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11 총선이 끝난 며칠 후 나는 몇 명의 지인들과 함께 수원 근교의 광교산에 올랐다. 파릇파릇 돋아나는 나뭇잎들의 신록(新綠)과 함께 온 산야는 연분홍색 진달래꽃으로 붉게 채색되어 있었다. 등산로 입구에는 “나보기가 역겨워 가실때에는 말없이 고이 보내드리우리다. 영변에 약산 진달래꽃 아름따다 가실 길에 뿌리우리다.”라는 김소월의 시비가 때를 맞춘 듯 우리를 반겼다. 진달래는 개나리, 벚꽃, 목련과 함께 우리들에게 가장 먼저 봄소식을 전해주는 반가운 화신(花信)이다. 진달래꽃은 지역에 따라 참꽃이나 두견화로도 불리며 사람들은 술과 떡으로 빚어 먹기도 한다.
어린 시절 뒷산에 올라 진달래꽃을 따먹고 손가락에 물을 들이던 추억은 누구에게나 한번쯤 있을 것이다. 이렇게 낭만적이고 우리와 친숙한 진달래꽃이 이념과 정치의 터널 속으로 들어가면 전혀 새로운 모습으로 우리 앞에 나타난다.
진달래꽃은 북한의 국화이다. 그래서 더 조심스럽고 민감한 측면이 있다.
예를 들어 보자. 1970년대 북한의 김일성이 가장 좋아했다는 ‘가극 피바다’는 “진달래꽃 머리에 꽂고 온 민족이 하나 되어 한라에서 백두까지 해방 춤을 흐드러지게 추는 그날까지 전진하자”는 클로징멘트로 끝난다.
그런데 종속이론, 해방신학 그리고 민중 이데올로기가 범람하던 시절인 1986년 일단의 좌경 대학생들이 건국대학교 본관을 점거하여 위의 ‘가극 피바다’ 끝구절을 새긴 현수막을 내걸고 장기간 폭력시위를 벌인 적이 있다.(조선일보 1986.10.30)
이 사건을 계기로 진달래꽃은 우리들 마음속의 향토적 이미지를 벗어나 이념적 덧칠이 되어 많은 사람들의 인구에 회자된 적이 있었다.
그로부터 26년이 지난 지금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 일을 잊은지 오래이고 특히 20~30대 젊은이들은 건국대 점거 사건 자체를 알지도 못한다.
그런데 지난 4·11 총선 전 민주노동당과 진보신당이 통합진보당으로 합당하면서 당의 이미지컬러를 진달래 색깔인 연분홍색으로 정했고 총선 과정에서 한명숙 통합 민주당 대표가 서울 노원을 선거지원 유세를 하면서 노회찬, 김용민 두 후보의 손을 번쩍 들어올리면서 “개나리꽃 (통합민주당 의미)과 진달래꽃 (통합진보당 의미)을 함께 들고 총선에서 승리하자”고 외쳤다. 진달래꽃이 다시 화두에 오른 것이다.
통합진보당이 연분홍색을 당 이미지 색깔로 정한 것은 우연의 일치 일수도 있다. 그러나 오래전부터 종북 논란에 시달려온 민주노동당이 진보신당과 합당하면서 굳이 진달래꽃을 전면에 내세운 것은 쉽게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러나 이 의문을 풀어줄 실마리가 하나 하나 드러나고 있다.
총선 전 서울 관악을 야당통합후보 선출과정에서 불거진 이른바 ‘경기동부연합’ 이 바로 그 열쇠이다. 조선일보는 지난 4월19일자에 ‘경기동부연합’은 1991년 결성된 ‘민주 민족 통일 전국연합’ 의 지역조직으로 1980년대 후반 경기 성남과 용인에서 활동하던 좌경 운동권 세력이 그 뿌리라고 보도했다. 여기서 ‘1980년대 후반’이란 1986년 10월 29일 건국대 본관 건물을 점거하여 ‘가극 피바다’ 의 끝구절을 현수막으로 내걸었던 좌경 폭력시위 사건이 일어난 시기를 뜻하는 것이다. 바꾸어 말하자면 ‘경기동부연합’ 의 핵심은 바로 진달래꽃을 머리에 꽂고 해방 춤을 추자던 건국대 점거사건 세력들이라는 결론에 도달한다. 또한 중앙일보는 4월20일자에 통합진보당 전국구와 지역구 후보로 원내에 진출한 이석기, 이상규, 김미희, 김재연 등이 ‘경기동부연합’ 소속이라고 보도했다. 특히 전국구 2번 당선자 이석기는 국보법 위반으로 2년6개월의 실형을 선고 받은적도 있다고 한다.
이들은 통합진보당의 당권을 사실상 장악하여 지난 총선 과정에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부정과 불법을 동원, 원내 교두보 확보에 주력했다고 한다. 이쯤되면 통합진보당과 ‘경기동부연합’, 그리고 ‘경기동부연합’과 진달래꽃의 비밀은 어느정도 그 베일이 벗겨진 셈이다. 진달래꽃 대신 금배지를 달게된 이들의 다음 행보와 함께 19대 국회의 장래가 걱정스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