늙으면 남는 건 부부밖에 없다. 강원도 횡성 산골에 98세의 할아버지와 89세의 할머니 부부가 외롭지만 소꿉장난 같은 삶을 살고 있다. 이들 노부부의 가족은 개 두 마리. 청량한 공기와 야트막한 뒷산에서 내려오는 바람과 개 짖는 소리가 노부부의 적막함을 달래줄 뿐이다. 그래도 노부부의 금슬은 청춘이다. 마당에 쌓인 낙엽을 쓸다가 낙엽을 서로에게 던지는 어린아이 같은 천진한 장난을 치고, 할아버지는 노란 국화를 꺾어 조그마한 예쁜 꽃다발을 만들어 할머니에게 바친다. 할아버지는 할머니 얼굴을 쓰다듬으며 “예쁘다”고 속삭인다. 할머니는 꽃다발 속의 국화 한 송이를 꺼내 할아버지 안경대에 끼우며 “잘생겼다”고 화답한다.
산촌에 눈이 내리면 할머니는 “첫 눈을 먹으면 오래 산다”고 두 손 안에 든 눈송이를 할아버지 입안에 넣는다. 할아버지도 할머니 입에 눈을 넣으며 “눈이 설탕보다 달다”고 너스레를 떤다. 밤에 할머니는 안채 밖에 있는 뒷간에 갈 때 할아버지에게 보초를 서달라고 한다. 할아버지는 보초를 서면서 옛노래를 흥얼거린다. 할머니는 감성파고 할아버지는 로맨티스트이다.
진모영이 촬영·감독한 ‘님아, 그 강을 건너지 마오’는 2012년 9월부터 2013년 11월까지 1년 3개월 동안 강원도 횡성에 사는 89세의 강계열 할머니와 98세의 조병만 할아버지의 실제 삶을 담았다. 76년을 함께 산 노부부의 삶과 사랑과 이별을 담은 다큐다. 노부부의 삶은 동물성 고기가 빠진 식물성 채소 식단이지만 담백하고 깊은 맛이 있다. (영화 속 노부부 식탁은 김치 등 채소 일색이다) 노부부의 사랑은 불꽃처럼 화려하지는 않지만 난(蘭) 꽃처럼 은은한 향기를 뿌린다. 노부부의 이별(할아버지의 죽음)은 슬픔이 요란하게 겉으로 드러나지는 않지만 할머니 뼛속으로 조용하게 깊숙이 파고든다.
노부부는 아들 셋, 딸 셋 모두 여섯 명의 자식을 두었지만 단 둘이만 산다. 열네살에 시집가서 열여섯 살에 첫날밤을 지낸 할머니는 아들 여섯, 딸 여섯 모두 열두 명을 낳았지만 반만 살았다. 살아있는 자식 여섯 중에 어느 한 명 노부부를 모신 자식이 없지만 할머니는 가난 때문에 한 겨울에도 죽은 자식들에게 내복을 입히지 못한 게 한이 되어 시장에 가서 죽은 아들 딸 들을 위해 어린아이 내복 여섯 벌을 산다. 할머니는 내복을 살 때 “예쁜 것으로 달라”고 강조한다. 할아버지는 나이 때문인지 숨소리가 가쁘다. 뒷산에 가서 땔나무를 챙겨 지게에 지고 내려올 때 할아버지의 숨소리는 죽음으로 달려가는 시계의 초침소리처럼 관객의 청각을 때린다.
할머니와 할아버지 단 둘이 사는 집에도 가족이 있다. 개 두 마리. 공짜로 들어왔다고 해서 이름을 ‘공순이’로 지은 암캐와 삽살개 ‘꼬마’다. 공순이에게 목사 집 수캐가 임신을 시켰다. 공순이는 생존한 할머니 자식들처럼 암놈 셋, 수놈 셋 모두 여섯 마리를 낳았다. 공순이가 낳은 새끼들은 전부 애비가 있는 목사 집으로 보내기로 했다. 새끼들이 한창 재롱을 피울 때 ‘꼬마’ 개가 죽는다. 할머니는 손수 삽으로 무덤을 파고 하얀 수건을 깐 후 꼬마를 묻고 내려오면서 “불쌍한 것”을 되풀이한다. 외로운 노부부에게 개는 가족이었다.
노부부는 오랜만에 노인대학이 주관하는 야유회에 버스를 타고 여행을 떠난다. 버스에서 할아버지는 음악에 맞춰 신나게 춤을 추지만 기침은 더욱 거세지고 밤에는 가래가 끓는다. ‘꼬마’ 개가 죽은 후 할아버지는 더욱 여위어가고 기력은 떨어진다.
노부부 자식들은 일년에 두 번 부모 집을 찾아온다. 설날과 할아버지 생일. 할아버지 생일에 자식들은 손자·손녀를 데리고 찾아와서 생일상을 차려드리지만 막판에 큰오빠와 막내딸이 효도 문제로 심한 언쟁을 벌이고 육탄전 일보 직전에 이른다.
할아버지는 23세에 14세의 할머니를 신부로 맞았다. 신부가 너무 어려 16세에 합방을 했다. 합방 전 신랑은 한 방에 자면서도 신부의 얼굴을 손으로 만지기만 했다. 할머니는 자신이 16세가 될 때까지 할아버지가 잘 참아줬다고 고마워했다. 할아버지는 늙어서도 그 때의 버릇으로 할머니의 잠자는 얼굴을 손으로 만진다.
마침내 할아버지의 임종이 다가왔다. 병원에서 할아버지의 죽음을 준비하라고 가족에게 말한다. 할머니는 마음의 준비와 함께 할아버지가 죽어서 좋은 곳으로 가라고 할아버지 옷을 태운다 아궁이에서 태우고 들에서도 태운다. “곧 따라 갈테니 먼저 가서 자리 잡고 있으라”고 할머니는 말한다.
할아버지를 뒷산에 묻고 혼자 집으로 가는 할머니의 발걸음은 무겁다. 가까스로 도랑을 건넌 할머니는 논길에 주저앉으며 “끼이끼이” 눈물을 터트린다. 할머니의 울음은 극장 문을 나선 후에도 오래도록 내 가슴에 메아리쳤다, 핵가족시대 효도의 개념이 사라진 오늘의 한국사회에서 이 영화는 단순한 노부부의 삶과 사랑과 이별의 의미를 넘어 사회에 던지는 묵시적 메시지가 있다.
끝으로 한 마디. 이 영화는 드라마가 아니라 다큐이기에 그 느낌은 더 절실하고 사실적으로 다가온다. 그런데 연출이 가미되어 때때로 노부부의 삶이 작위적으로 보이기도 했다. 연출이 가미되지 않았으면 한결 더 생생하고 자연스럽게 노부부의 삶이 일상으로 다가왔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