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중동에서는 IS와 시리아 이라크가 밤낮 없이 전쟁을 하고 있다. 이슬람과 수니파, 시아파가 서로 얽힌 종교전쟁이다. 그들 뒤에는 강대국들이 조정을 하거나 지원을 하고 있다. 지금껏 대부분의 전쟁이 그러했듯 종교간, 민족간의 전쟁은 강대국의 이해관계가 얽혀있기 때문에 문제해결이 더욱 어렵다. 중동전쟁이 그러했고 유고슬라비아 전쟁 또한 종교간의 세력다툼에서 비롯됐다. 최근 필자는 ‘인종청소’로 불리어지는 보스니아 내전의 현장 ‘모스타르’를 찾았다.
‘보스니아’는 아직도 뇌물 통해
‘모스타르’를 가기 위해서는 크로아티아와 보스니아 국경에서 비자를 받아야한다. 우리는 체코와 오스트리아를 거쳐 헝가리를 떠난지 8일 만에 크로아티아와 보스니아 국경에 도착했다. 비자는 국경선 컨테이너 박스 안에서 받았다. 운전기사가 여권을 가지고 박스 안으로 들어간다. 일행은 버스 안에서 한 참을 초조하게 기다렸다. 운전기사가 나오더니 캔 맥주와 물병 등 20여개를 가지고 박스 안으로 다시 들어간다. 그리고 20여분이 지났을까. 운전기사가 나오면서 “지금도 이곳을 통과하려면 돈이나 술, 물과 같은 뇌물을 줘야 빨리 통과할 수 있다”고 말한다.
‘모스타르’ 다리 앞에선 필자.
버스는 비자를 받고 30여분을 더 달렸다. ‘모스타르’시가 멀리서 보인다. 모스타르는 보스니아에서도 한적한 조그만 도시다. 북한 김정남의 아들 김한솔이 유학하는 곳으로도 알려져 있다. 일행은 도착하자마자 터키식 케밥으로 점심을 하고 ‘모스타르’ 다리를 구경했다. 우리가 찾은 시각은 낮 12시경. 땡볕이 내리쬐는데도 다리위에는 많은 사람들로 발 디딜 틈조차 없다. 관광객이 그때의 현장을 보기위해 세계 여러 곳에서 찾아온 것이다. ‘네레트바(Neretva)강’을 동서로 연결하는 아치형 다리는 빼어난 곡선미를 보여주고 있었다. 폭이 5m, 길이가 30m정도이고 높이가 25m라고 한다. 강물은 말없이 유유히 흐르고 있다. 다리 위에서는 관광객이 주는 몇 푼의 팁을 받고 젊은이들이 강물 아래로 뛰어 내리는 묘기를 부린다. 많은 사람들이 탄식을 하며 환호를 지른다. “매년 뛰어 내리다가 물에서 한두 명씩은 죽는다”고 주위 사람들은 말한다.
인종청소현장 ‘모스타르교’
‘모스타르’라는 말은 네레트바강을 지켜주는 ‘파수꾼’이라는 데서 유래가 됐다고 한다. 1993년 보스니아 내전 때 크로아티아군의 공격으로 파괴됐다 2004년에 복원됐고 그 다음 해인 2005년에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됐다. 강바닥에 떨어져 가라앉은 조각들을 일일이 찾아 원형에 가깝게 복원한 것이라고 한다. 길거리는 대부분 조약돌로 깔려져 있고 양옆으로는 군데군데 음식점들이 있다. 토산품과 문구류, 선물용품도 팔고 있었다. 이곳저곳에는 ‘Don’t Forget '93’이란 표지석이 길바닥에 박혀있다. ‘93년 전쟁을 잊지 말자는 뜻이다.’ 민족간의 화해의 징표로 세워진 이 ‘모스타르 다리’는 보스니아 내전이 발발했던 곳이다. 당시 다리를 사이에 두고 서쪽은 크로아티아계의 가톨릭이, 동쪽은 세르비아계의 정교도가 그리고 이슬람을 믿는 무슬림이 한데 어우러져 서로의 문화를 존중하고 이해하며 함께 살아왔다.
발칸의 전쟁은 유고슬로비아 시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티토대통령 시절 보스니아, 마케도니아, 슬로베니아, 크로아티아, 세르비아, 몬테네그로 등 6개 사회주의 연방으로 구성된 나라였다. 1980년 티토대통령이 죽고나서부터 분열되기 시작했다. 슬로베니아를 선두로 크로아티아, 마케도니아 등 유고연방을 구성했던 나라들이 차례로 하나둘씩 독립을 선언했다. 이후 보스니아-헤르체코비나가 독립을 선언하자 세르비아인들이 핍박을 염려해 이슬람을 믿는 보스니아인들과 크로아티아인들을 무차별 학살하면서 내전이 시작됐다. ‘인종청소’를 한 것이다. 결국 세르비아와 보스니아, 크로아티아의 종교전쟁은 유고슬라비아라는 국가를 이 지구상에서 영원히 사라지게 만들었다.
보스니아 내전(Bosnian War)은 1992년 4월에 시작해서 1995년 12월에 끝났다. 20세기 인류역사상 가장 잔인한 전쟁으로 기록된다. 430만 인구 중 27만명이 사망했으며 230만 명의 난민이 발생했고 57개 도시가 파괴됐다. 50여개의 마을이 불에 탔다. 내전의 희생자중 상당수는 ‘인종청소’에 의해 집단학살을 당했고 많은 부녀자들은 성폭행 희생자가 되었다. 거리에는 아직도 전쟁의 후유증이 뚜렷했다. 건물마다 총탄 흔적이 남아있고 아직도 복구가 덜 된 곳은 유령의 집처럼 곳곳에 서있다.
뼈대만 엉성한 건물.
프랑스 소설가 마르셀 푸르스트는 “진정한 여행이란 새로운 풍경을 보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눈을 갖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보스니아 ‘모스타르’ 여행은 1993년이란 시간과 그 시간의 공간을 새롭게 바라볼 수 있는 눈을 갖게 해준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