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의 바둑에는 가끔 묘수라는 게 등장한다. 사활의 궁지에 몰린 대마가 고심 끝에 나온 기막힌 한 수로 기사회생해 판세를 역전하는 경우를 말한다. 그런데 바둑의 격언에는 ‘한 판에 묘수가 세 번 나오면 패한다.’는 말이 있다. 거듭된 묘수는 오히려 판세에 해를 끼친다는 뜻인 게다.
신수(神手)라는 것도 있다. 10만 판을 두어도 한 수 나올까 말까하는 극히 드믄 수로 입신(入神)의 경지라는 九단도 평생에 한 수 만들어낼까 말까하는 경지 높은 수를 말한다. 판세를 승리로 이끄는 고수의 작품이랄 수 있다.
바둑을 즐기는 사람들은 흔히 ‘묘수도 신수도 안 되면 꼼수라도 두어라’며 채근한다. 꼼수가 묘수와 신수보다 더 유용하다는 말이 아니라 이미 기울어진 판세에 웬 집착이냐고 비아냥한다. 바둑에서 꼼수란 전혀 수가 되지 않지만 상대가 무심코 대하다가 실수를 저지르는 수를 말한다. 그러니까 상대를 속여 승리하려는 얄팍한 노림수를 일컫는 것이다. 당연히 점잖은 사람이라면 기피해야 할 태도다.
‘꼼수’란 비속어다. 정정당당하게 나서지 못하고 비열한 수단과 방법으로 대응하는 태도를 말한다. 그래서 평소 꼼수나 부리는 사람은 환영을 받지 못하고 심하면 사람 축에 끼어주지도 않는다. 지성인의 세계에서는 ‘꼼수’라는 말 자체도 입에 올리기를 기피하는 게 상례다.
그러한 ‘꼼수’가 요즘 세간을 어지럽게 하고 있다. 어느 점잖지 못한 사람이 ‘X꼼수’라는 인터넷 세상을 열어 이리저리 헤집고 다니면서부터다. 유포되는 내용도 사안의 진실을 파헤치기보다는 신상 털기 등 주로 개인의 치부를 들춰내거나 흥미 위주의 까발리기 또는 침소봉대식의 덮어씌우기를 일삼는 것이 주다.
그 무책임성을 탓하려들면 끝도 한도 없는 지경이니 새삼 입에 담고 싶지는 않지만 최근 정계 관계의 내로라하는 유력자들마저 말끝마다 ‘꼼수’를 들먹이고 있는 상황이어서 어이가 없을 정도다.
어떤 식으로든 불이익을 좀 당했다 해서 상대방을 겨냥해 ‘꼼수로밖에 볼 수 없다’고 비난하는 것은 직역하면 ‘그런 얕은 수작으로 나를 속이려 드느냐’는 힐난이어서 시정잡배가 아닌 다음에야 어찌 그런 막말을 서슴지 않는 것인지 모르겠다. 이게 웃을 일인지 울 일인지 모르겠지만 ‘꼼수’라는 힐난을 당한 사람 역시 ‘너야말로 꼼수 부리지 말라’고 되받아치는 것을 보면 아마도 이들의 전직은 시정잡배였던 것 같다.
그런 사람들 면면을 보면 제법 좋은 집안에서 태어나 좋은 교육을 받고 누리기도 하고 베풀기도 했던 그래도 괜찮은 사람들이었다. 정치에 입문하면서는 국가와 민족을 들먹이며 국민에게 멸공 봉사하겠다고 허리를 90도로 꺾어 자세를 낮출 줄도 알았던 위인들이다.
그런데 갑자기 무엇이 그들을 비겁한 말을 입에 담는 시정잡배 같은 꼴로 전락시켰을까. 아마도 욕심 때문일 것이다. 사람 나이 50이면 지족(知足)이라 했거늘 자신의 처지를 생각하며 스스로 자중할 줄 알아야 하는 터수에 탐탁찮은 일에 몽니를 부리고 있으니 한심의 극치라 할 만하다.
세상이 어쩌다 행동은 물론 언사조차도 앞가림할 줄 모르는 이런 지경으로 함몰돼 가는지 선현들과 후학들에게 부끄러울 따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