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타고 산천 구경한 꼴이지만 촌사람이 난생 처음 10만톤급 유람선을 타고 느낀 것을 간단히 정리해 보았다. 여행기 치고는 많이 부실하지만 이런 여행을 꿈꾸는 사람들에게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기를 바라면서 씁니다.
8월의 일요일 오후 4시에 시애틀항을 떠난 '노르웨이지안 펄'(Norwegian Pearl)호는 46시간 항해 끝에 알래스카 주도 '주노'(Juneau)항에 닻을 내렸다. 꼬박 이틀을 쉬임없이 달려온 것이다. 그 때가 화요일 오후 2시였으니까 정말 긴 항해였다. 처음 배를 탈 때는 멀미를 걱정했으나 워낙 몸집이 커서 그런지 마치 호텔방에 머무는 기분이었다.
주도라고는 하지만 '주노'는 상주인구가 고작 3만 2,000명정도인 작은 도시. 그러나 크루즈선에서 쏟아놓는 관광객들로 거리는 인파로 북적거렸다. 거리에는 관광 상품을 파는 가게와 보석상들이 줄지어 있을 뿐 음식점이나 커피숍은 별로 눈에 띄지 않았다. 배에서 서둘러 점심을 먹고 하선한 우리 일행은 고래 떼를 보기 위해 작은 쾌속선을 타고 바다로 나가기로 했다.
육지에 내려서 하는 구경은 각자가 별도로 경비를 부담하는 이른바 옵션. 배에서 예약하면 비싸다는 정보를 알고 있기에 내려서 흥정했더니 고래 보기와 연어보기 두 가지에 한 사람당 110달러. 배에서는 240달러를 달라 했으니 비용을 상당히 절감할 수 있었다.
고래를 보려면 버스로 20분이상 달려 작은 포구에서 기다리는 쾌속선을 타고 40분정도 바다로 나가야 한다. 고래 떼가 노는 바다에는 벌써 여러 척의 배가 고래가 나타나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우리가 운이 좋은지 배가 이르자마자 고래가 물기둥을 뿜으며 떼거리로 나타났다. 어떤 놈은 머리를 내밀고 다른 놈은 꼬리를 솟구치는 묘기를 보여주었다. 더러 외톨이로 노는 고래도 있었다.
바다에서 오랜 시간을 머물 형편이 아니어서 우리는 아쉬움을 안은 채 뱃머리를 돌려 버스로 갈아타고 연어가 뛰노는 골짜기로 향했다. 빙하가 녹아내리는 여울에 먼 항해를 끝낸 연어가 있는 힘을 다해 거슬러 올라가는 모습이 장관이었다. 어떤 놈은 지쳤는지 흐느적거리기도 했다. 긴 여행을 끝낸 연어는 알을 낳고는 생을 마감한다니 그 회귀본능은 감탄을 자아내기에 충분하다.
미처 흥분을 가라앉히기도 전에 다음 항해를 위해 우리는 배로 돌아와야 했다. 배가 오후 9시 30분에 떠나기로 되어있어 우리는 7시 30분에 배에 올라 포도주를 곁들인 만찬을 즐기고 잠자리에 들었다. 이 배에는 정식당 뷔페 스낵카페 등 13군데의 식당이 있어 취향대로 골라 먹을 수 있다. 특별히 돈을 내는 식당도 있으나 대부분의 식당은 여행경비에 식비가 포함되어 무료로 이용하게 되어 있다. 배안에서는 현금을 쓸 수가 없고 모든 결제는 승선할 때 회사에서 내준 개인 카드로 하도록 되어 있다.
이 카드는 객실에 출입할 때, 승선과 하선을 할 때, 배 안에서 결제를 필요로 하는 물건을 살 때 모두 통용된다.
