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충의 달 6월이 왔다. 6월로 6.25전쟁 64년과 함께 실향민 63년을 맞으면서 망향의 반세기를 꿈길처럼 다시 더듬어본다.
금년 원호의 달은 총체적 난맥상으로 국가적 불행을 자초한 세월호 침몰 대참사를 겪은 뒤에 맞아 더욱 가슴이 아프다.
황해도에서 걸어 내려온 이산 피난가족의 막내 세대라 그 단장이 더욱 깊고 쓰리면서 뼛속까지 파고들어 전율을 금할 수 없다. 그래서 금년 현충의 달, 원호의 달의 감회가 더 처연하다.
제2차 세계대전, 태평양 전쟁의 패전국인 섬나라 일본을 멀쩡하게 제쳐둔 채, 전쟁 피해국인 우리 한반도가 미-소의 막후논리로 남북이 분단되고, 소련을 등에 업은 김일성 공산집단의 남침으로 6.25전쟁에 휘말렸다.
동족상잔의 6.25전쟁은 3년여 동안 이어지다가 1953년 7월 휴전되었으나 총성 없는 대치 국면이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필경 끝나지 않은 전쟁이며, 망실되는 과거사가 아니라 현재 진행형이다.
내 고향은 황해도 제일의 곡창지대 연백이다. 임진왜란 당시 이정암-유전 등이 연성대첩의 전공을 세워, 김시민의 진주대첩, 권율의 행주대첩과 함께 육상의 3대 대첩전승지로 꼽히는 곳인데, 3정승을 지낸 백사 이항복이 선조 41년(1608년)에 건립한 연성대첩비의 비갈명을 지어 그 사실을 남겼다.
경의선 개성 옆 토성에서 해주로 가는 토해선 열차가 통과하는 연백군은 면적 935.61㎢, 인구 20만 3600여명, 연안읍과 19개면이 38선을 사이에 두고 살았으나, 지금은 연백군 전체가 휴전선 이북의 북한 땅이다.
이북 5도민 가운데서도 황해도민들, 특히 38선 지역인 연백-해주-옹진지역 이산가족들이 유독 많다. 6.25남침으로 부산까지 밀렸던 국군이 UN군의 참전으로 위기를 극복하고, 북진을 감행하여 압록강까지 이르러 통일을 눈앞에 두고 있었다. 그러나 중공군의 개전으로 혹한 속에 엄청난 북한 주민들의 피난행렬이 이어졌다.
이런 국난 중에 38선 이남 지역의 남자들은 공산군에 끌려가지 않으려고 임시 피난길에 오른 탓에, 부자(父子) 형제 중심의 이산가족이 대다수다.
휴전 직전의 전황은 1주일 정도면 국군이 북진하면서 38선 지역은 수복될 것이라는 낙관론이 지배적이었지만, 1953년 휴전이 성립되고 고향 땅은 이북으로 묶이면서 돌아갈 수 없는 불귀의 땅이 되고 말았다.
그런 상황에서 임시 피난 나온 청소년들은 지척의 고향 땅을 격강만리(隔江萬里)처럼 바라보며 망향 반세기를 살아왔고, 연로하여 하나 둘씩 세상을 떠나 절반 정도가 작고했다. 남은 세대들도 삶의 종착역으로 다가서고 있다.
망향의 염원을 가슴에 안고 편지 한 장도 못 띄우며 살아온 이산 막내 세대인 필자도 어느새 77살이 됐다.
출향한 인생들은 망각 속에 살다가 죽으면 사체로 귀향한다. 그러나 이산 피난세대는 죽은 뒤의 마지막 선산 행마저도 휴전선에 막혔다. 이산가족의 막내 세대들마저 세상을 떠나는 지금, 선대들이 살아온 고향을 안내할 사람, 설명해줄 사람이 점점 줄어든다는데 단장의 절규가 더욱 뼈저리다.
