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연평해전’(감독 김학순)은 온 국민에게 국가 안보에 대한 경각심을 깨우치고 반성문을 쓰게 했다. 이 영화는 2002년 서해에서 한국 해군 참수리 357정과 북한 해군 함정과의 연평해전을 소재로 다뤘지만 전쟁영화의 범주를 넘어선 가슴 뭉클한 휴머니즘이 깔려있다. 어쩌면 분노와 슬픔의 카타르시스인지 모른다. 그래서 나는 이 영화를 본 후 예술성·작품성·완성도 등등의 영화적 평가는 따지지 않기로 했다. 영화 중반 이후 북한 함정의 기습공격을 받고 한국 해군 참수리 357정은 순식간에 아수라장이 됐다. 잘린 수병의 다리가 갑판위에 외롭게 떨어져있고 기관포로 응사하던 한국 수병의 가슴에선 선혈이 군복을 적셨다. 내 뒷좌석의 젊은 여성 관객은 이때부터 체면과 부끄러움도 잊은 채 소리 내며 울었다. 객석 여기저기서 훌쩍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북한 해군의 이상동향을 미리 감지하고 대책을 상부에 건의했지만 적이 발포하기 전에는 절대 먼저 사격하지 말라는 ‘교전수칙’에 분노했고, 꽃보다 아름다운 수병이 죽은 마당에 월드컵 결승전을 관람하러 일본으로 떠난 한국 대통령과 참수리 357호가 침몰하고 수병이 전사한 톱뉴스를 월드컵 경기 중개방송 화면 자막으로 처리한 역사인식이 슬펐고, 부상당한 한상국 하사가 자신을 치료한 위생병 박동혁 상병에게 “배는 내가 지킬 테니 너는 사람을 살려라”는 말에 감격했다. 영화 ‘연평해전’은 13년 동안 역사의 깊은 무덤에 유폐됐던 제2서해교전을 햇빛이 비친 수면위로 건져 올렸고 순직으로 가볍게 처리해버린 6명 전사자의 명예와 애국심을 회생시켰다. 이것만으로도 평단의 무관심 속에서 개봉 23일 만에 500만 명의 관객을 동원하기에 충분했다.
2002년 대한민국의 6월은 온 나라가 월드컵 열기로 뜨거웠다. 서울광장 등 대한민국의 모든 광장은 ‘붉은악마’의 붉은 물결로 도배했다. 참수리 357 정에서도 한 수병이 갑판 난간에 아슬아슬하게 기대여 텔레비전 안테나 방향을 조절하면서 독일과의 결승 진출전을 시청할 정도로 월드컵 열기는 광적이었다. 대통령을 비롯한 온 백성의 영혼이 월드컵에 팔려있었다.
남한이 월드컵 축제분위기에 들떠있을 때, 북한 해군은 서해에서의 도발을 은밀하게 추진하고 있었다. 북한 해군 군관들은 꽃게잡이 어선의 어부로 위장해 NLL을 넘어와서 참수리 357정에 일부러 붙잡힌다. 북한 군관들은 참수리 357의 내부를 꼼꼼하게 살피고 윤영하 정장의 심문에 “남한에서는 어부를 이렇게 험하게 다루느냐”고 당당하게 큰 소리 친다. 윤 정장은 북한 어부들의 태도에 이상한 낌새를 느끼고 본부로 연행하겠다고 보고한다. 그러나 본부 책임자는 “월드컵 기간에 문제 일으키지 말고 송환하라”고 명령한다. 그 후 본부회의에서 윤 정장은 북한 해군의 심상치 않은 동향을 보고하고 북의 도발이 일촉즉발인데도 북이 발사한 다음 응사한다면 우리 함정은 치명상을 입을 것이라고 항변한다. 북한 해군은 6월 27, 28일 이틀 간 암암리에 기동훈련을 했다. 그러나 상관은 ‘교전수칙’을 지키라고 일관되게 되풀이한다. 윤 대위는 거듭 항변하지만 묵살된다. 윤 대위의 동기생인 여군 최 대위는 “아버지처럼 바른 말 하다가 대위에서 제대하고 싶나. 윤 대위는 승진도 생각하라”고 자제를 당부한다. 윤 대위의 아버지도 해군 장교였다. 그러나 소신대로 행동하다 대위에서 예편됐다. 아버지는 자신의 못 이룬 꿈을 아들 윤 대위가 이루어주길 바랐다. 윤 대위가 전사한 후 아버지는 안산 집 벽에 걸어둔 소령으로 추서된 하얀 해군 정장을 붙잡고 터져 나오는 울음을 속으로 삼키는 장면은 슬픔의 카타르시스였다.
6월 29일, 서울 상암 월드컵 경기장에서 한국과 터키의 3~4위전이 열리는 날이다. 북한 해군은 D 데이다. 한국 해군의 ‘교전수칙’ 약점을 알고 있는 적 함정은 NLL을 넘어 참수리 357로 속도를 더하며 접근한다. 적 함정의 도발을 본능적으로 느낀 윤 정장은 긴급 상황을 본부에 알린다. 본부에서는 여전히 교전수칙을 지키라며 ‘차단’만을 지시한다. 마침내 참수리 357정과 북한 함정이 11자 형으로 됐을 때 북한 함정은 참수리정을 향해 발포했다. 북한 함 정장은 참수리정에 붙잡혔던 위장한 어부였다.
적의 발포로 시작된 30분간의 서해교전. 영화에서도 실제 교전처럼 30분간 해전 신이 전개된다. 참수리 357정의 조타실이 직격탄을 맞고 갑판에는 잘린 다리 한 쪽이 나뒹굴고, 전기가 꺼지고, 온 몸에 총알을 안은 수병이 붉은 피로 싸인 채 힘없이 쓰러진다. 기관포 사수는 소낙비처럼 쏟아지는 적탄에도 아랑곳 않고 기관포를 쏘면서 “그만 쏴라! 시팔놈들아!” 절규하면서 숨을 거둔다. 한상국 하사는 결혼식을 올리지 못해 항상 미안해하는 아내의 사진이 든 사진 케이스의 쇳줄로 마비 증세가 있는 한 쪽 손목을 키에 묶고 윤 정장의 명령에 따라 키를 돌린다. 위생병 박동혁 상병은 배안을 휘저으며 부상병을 치료하다 파편을 맞고 쓰러진다. 한 하사는 실종되고(나중에 물속에서 건진다), 윤 정장도 전사한다.
6명 사망, 19명 부상. 참수리 357정은 남하하다 침몰한다.(나중에 인양했다) 박동혁 상병은 온 몸에 파편이 박혀 국군통합병원에서 70여일간 투병하다 숨졌다. 박 상병이 숨진 직후 벙어리 어머니(실제는 정상인)가 인공호흡기를 아들의 가슴에 대고 절규하는 장면은 슬픔을 넘어 분노했다. 영화 ‘연평해전’을 보면서 왜 그렇게 가슴에 분노가 끊임없이 치밀어 오르는지.
영화를 보면서 분노를, 영화관을 나와서는 부끄러움을 느꼈다. 2002년 국민은 월드컵에 영혼을 팔았고, 그 후 13년간 위장된 평화를 위해 참수리정 비극을 수장시켰고,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친 젊은이들을 망각했다. 숨진 6명의 수병은 아직도 전사가 아닌 순직이다. 이런 나라에서 누가 국가 안보를 위해 목숨을 바치겠는가.
‘국가 안보를 위해선 긍정적인 방법이든 부정적인 방법이든, 영광스러운 것이든 치사한 것이든 다 가치 있는 것이다’. 마키아벨리가 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