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부러진 화살’이 국민 77%의 불신을 받고 있는 사법부의 과녁을 향해 시위를 당겼다. 정지영이 제작 감독 시나리오까지 쓴 이 영화는 2007년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던 전 성균관대학교 수학과 김명호 교수의 판사에 대한 ‘석궁테러 사건’을 모티브로 한 영화다. 실화를 바탕으로 한 법정 드라마다. ‘부러진 화살’은 분명 창작물인 영화이지만 사실과 허구의 경계를 교묘하게 줄타기 하면서 피의자의 권리는 철저하게 무시하고 일축하면서 판사 멋대로 끌고 가는 권위주의적인 사법부를 직설적으로 비판하고 있다.
영화는 대학입시에 출제된 수학문제 오류를 지적한 뒤 학교 명예를 실추시켰다고 부당하게 해고된 후 미국에 가서 살던 김경호(영화 이름) 교수 가족이 복직에 희망을 걸고 귀국을 서두른 데서부터 시작된다. 해직당한 서울대 교수가 복직한 뉴스를 듣고 김 교수는 복직의 희망을 품고 귀국한다. 그러나 김 교수는 복직소송 1심에서 패소하고 항소심마저 정당한 이유 없이 기각되자 담당판사가 사는 아파트를 찾아가 공정한 재판을 요구하며 석궁으로 위협하기에 이른다. 엘리베이터 앞에서 격렬한 몸싸움이 벌어지고 판사는 쓰러진다. 그리고 재판에서 담당판사의 피 묻은 셔츠, 복부 2센티미터의 자상, 부러진 화살을 수거했다는 수위의 증언이 이어진다.
사법부는 김 교수의 행위를 석궁테러로 규정, 법치주의에 대한 도전으로 간주, 엄중 처벌하겠다는 입장을 발표하고 피의자 김 교수는 실제로 화살을 쏜 일이 없다고 결백을 주장하면서 법정은 권위적인 판사의 태도와 사사건건 물고 늘어지는 김 교수의 고집불통으로 난항을 거듭한다.
법정의 논쟁은 ‘김 교수가 실제로 화살을 쏘았느냐? 오발이냐?’와 ‘담당판사의 혈흔이 당사자의 피인가?’이다. 변호인은 담당판사의 속셔츠에는 혈흔이 묻었지만 외이셔츠에는 혈흔이 없고, 조끼엔 혈흔이 있는 점을 들어 항소심에서 담당판사의 혈액감정을 요청했지만 재판부는 1심의 검사결과를 그대로 채택한다면서 기각한다. 변호인은 석궁발사도 격렬한 몸싸움 과정에서 빚어진 오발이라고 주장한다.
교도소에서 독학으로 법률공부를 한 김 교수는 재판과정에서 형사소송법 제 몇 조를 들어가면서 한 치의 양보도 없이 비타협 원칙을 고수하면서 판사와 법률공방을 벌이며 외로운 투쟁을 전개한다. 김 교수의 고집불통에 변호사도 하나 둘 씩 변론을 포기하지만 지방 노동변호사인 자칭 ‘양아치 변호사’가 마지막 변호사로 선임되면서 재판은 활기를 띤다.
그러나 재판은 권위적인 판사의 “재판과정은 공개되지 않고, 판결도 알아서 할 테니 판결문은 나중에 보라”는 말과 함께 김 교수에게 실형이 선고되고, “재판은 이렇게 끝났지만 그 부끄러움은 계속될 것입니다”라는 변호사의 말로 영화는 끝난다.
이 영화가 상영되면서 영화 밖에서 활발하게 전개된 김 교수의 석궁테러를 둘러싼 진실공방은 별의미가 없다고 본다. 영화 내용이 사실이다, 진실이 왜곡됐다는 논쟁과 공방은 감독이 설정한 ‘주관적 진실’ 앞에서 맥없이 무너지기 때문이다. 이 영화를 보면 불신 받는 사법부를 정공법으로 비판하기 위한 감독의 ‘주관적 진실’ 전개는 한 치의 빈틈도 없어 보인다. 그리고 이 영화는 다큐멘터리가 아니라 극영화다. 실제사건을 소재로 했어도 허구의 세계를 그린 영화다. 사실과 사실왜곡의 진실게임은 영화 밖의 일이다. 사실이든 사실왜곡이든 그것은 감독이 지향하는 메시지에 태클을 걸어도 효과는 미미할 것이다. 왜냐면 영화이니까.
계속해서 이 영화의 내용을 화제에 올려놓고 “사실이다, 왜곡이다” 논쟁을 펼치는 것은 감독의 의도에 말려든다고 본다. 흥행의 불길에 기름을 더 붓는 격이다. 영화내용이 설령 사실을 왜곡했다 하더라도 영화 그 자체로 보면 되는 것이다. 그리고 사법부를 불신하는 국민감정을 강렬하게 전한 한 편의 영화라고 생각하면 마음이 편할 것이다. 나아가서 이 영화의 파장으로 불신 받는 사법부가 자성의 계기로 삼았다면 이 영화는 사회적 메시지 전달을 훌륭하게 수행한 것이다. 다시 말하지만 객관적 판단은 별개의 문제라고 본다.
영화 ‘부러진 화살’이 사법부 불신의 바람을 타고 관객몰이에 성공하고, 영화를 보면서 왜 사법부가 국민의 불신을 받는지 확인한 계기가 되고, 영화를 보는 동안 스크린에 몰입하면서도 극장 문을 나선 후 기분이 개운치 않은 것은 대사에서 단편적으로 드러나는 감독의 특정이념 노출 때문일 거라는 생각이 든다.
“국가보안법은 아름다운가?”, “법은 다 쓰레기”, “재판인가? 개판이지”라는 대사뿐만 아니라 감독은 영화에서 석궁 맞은 판사는 거짓말 하고, 담당검사는 증거를 인멸하고, 증인은 위증한다고 일관되게 밀고나간다. 영화를 통해서 보여준 감독의 주관적 진실은 실오라기만큼의 흐트러짐도 없이 견고하다. 감독의 편향성이 느껴지면서도 관객들이 쉽게 영화에 동화되는 것은 사법부의 불신이 너무 두껍기 때문인지 모른다.
‘남부군’ ‘하얀 전쟁’을 연출한 능력 있는 정지영 감독의 ‘부러진 화살’이 잘 만든 영화라고 생각하면서도 보고나서 기분이 찝찝한 것은 분노는 넘치지만 카타르시스(감정 배설)가 없기 때문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