더구나 피난세대의 자녀들은 부모의 고향 땅을 전설의 고장처럼 말로만 들었을 뿐, 그 누구도 밟아보지 못해 선대들의 고향의 정서와 개념이 없고 엷다.
우리는 공산집단의 남침으로 6.25라는 역사상 유례없는 동족간의 전쟁을 겪으면서 엄청난 살상자와 이산가족이 생겼고 국토가 만신창이 되는 대참극을 겪었다. 지금은 고령이 된 산업역군 세대들이 젊은 시절 피땀으로 일궈낸 눈부신 성장과 초고속 발전의 강렬한 빛으로 국난을 딛고 부국으로 일어섰다.
일부 반정부 선동세력들도 대한민국의 보호를 받으면서 이 땅에 살고 있다. 그런데도 반만년 민족사의 최대 비극인 6.25의 참상을 왜곡하고 1.4후퇴의 처절함도 외면한 채 재앙 국난 때마다 망국적인 악담과 요설(饒舌)로 반정부 반정권을 책동하고 국가의 기반을 흔들고자 광분한다.
후안무치 파렴치, 몰염치, 온갖 만행을 일삼는 그들은 이번 세월호 침몰 참사 애도마저 묘하게 악용하면서 혹세무민 나팔을 불어대고 있다.
우리는 국가적 재앙이 발생할 때마다 북침론의 어불성설 괴변을 펴온 일부 선동세력 반국가 단체들로부터 지역, 이념, 세대 간의 사회갈등을 부추기고 정치적으로 악용해 국론을 분열시키려는 만행에 시달리곤 한다.
백해무익한 반국가적 세력들의 선동책동은 위난 때마다 반복될 수밖에 없는 광란 작태이며, 대한민국 현대사에서 도려낼 수 없는 고질병이란 말인가?
아! 내년이면 분단 70년이다. 대한민국은 반드시 통일되어야 한다. 국론 분열의 참상과 분란은 이제 종식되고 자유민주통일 국가로 우뚝 서야 한다.
한반도의 남북통일은 대한민국이 선진국으로 진입하고 번영으로 달릴 수 있는 대박 보난자(Bonanza)의 기반 대로이며, 이산 피난세대들이 몽매에도 잊지 못할 망향 회한을 넘어 5천만 대한민국 국민 모두의 간절한 염원이다.
나는 한-중 국교수립 전인 1990년 여름 중국 베이징을 거쳐 백두산 천지에 올라 남녘의 산하를 바라보았는데, 중국 땅을 빙빙 돌아 올라온 통한이 복받쳐, 조선일보 기(旗 ; 중국 당국이 태극기 불허)를 펼쳐놓고 술 한 잔 따르며 비탄의 시(詩)를 읊은 일이 있다.
백두산 천지 북녘은 중국 영토라 당시 미수교국인 대한민국의 태극기를 흔들지 못하게 한 것은 그렇다 하지만, 서울 한복판 월드컵 경기장에서 관중들에게 태극기 지참을 불어하고 ‘대∼한민국’을 외치지도 못하게 한 사건이 있었으니, 2005년 8월 15일 광복 60주년 기념 남북통일 축구경기 때였다.
태극기는 바로 대한민국의 얼굴이요, 대한민국의 상징은 태극기인데….
이제 우리 사회를 지탱하는 지식인들, 양식을 갖춘 시민들부터 결연히 일어나서 나라 바로 세우기에 앞장서야 하고, 국민 모두가 대오각성 준법질서 의식을 가다듬어야 한다.
정부는 개과천선 쾌도난마의 강력한 리더십을 발휘하여 국가 시스템의 대개혁을 단행하고, 국가 원력(原力)을 바로 세워 대한민국의 국격을 승화시키는데 주저함이 없어야 할 것이다.
현충의 달 6월, 호국 영령들의 충혼을 추모하면서, 아름다운 금수강산에서 번영과 평화의 축가를 합창할 그날을 준비하는데 총력을 결집하는 일이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들의 책무이자 소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