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23일, 대전 유성에서 추계 세미나를 마치고 그 이튿 날 청남대를 찾아 무르익어가는 가을의 정취를 만끽했다. 오전 11시가 됐을까. 일행은 3∼4명씩 짝을 지어 얘기꽃을 피우며 경내를 둘러봤다. 역대 대통령관을 둘러보고 청남대 본관을 보는 순서다. 입구에 들어서자마자 고등학생들로 보이는 40여명의 학생들 앞에서 해설사의 설명이 한창이다.
충북도청에서 파견했다는 해설사는 이곳을 찾은 학생들에게 청남대에 관해 열심히 설명을 한다. “청남대는 따뜻한 남쪽에 있는 청와대”라고 말이다. 금방 나의 귓전을 쫑긋하게 한다. ‘따뜻한 남쪽’이란 말은 낯설지가 않다. 김만철씨가 한 말이다. 한 때 온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던 대사건이었다. 김만철씨 가족 11명이 망명을 한 사건이다. 필자는 27년 전에 있었던 그 때를 회고 해 보고자 한다.
1987년 1월 15일. ‘따뜻한 남쪽 나라에서 살고 싶어 왔다’는 김만철씨 일가 11명. 그는 대가족을 조그마한 감시선에 태워 일본 쓰루가 항에 입항했다. 그 전날 14일은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이 터져 온통 나라가 혼란스럽던 시기였다. 서슬 퍼런 군부 전두환 정부는 큰 호재를 만났다. 이 기회를 놓칠리 없었다.
오후 3시쯤 기사 마감 시간을 앞두고 MBC보도국은 출입처로부터 걸려오는 전화벨 소리와 기사 받는 소리에 500여 평의 큰 사무실은 매우 혼잡했다. 지금은 노트북으로 출입처에서 기사를 보내지만 그 때는 전화를 직접 걸어 기사를 송고할 때다. 그런데 바쁜 와중에 ‘북한에서 한 사람이 가족 11명을 데리고 망명했다는 전화가 걸려 온 것’이다. 설마 그럴 리가, 전화를 받은 사람은 “헛소리 하지 마라”며 전화를 끊어버린 것이다. (이상은 제보자가 KBS에서 한 말이다) 전화 받은 사람은 장난인줄 알았다.
MBC에서 문전박대를 당한 제보자는 KBS에 전화를 했다. KBS는 이 제보 전화를 잘 소화해 그날 저녁 9시 뉴스에 보기 드문 특종을 했다. MBC는 전화 한 통 잘 못 받는 바람에 큰 특종을 놓친 것이다. ‘다 받은 밥상에 콧물을 빠트린 겪이다.’ 특종을 KBS에 빼앗긴 MBC는 그 다음날 만회를 하기위해 지금은 고인이 됐지만 9시 뉴스데스크 진행자 이득렬씨를 일본 쓰루가 항에 급파했다. 현지에 도착한 이득렬씨는 ‘뉴스데스크’를 그곳에서 1시간동안 위성으로 진행했다. 원래 1보를 놓친 언론사는 습성 상 후속 보도로 만회를 하는 법이다. KBS 박성범 앵커도 다음날인 17일 현지에서 방송을 했다.
김만철씨는 바로 한국으로 온 것이 아니다. 1987년 1월은 추운 겨울이었다. 새벽 1시, 청진항에서 조그마한 감시선을 훔쳐 타고 탈출한 김만철씨는 영해를 벗어나기 위해 동쪽으로 달렸다. 그러나 낡은 배는 거센 파도에 부딪쳐 공해상에서 엔진이 꺼졌다. 배는 정처 없이 남쪽으로 흘러내려 갔다. 조류에 떠밀려간 곳이 일본 영해 쓰루가 섬 근처였다. 일본 해상보안청 순시선에 발각돼 쓰루가 항에 닻을 내린 김만철씨는 “따뜻한 남쪽 나라를 찾아 왔다”고 말했다. 원래 김만철씨는 인도네시아쯤의 무인도에서 조용히 살고 싶었다고 망명이유를 말했다고 한다.
김만철씨가 내려오기 바로 전날인 1월 14일은 연세대학교 박종철군이 경찰의 심한 고문으로 사망한 날이어서 국내는 큰 혼란에 빠졌다. 이 때 전두환 군부는 이 기회를 그냥 둘리 없었다. 일본과 치열한 외교전을 벌였고 마침내 김만철씨를 한국으로 데려오는 데(망명하게 하는데) 성공했다. 부인과 장모 등 처가 가족까지 11명을 데리고 온 김만철씨는 국내는 물론 온 세계에 뉴스거리가 되고도 남았다.
김만철씨는 한때 정부로부터 후한 대접을 받고 정착금에 강의료다 보조금이다 해서 10억여원을 벌어 잘 살았다. 하지만 ‘아름다운 꽃에는 벌레들이 날아드는 법’. 돈이 많다는 김만철씨 주변에는 온갖 사기꾼이 찾아들어 그 많은 재산을 홀라당 잃었다. 그리고 그는 끝내 지병으로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현재 남은 가족은 과자봉지 만드는 일로 연명을 한다고 한다. 아들은 서울대학교에서 박사 학위과정 중에 있으며, 두 딸 중 한 명은 남한사람과, 또 한명의 딸은 탈북한 인민군 출신과 결혼해서 살고 있다고 한다.
김만철씨 사건은 어지간히 한국사회를 시끄럽게 한 사건이었다. 귀순자 한 사람이라도 아쉬웠던 시기에 11명의 대 가족을 이끌고 남쪽 나라를 찾아 온 것은 엄청난 충격이었다. 갈라진 반도의 한쪽에서 살아가던 몇몇 사람들의 운명이 오묘하게 또는 구슬프게 꼬이기 시작한 날이다. 냉전시기 체제경쟁에서 여러모로 활용됐다가 이제는 무용지물이 돼 버린 이들. 남이나 북이나 영양가 없는 망명객은 받아들이지도 않는다. 특히 북한의 경우 신용불량자나 실업자들이라면 되돌려 보내기 일쑤다. 이렇듯 인심은 각박해졌다. (끝)
필자: 김 휴 선 (전 MBC보도국 부국장, 현재 한국언론진흥재단 특임강사, 방송기자클럽 미디어 강사, 전 Kobaco 공익광고협의회 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