초 연구보존 한다고 미라로 만들어 모스크바의 레닌묘(廟)안에 안치했었다. 그후 소련 공산당 제1서기 흐루시초프의 두 번에 걸친 ‘스탈린 비판’으로 8년만에 신격(神格)에서 격하(格下), 화장되어 크렘린 벽가의 유공자묘지에 매장되었다.
‘신(神)은 없다’며 종교를 탄압해온 사회주의국가에서 과거의 지도자를 신격화할 목적으로 그 유해를 미라로 만들어 묘(廟)에 안치 공개하고 있다. 레닌묘, 스탈린묘(철거됨), 모택동묘(毛澤東記念堂), 김일성묘(錦繡山記念宮殿), 호치민묘 등인데, 얼마전 사망한 북한의 김정일도 신격화 한다고 미라가 되어 아버지묘 옆에 안치 되었다. 사회주의를 통달한 염라대왕이 알면 대노할 일이다.
중학교 이과(理科)시간에서 배운 미라는 ‘자연조건에 의해 건조되어 장기간 원형을 유지하는 시체’라 했다. 그것은 미처 흙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떠나가는 영혼을 부여잡고 성불(成佛)하기를 애원하는 모습으로 보여 연민을 느끼곤 했었다.
이 자연산 미라와는 달리 묘에 안치되는 미라는 인공적으로 유해를 절개하고 세정(洗淨)한후 엠버밍(embalming)이라는 시체방부(防腐)처리, 위생보전처리 등 화학적 및 외과학적 과정을 거친후 조신(調身)과 화장까지 하고 유리관에 입관된다. 싫어도 속세에 오래 머물도록 족쇄를 채우는 것이다.
스탈린이 죽고 소련이 멸망, 러시아가 탄생한지 10년째되는 2002년 5월 그곳을 다녀왔다.제정(帝政)러시아의 전제(專制)와 공산당 소련의 독재, 그리고 신생 러시아의 혼란 등 세가지가 공존하는 세상은 몹시 혼란스러웠다. 그러한 가운데 우리 민족의 동족상잔 6․25 전쟁을 뒤에서 조종하고, 소련거주 한(韓)민족을 강제로 집단이주 시키면서 많은 목숨을 앗은 세기의 흉물 스탈린이 미라가 되어 허풍을 떨다가 화장터로 끌려간, 두 번 죽은 경로를 현지에서 더듬어 보았다.
붉은군대의 퍼레이드로 낯익은 모스크바의 붉은광장의 크렘린벽쪽 일대에는 묘가 많았다. 1917년 러시아의 10월혁명 부터 1984년까지 사회주의와 공산당정권을 위해 목숨을 바친 유공자들이 이른바 ‘크렘린의 벽’에 잠들고 있는 것이다.
광장 한복판 벽 가까이에 붉은 화강암의 계단식 피라밋으로 지은 레닌묘가 자리하고, 그 오른쪽 뒤에 스탈린을 포함한 12주의 유공자 흉상(胸像)기둥이 횡렬로 서 있다. 다음 서열로 크렘린벽 속에 1백15구의 유골이 납골되고 그들의 플레이트에는 이름과 생몰(生沒)연월일이 새겨져 있다. 그리고 벽가를 따라 기다란 터가 ‘영웅묘지’인데 여기에는 여러개의 플레이트에 그룹별로 이름이 새겨져 있었다.
스탈린은 이 묘역에서 2차에 걸친 ‘스탈린 비판’과 공산당대회의 유체철거결의에 멍들면서 생전의 독재 숙청 개인숭배 등 믿기 어려운 죄악상 전모가 온 세상에 폭로 된 것이다.
소련 최후의 대통령 고르바초프는 “스탈린주의의 원흉은 레닌”이라고 둘을 싸잡아 비난하여 레닌묘 철거문제가 불거졌었다. 다른 한편에서는 스탈린에 대한 재평가 문제가 머리를 들기 시작하는 등, 붉은광장 일대는 또 한차례 거센 회오리바람이 불게 될 것 같다.
사회주의의 옷을 벗은 신생 러시아에서 정의의 힘과 그 행방이 어떠한 것인지 아직은 헤아릴수 없으나 과거의 어두운 ‘부(負)의 유산’에 대한 증오심은 그리 쉽게 변질하지 않을 것이다. 환상의 사회주의국가를 건설한다고 1천2백60만명의 목숨을 앗은 ‘20세기 최대의 학살자’스탈린이 유공자묘지에 버젓이 누워 있는 것은 역사의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인류는 많은 문화유산과 자연유산을 남겼다. 그 속에는 인류가 범한 죄를 증명할 ‘부(負)의 유산’이 많이 끼어 있다. 나치 독일이 유태인을 학살한 폴란드의 아우슈비츠, 노예무역의 거점인 세네갈의 고레섬(島), 핵무기의 참상인 일본 히로시마(廣島)의 원폭 돔, 탈레반이 바미안의 석불 등을 파괴한 아프가니스탄의 고대유적 등...
‘부의 유산’을 남기는 전쟁과 파괴 학살 핵무기 등을 극구 피해야 한다. 그것들은 무슨 줄을 타고 접근해 오는 것일까. 이념 빈곤 인종차별 소득과분배 등일까?. 그렇다. 무엇보다도 독재자의 횡포를 먼저 막아야 후환이 없다.
어느 역사학자의 회고록 한 구절이 떠오른다. “독재자 묘의 처리에는 언제나 많은 시비와 문제가 뒤따른다. 나치 독일 히틀러의 묘가 아직까지 없는 것도 그렇고, 또 그런 것들은 영원히 존재해서는 안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