두번 째 기항지 '스캐그웨이'(Skagway)에는 수요일 새벽 6시에 닿았다. 항구에는 3척의 다른 크루즈 선이 정박해 있었다. 인구가 1,000명정도인 이 도시에 한꺼번에 10,000명 가까운 관광객과 선원들이 북적거리니 과연 관광지다웠다. 그 옛날 '골드 러시'를 회상케하는 흔적들이 도시 곳곳에 남아 있어 볼거리는 꽤 많았다.
우리는 금을 캐며 흥청대던 광산지대를 도는 왕복 3시간짜리 기차여행을 하기로 했다. 말이 기차이지 골짜기에서 산등성이를 오르내리는 시속 20km 정도의 협궤열차 철로 주변의 나무숲, 이름 모를 야생화, 폭포, 캐낸 광석을 나르던 철로의 잔해 등이 눈길을 끌었다. 고작 해발 873m라는 표지를 보았는데 등성이 곳곳에 녹지 않은 눈이 쌓여 있고 날씨도 꽤 싸늘했다. 시내에서 15달러 주고 산 반조끼 덕을 톡톡히 봤다. 산꼭대기는 카나다와 국경이 맞닿아 있었는데 분지에는 꽤 넓은 호수가 자리잡고 있었다. 물은 아주 맑았지만 물고기는 눈에 띄지 않았다. 관광 안내서를 보니 추울 때는 영하 40도까지 내려간다고 하니 8월인데도 녹지 않은 눈이 산등성이에 쌓여있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듯하다.
다음 날 목요일 새벽 4시에 눈을 떴다. 배는 이미 '글레시어 베이'(Glacier bay)에 들어서고 있었다. 오늘은 하루 종일 양쪽 얼음언덕을 구경하는 일정. 바다는 잔잔하고 하늘에서는 수많은 별들이 쏟아져 내리듯 반짝이고 있었다. 눈썹같은 그믐 달이 기울고 있었고, 거기에도 북두칠성이 우리가 가는 방향을 안내하고 있었다.
아침 9시 우리 배는 '글레시어 베이'에 도착했다. 천년설 빙벽이 지구온난화로 녹아내리는 현상을 똑똑히 볼 수 있었다. 그 얼음덩이가 둥둥 떠 맴도는 현장에서 나도 자연을 이렇게 만든 한 사람이라는 자책감이 일었다. 한 시간 남짓 머물다가 뱃머리를 돌리는데 갈매기떼가 뱃전을 떠나지 않는다. 아마도 배가 고파 그런가보다 하는 맘으로 과자를 손바닥에 놓으니 날쌔게 채가는 게 아닌가. 재미가 있어 몇번 그렇게 하다가 우연히 안내서를 보니 갈매기에게 먹이를 주어서는 안된다고 경고하고 있어 가슴이 뜨끔했다. 몇년 전 샌프란시스코에서 101번 해안도로를 여행할 때 페이블 비치를 지나게 되었는데 '여기에 있는 동물들에게 먹이를 주지 마세요. 동물들이 성인병에 걸릴 수 있습니다.'라는 경고문을 본 적이 있기 때문이다.
당국자에게 발각되었으면 상당한 벌을 받을 수 있는 일. 가슴을 쓸어 내리며 서둘러 객실로 들어왔다. 잠시 쉬다가 이른 저녁을 먹고 극장으로 가서 마술 쇼를 보았다. 여행 둘쨋 날 밤 이 극장에서 뮤지컬 '맘마미마'를 보았던 기억이 떠올랐다.
배는 밤길을 도와 출항한 시애틀로 돌아가고 있었다. 다음 기항지는 '케치칸'(Kechikan). 새벽 6시에 케치칸항에 도착했다. 우리의 일정은 수상비행기를 타고 1시간 남짓 하늘에서 '피요르드'(Fijord)식 해안을 구경하는 것이었으나 시간 여유가 있어 시내 관광을 먼저 하기로 했다.
우리가 고른 것은 나무공장에서 하는 여러가지 시연을 보는 것. 도끼로 통나무 자르기, 나무 기둥 오르기, 도끼로 과녁 맞히기, 톱질 빨리 하기 등 이었는데 두편으로 나누어 경쟁을 하는 것이었다.
