점잖은 사람인지와 아닌지를 분별하는 첫 번째 도구는 그 사람의 말본새다. 그래서 말은 인격의 표현이라고 말한다.
요즘의 중장년이 겪는 어려움 가운데 하나가 말의 표현방식이다. 같은 중장년끼리는 별 문제없이 다정다감한 대화를 나눌 수 있는데 젊은 층과 청소년을 만나게 되면 매우 곤혹스러워진다.
“아버님. 찾으시는 게 있으세요?”
“신발 하나 살까 해서……”
“아, 그러세요? 신발 코너는 저쪽에 있으세요.”
“으응? 저쪽에 계~세~요~? 누~가~요~?”
이쯤 되면 대형매장을 찾아간 중년신사가 젊고 예의 바른 안내원과 나누는 대화임을 알 수 있다. 그런데 말의 엇박자가 심하다. 신발 파는 곳은 저쪽이라는데 누구냐고 묻고 있는 것이다.
나이 들면서 귀에 거슬리는 말투는 이것뿐이 아니다. 은행 창구 직원의 “수수료가 나오세요.”, 관광안내원의 “저기 보이시는 남산은...”, 고궁안내원의 ‘줄을 서실 게요.“등은 기분을 상하게 할 정도다. 심지어 방송의 뉴스 앵커조차 ”지금 피의자께서 검찰청으로 들어가십니다.“라고 중계한다. 한심하다 못해 안쓰러울 지경이다.
이에 대해 일일이 대응할 수 없다는 것이 나이든 사람의 탄식이다.
절대로 삼가야 할 일탈 표현
꼭 고상하고 점잖은 말투를 고집하는 것은 아니다. 욕이나 다름없는 말을 삼가는 것은 기본이고 사리에 맞는 말, 상황에 적합한 말을 사용하자는 것이다. 억지로라도 노력해야 한다.
음식점에 가서 젊은 여종업원에게 ‘야! 언니야!’, ‘이봐! 이모! 여기 깍두기 좀’ 하며 고함치는 것은 참 무지스럽고 역겹다. 먼지투성이 작업복을 입은 무리일지언정 나이다운 언행이어야 대접을 받는다. 그냥 ‘종업원~’하든지 ‘도우미 양~’이라고 다정하게 부르면 단번에 달려와 준다. 당사자들과 주위사람이 존경스러운 눈초리를 보낸다.
요즘은 약간의 성적표현도 죄악시하는 시대다. 어린 손녀 또래 계집아이에게 ‘야, 너 크면 미스 코리아 되겠다.’라고 하면 예쁘다는 칭찬으로 듣는 게 아니라 엄연한 성적본심의 발로로 매김 당한다. 남성이 여성에게 나이 불문하고 그 외모에 대해 언급하는 것은 이제 삼가야 한다.
혹 여성이라고 해서 성적표현 또는 성폭력언어에서 비교적 자유롭다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천만의 말씀이다. 앞이마 벗어진 남자에게 ‘정력이 좋다는 증거’ 운운하는 것은 스스로 자기의 가치를 떨어뜨리는 언행이다. 여성의 외모, 남성의 신체부위에 대한 언급은 가급적이 아니라 절대로 삼가는 것이 교양인이 지켜야 할 품위다.
고상한 표현은 세월의 순리
인간관계를 악화시키는 가장 큰 요인은 말의 독소다. 특히 빈정거리는 말투는 독소의 대표적인 예다. ‘때리는 시어미보다 말리는 시누이가 더 밉다’라는 속담이 생긴 연유다. 말의 독소는 가히 치명적이라 할 수 있는데 그 독소를 제거할 수 있는 유일한 해독제는 바로 말이다. 진정한 사과가 배어있는 말로서 용서를 구해야 치유할 수 있음을 우리는 경험에서 알고 있다.
또 어른이라고 해서 청소년들의 다소 일그러진 언어생활을 무작정 나쁘다고 주장하는 것도 잘못이다. 지금의 어른들도 청소년 시기에는 일탈된 언어유희에 빠져본 기억을 모두 갖고 있지 않은가. 지나친 축약 언어가 요즘의 대세이지만 수명이 그리 길지 않은 언어형태다. 곧 사라질 유행에 불과하므로 굳이 따라하려 신경 쓸 필요가 없다는 얘기다.
우리말에 ‘말 한마디로 천 냥 빚을 갚는다.’는 속담이 있다. 그러니까 경우에 합당한 말 한마디는 천 냥보다 값지다는 말이다. 말을 할 때는 시기와 장소를 가려 대화상대방의 감정을 철저히 살피는 지혜가 필요하다는 잠언이다. 성서에서도 경우에 합당한 말은 ‘아로새긴 은 쟁반에 금 사과’라고 지혜로운 언어생활을 언급하고 있다. 나이 들어 신체의 운동능력은 다소 저하되고 있지만 지적능력의 표현인 언행은 오히려 고상해지는 게 세월의 순리다.
우리는 듣기에 거북한 농담을 재치인 줄 혼동하고 있으며 농담과 음담도 구분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정곡을 찌르는 재치 또는 유머는 우리의 인간관계를 윤택하게 해주지만 출신 고향과 학력, 성씨에 대한 상식이하의 비유는 자칫 망신살로 돌아온다.
병영의 언어문화가 충성심으로
언어문화는 그 나라의 품격과 직결된다. 자타가 공인하는 선진국 미국 사람들을 보면 ‘실례합니다. 미안합니다.’를 입에 달고 산다. 영국 사람들의 조용조용한 말투, 일본 사람들의 남을 배려한 말투는 꼭 본받을 만하다.
다 아는 일이지만 요즘의 병영에서는 존댓말을 권장하면서 제대로들 사용하고 있다. 전역하면 사회에 복귀해 각 분야에서 중추역할을 맡게 될 이들의 언어습관은 참으로 소중한 자산이 되리라 기대한다.
얼마 전 남북의 대치상태가 극에 달했을 때 서슴지 않고 전역을 연기한 일부 장병들의 충성심은 바로 그러한 올바른 문화에서 비롯됐다는 생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