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남북관계에서 가장 곤혹스러운 것은 저들이 끄떡하면 앞세우는 핵무기 위협도 위협이려니와 그보다는 저들의 절제되지 않은 말투로 인한 말초신경 자극이다. 어떻게 그런 모질고 야비하고 흉측한 말들을 공공연하게 내뱉는단 말인가.
앞뒤 가리지 않고 악을 써대는 욕지거리에 우선 정나미가 떨어진다. ‘에이, 한심한…’ 하면서 그 유치함에 혀를 끌끌 차보지만 뒷맛이 영 개운치 않기는 누구나 마찬가지다. 저들은 우리에게 ‘각성하라! 겁먹어라!’ 하는 의도로 지껄일 테지만 듣는 우리는 하나도 겁나지 않고 부끄럽지도 않다. 오히려 같은 민족임이 부끄럽고 측은할 따름이다.
우리가 살면서 마음속은 좀 불편해도 입술을 통해 내보내는 말은 항상 부드러워야 한다. 그래야 말에 설득력이 붙고 존중할만한 인격자로 대접을 받기 때문이다. 문명이 앞섰다고 하는 서구 나라 사람들을 겪어보면 가장 인상 깊은 것이 말씨가 점잖고 부드럽다는 것이다. 특수층, 점잖은 사람의 격식을 갖춘 자리에서만 그러는 게 아니고 보통사람들의 일상대화에서도 항상 상대방을 배려하는 마음이 묻어난다.
부드러운 말씨가 더 설득력 있다
지하철 같은 공공장소에서의 대화는 하나같이 소곤소곤 조용하다. 그리고 상대방이 못마땅한 말을 해도 ‘나는 그렇게 생각지 않는다.’ 정도로 완곡하게 반대의견을 말한다. 우리처럼 대뜸 ‘이런 엉터리가 있나! 그걸 말이라고 해?’ 라고 대응하면 멀뚱히 쳐다보다가 자리를 뜬다. 그리곤 나쁜 사람, 덜된 사람이라고 분류해버린다. 물론 그들도 영화에서 보는 것처럼 ‘선오브 비치’ ‘퍼크 유’ ‘빈치 뚜 마드레’등의 욕설을 한다. 하지만 이는 뒷골목의 건달들이나 사용하는 말이다.
우리는 언제부터인지 자기와 조금이라도 다른 생각을 가지고 있으면 ‘네가 틀렸다.’고 규정해놓고 마치 적군을 대하듯 타도하려는 습관에 젖어버렸다. ‘다르다’의 반대개념이 ‘같다’이고 ‘틀리다’의 반대개념이 ‘옳다’인 것을 아예 모르쇠 하는 타인부정의 사고인 것이다. 간혹 영어를 사용할 때 ‘different'와 ’wrong'을 혼동해 표현하면 마치 큰일이나 난 것처럼 호들갑을 떨면서도 우리말을 할 땐 식자들도 ‘우리 같은 경우 너와 틀려서 아침에는 아침밥을 안 먹는다…’라며 문법도 어법도 맞지 않는 말을 태연히 지껄인다.
갑을 관계는 원래 평등한 관계여야 옳다. 그런데도 ‘甲’인 나만 있고 ‘乙’인 상대방은 없다는 극단적인 이기주의와 우월의식으로 거친 말과 막말을 입에 담는다. 어떤 지도층 인사는 아예 전문적으로 그리고 상습적으로 상스런 말을 내뱉는다. 그리곤 유명세를 즐긴다. 얼마 지나지 않으면 버젓이 대중매체에 다시 나타나 또 흰소리를 한다. 소위 막된 말로 이득을 챙기는 것이다.
갑을 간의 우격다짐, 부끄러운 자화상
말에는 독소가 있다. 아마 전갈이 내뿜는 독보다 더 치명적일 것이다. 말로 인해 상처를 받으면 결코 쉽게 치유되지 않는 이유가 이 때문이다. 우리가 인간관계에서 나쁜 감정을 갖는 것은 신체적인 위해보다는 말의 독소에 쏘였을 때이다. 우리 속담에 ‘때리는 시어미보다 말리는 시누이가 더 밉다’라는 말은 여기에서 연유한다. 말의 독소는 정서를 망가뜨리고 사고를 마비시키며 심지어 신체기능까지 저하시키는 해를 끼친다는 게 통설이다.
더 끔직한 것은 말의 독소는 쉽게 제거되지 않는다는 경험이다. 발설자의 지극한 뉘우침과 간절한 사과로 어느 정도는 해소되지만 흔적까지 지우지는 못한다는 사실이다. 그래서 ‘말이 씨가 된다.’는 속담이 생겨났다. 우리가 사람을 만날 때 우리 몸속의 대항기전이 맨 먼저 반응하는 것은 그 사람의 언행에 대한 기억이다. 반대로 천하에 없는 수전노도 말 한마디에 천 냥 빚을 탕감해준다. 이게 말의 위력이다.
우리의 말본새가 너무 곱지 못하다. 부부 간, 친족 간, 친구 간, 이웃 간, 동업자간, 노사 간, 정파 간, 갑을 간 대화가 모두 공격일변도의 험악한 말투다. 언어행태 전문가는 ‘경제가 팍팍해지면서 이기주의가 만연해 甲한테 받은 상처를 곧바로 乙한테 되갚는 분노 돌리기가 확산되고 있기 때문’이라고 진단한다.
험한 말로 이득 챙기려는 부류 도태시켜야
문제는 이 같은 막말 쌍말 세태를 고치기가 쉽지 않다는 점이다. 혹자는 민도를 들먹이지만 교육만으로 해결되기를 기대하는 것은 백년하청이다. 폭언과 악담도 일종의 폭력이다. 작금의 성폭력문제에 대처하듯이 자기의 말에 반드시 책임을 지도록 하는 사회적 경각심과 분위기 조성이 있어야 할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사회의 지도층 식자층 특히 언론의 언어폭력에 대한 인식과 역할이 매우 중요하다.
단 한번만이라도 막말 험한 말 상스런 말을 공공연히 내뱉는 사람에 대해서는 단호하게 대처, 매도하고 추방하고 매장시키는 결기를 보여야 한다. 말을 함부로 하는 것은 순간의 실수가 아니라 그 사람의 됨됨이를 나타내는 것으로 더 이상 기대할 것이 없기 때문이다. 최소한 공적인 위치에서 막말 비상식적인 말로 인해 비난을 받고서도 버젓이 공공매체에 다시 등장하는 일만은 되풀이 되지 말아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