오전 10시 30분 우리 일행 6명을 태운 수상항공기가 하늘로 올랐다. 하늘에서 보는 '피요르드'식 해안은 장관이었다. 크고 작은 봉우리에 갇힌 물은 아마도 만년설이 지구온난화로 녹아서 모인 것이 아닌가 생각되었다. 비행도중 산위에 있는 호수에 내려 사진을 찍게 하는 기장의 서비스가 고마웠다.
비행기에서 내려 배에 오르기 전 시내를 가로지르는 개천에서 또 연어의 힘찬 회귀의 몸부림을 볼 수 있었다. 나중에 안 일지만 이 도시의 별칭이 '연어의 수도'라고 한다. 또 이 도시에는 원주민들이 만든 ‘토템’이 많기로 유명하다고 한다. 실제로 교회 앞에 3~4m는 넉넉히 될 만한 나무 '토템'이 세워진 것이 눈에 띄기도 했다.
배는 예정대로 오후1시 30분에 '케치칸'을 떠나 밤을 새우고 하루 종일 항해하는 일정에 접어들었다. 도중에 갈 때와 마찬가지로 시간을 1시간 빠르게 맞추어야 했다. 배안 극장에서는 승무원들이 승객을 위한 장기자랑이 펼쳐졌다. 베트남, 인도, 인도네시아, 필리핀등지의 출신 승무원들이 노래와 춤 악기연주로 흥을 돋우었다.
크루즈 마지막 날인 토요일. 짙은 안개 드리운 태평양 연안을 달리는 '노르웨이지안 펄' 호 13층 '데크'에서는 신나는 빙고 게임이 벌어지고 있었다. 우리는 20달러를 투자해 5,000달러를 바라보았지만 꿈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배는 순조롭게 항해해 오후 6시 캐나다의' 빅토리아 컬럼버스'항에 닿았다. 이른 저녁식사를 한 터라 배에서 내리자마자 예약한 버스를 타고 '부차드 가든'(Butchart Gardens)으로 갔다. 한 사람당 입장료 80달러가 싼 것은 아니지만 주말에 하는 불꽃놀이를 보기 위해 과감히 투자(?)한 것이다. 불꽃놀이는 밤 9시부터 30분간 펼쳐졌는데 지금까지 본 것 중에 가장 화려하고 내용이 다양했다. 보통 불꽃놀이는 하늘에 쏘아 올려 갖가지 모양을 만드는 수준인데 비해 이곳 불꽃놀이는 동물을 형상화한 모습이 질서있게 움직이게 하는 다양한 내용을 연출하고 있었다. 입장료가 아깝다는 생각이 전혀 없었다.
우리 배는 밤 11시 '빅토리아 콜럼버스'항을 떠나 일요일 새벽 6시에 시애틀 항 66번 부두에 무사히 도착했다. 짐을 싸들고 허둥대는 육상여행에 비해 훨씬 편한 여행이었다. 노후에 꼭 크루즈여행을 하고 싶어 하는 서양 사람들의 바람을 어느 정도 이해할 것 같다.
사실 우리가 탄 배에는 승객이 약 2천 6백명. 승무원이 약 1천 3백명이 타고 있다고 들었는데 젊은 사람은 그리 많지 않고 노부부가 많았다. 지팡이를 짚는 사람은 양호한 편이고, 휠체어 신세를 지거나 보조자의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이 꽤 많았다. 정말 남의 눈치를 보지 않고 자신의 삶을 즐기는 그들, 그런 사람들을 알뜰히 배려하는 사회분위기가 부러웠다.
7박 8일 간의 알래스카 크루즈를 끝내고 일요일 오후 항공편으로 귀국길에 오르면서 참으로 멋진 여행을 했다는 느낌이 가슴을 뭉클하게 만들었다. 앞으로 얼마 남지 않은 내 생애에 이러한 감격을 다시 맛볼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