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레기에서 건진 은행 얘기
솔샘 호천웅
요즘 늦잠을 즐길 때가 참 좋다. 나른한 게으름이 자족(自足))이다.
“여보 이거 좀 봐!” 평온을 깨는 아내의 높은 목소리다.
또 어디 다쳤나? 얼른 일어났다. 그리고 소리 나는 데로 갔다.
냄새가 난다. 냉장고 문이 열려 있고 음식 쓰레기가 널려있다.
상황이 보인다. 며칠 어딘가를 다녀온 아내가 주부 역할 좀 해보려고 냉장고 청소하다 문제와 부딪친 것이다.
상한 김치, 썩은 과일과 생선 등이 뒤섞여 널브러져 있다.
내게 또 커다란 과제가 떨어진 것 같다.
그들과 섞인 흰색의 놈들이 날 쳐다본다. 은행 알들이다. 내 생각나느냐고 묻는 것 같다.
<아! 너희들이구나! 가을에 고향으로 집을 옮긴 친구 집 마당에서 주워온> 겨우내 뒤뜰에 처박아 뒀다가 수돗가에서 썩은 껍질 벗기고 닦고 닦아서 냉장고에 모셨었는데 음식쓰레기에 섞여 있다니 끔찍하다.
음식쓰레기 봉투를 가져온 아내를 쳐다보곤 혼자 중얼 거렸다.
“그래 너희는 절대 음식 쓰레기가 아니지”
옷부터 갈아입었다. 다부지게 해야 한다고 다짐했다.
걷어붙이니 이미 냄새는 날아갔고 썩은 김치도 별거 아니다.
바가지 하나를 따로 챙겼다. 그리고 은행 알들을 주워 담았다.
쓰레기들이 봉투를 채우고 나니 휴우! 하고 큰 숨이 나온다.
가만 그런데 이놈들이 썩었으면 내가 뭘 한 거야!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한 놈을 집어 깨물었다. 멀쩡하다.
내가 나한데 너 잘했다고 스스로 했다.
그리고 주방으로 달려가 박박 닦았다. 그리고 또 닦았다.
소쿠리에 받쳐놓고 보니 참 예쁘다.
송골송골 예쁜 은행알들이 웃는다. 좀 아파진 허리를 펴고 두 팔을 번쩍 올렸다. “너 오늘 만세다!”
다시 깨어난 은행 알들이 예쁘다. 복덩어리들이다. 은행 알을 한 움큼 챙겼다. 그리고 볶았다. 맑은 빛을 띤 은행 알 그리고 익은 향내!
썩은 음식쓰레기와 같이 버려졌던 은행 알을 챙겨 그 향과 맛을 즐기는 나!
중학생 때 배운 한자가 생각났다. 입립개신고!(粒粒皆辛苦)
농부 들이 힘들여 거둔 곡식 한 알 한 알이 모두 힘들여 땀 흘린 애씀의 결실이니 밥알 하나도 귀하게 여기라는 가르침이었다.
부지런히 공부하고 열심히 일하면 성공한다고 가르쳤던 호랑이 선생님 생각이 났다. “누구든지 일하기 싫어하거든 먹지도 말게 하라”는 성경구절이 떠올랐다. 곡식 낟알 하나라도 귀히 여겨서 절약하라는 가르침을 생각하는 나!
수주대토(守株待兎)란 말도 생각났다. 토끼가 나무에 부딪쳐 죽은 것으로 재미를 본 시골 사람이 그 나무 밑에서 다른 토끼가 또 와서 부딪쳐 죽기를 기다린다는 중국 고사.
요즘 粒粒皆辛苦는 내버리고 守株待兎만 기다리는 사람이 많다는 생각을 하게하는 세태다.
저승에 계신 선생님께 SNS 한 줄 보내드립니다.
“호랑이 선생님! 저 어때요!
칭찬 받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