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 하관식을 마치고 현충원 정문 앞에서 대책없이 추위에 떨고 있는데, 젊은 부부가 타고 오던 자가용이 우리 앞에 멈췄다. 흡사 저승에서 만난 보살처럼 다가와 우리를 태워 준 것이다. 그들 부부는 차 안에서 장례식 중계방송을 보면서 오다가 장례식을 끝냈을 때 마침 그곳을 지나게 되었는데, 가슴에 장례식 리본을 단 「어르신들」이 막막하게 서 있어서 태울 생각을 했노라는 것이었다. 그 말을 듣고 함께 서 있다가 함께 탄 O씨가 말했다.
『YS가 끝까지 우리를 돌봐 주셨네...』
우리가 「YS」라는 애칭으로 평생토록 부르기를 좋아한 그분은 명민하거나 근엄하거나 뛰어난 재능으로 압도하는 지적(知的) 능력을 지닌 지도자는 아니었다.
그분이 즐겨 쓰던 말에 이런 것이 있다.
『머리는 남의 것을 빌려 쓸 수 있지만 건강은 내가 지켜야 한다. 건강은 남의 것을 빌려 쓸 수 없으니까.』
이 말을 들으며 쿡쿡 웃는 사람들이 있었다. 『자기 머리가 안 좋다는 것을 아나보지? 남의 머리를 빌린다는 말을 저렇게 아무렇지도 않게 하다니..』하면서.
그렇지만 이 말이 얼마나 정직하고 겸손한 말인가. 지능에 있어서는, 누구에게나 자기를 앞서는 사람이 있게 마련이다. 좋은 머리를 가진 사람을 찾아서 겸손하게 의존하면 얼마든지 난국도 벗어날 수 있고 무궁무진하게 활용할 수도 있다. 그러나 건강하지 못하면 그런 일을 시도할 수조차 없다.
그렇다. 그분은 건강했었다. 신체적 건강만이 아니다. 정신이 놀랍게 건강한 분이었다. 불건강한 방법의 꼼수나 술수를 싫어한 분이었다. 그래서 대도무문(大道無門)하기를 평생 바랐던 분이다. 자질구레하게, 좀스럽게, 치사하게 불건강해지는 일을 아주 경계한 분이다.
그렇게 심신이 건강한 분이었다.
YS를 빗댄 블랙 유모어가 많았다. 특히 영어에 관하여는 아주 많았다. G 발음이 「ㅈ」일 수도 있고 「ㄱ」일 수도 있는 것을 가지고 계속 이어가는 시리즈 같은 것이 있었다. 또 영어 「Q」로 시작되는 이름에서 퀘일과 케일의 차이 같은 것을 구별하지 않아서, 강연을 할 때면 청중석에서 수군거리는 소리도 들렸다. 그러나 정작 그분은 그런 지적에 늠름했다.
「학교」는 「핵교」가 되고 「핵(核)」은 「혁」이 되지만 고칠 생각은 좀처럼 하지 않는 것 같았다. 그런 일은 『대세에 지장 없는 일』이므로 오불관언이었다.
그 또한 건강함의 징표였다.
모든 가능성을 정밀하게 계산하고 수지가 맞지 않으면 손을 대지 않아서, 오래 벼르며 비수를 가슴 속에 품고 앙갚음을 생각하며 절치부심하는 힘으로 정치를 한 분들도 있지만 이분은 달랐다. 정도를 성큼성큼 달려서 이른바 진검승부(眞劍勝負)를 택한다. 그러므로 원한을 속에 담아두지 않는 정치를 한 분이다.
ㅎ씨는 정당의 지방위원회를 맡고 있었다. 어떤 지역을 처음 맡게 되어 관리를 위해 지방에 내려가게 되었을 때였다. 중앙당의 우두머리인 YS에게 그런 인사를 드리러 찾아갔다. 지방 당을 관리하는 비용이 너무나 들어감으로 모두가 어렵고 힘들어 할 때였다. 인사를 간 그 ㅎ씨에게 YS는 안주머니에서 봉투를 하나 꺼내 주었다. 으레 그걸 바라고 인사를 가고 그러려니 하고 인사를 받는 것이 말하자면 관례이던 시절이었다.
그로부터 돌아와서 봉투를 열어본 ㅎ씨는 깜짝 놀랐다. 예상하고 기대했던 것에 비해 숫자의 자릿수가 2단계는 높았다. 그것을 그냥 챙기면 강도가 된 기분일 것 같았다. 그는 YS를 다시 찾아가 봉투를 도로 내놓고 「뭔가 착오인 것 같다」는 말을 했다. 그러자 YS는 그랬는가, 하고 한바탕 웃었다. 웃고 나서 이렇게 말했다.
『그냥 가져 가소. 그것도 다 당신 복이오.』
한번 준 것을 「우째」도로 뺏노, 하는 것이 그분의 건강함이었다.
한편.
단호해야 할 때의 그분을 기억하는 사람들은 많다.
그분이 대통령일 때 공직자에게 일체 골프를 치지 않도록 신칙했다. 많은 공직 골프쟁이들이 불평을 했다. 조그맣고 째째한 배드민튼이나 치는 분이라 골프같은 근사한 운동을 모르니까 그런 결정을 했을 것이라는 둥, 괜히 골프가 사치한 놀이라는 주변의 말만 듣고 순간적으로 내린 결정을 뚝심으로 밀고 간다는 둥, 갖은 불평의 말을 쏟아놓았다. 아마도 그말이 맞을 것이라는 생각이 내게도 들었다.
그런데 현직에서 떠난 뒤의 그분이 골프에 관하여 하는 말을 들을 기회가 있었다.
『나도 골프 한다. 골프 재미있다. 나도 좋아도 했다. 그런데 골프라는 것이 너무 재미가 있어. 그래서 그걸 하는 사람들은 노상 골프 얘기만 해. 갈 때부터 다녀와서까지 골프 이야기만 해. 그게 너무 빠져들게 한단 말야. 공직자는 그러면 안된다. 또 너무 많은 비용이 들어. 그러니까 안 좋은 일도 하게 되지. 그거 안 된다, 공직에 있는 동안은.』
이만큼 분명하게 단호한 생각에서라면 골프 금지령이 타당한 것이었다는 생각을 나도 소급해서 할 수 있었다.
건강하게 결단해서 단호하게 실행하는 일, 그것은 정직의 본연이다. 그분을 사랑하고 기리는 행렬이 놀랍게 이어지는 것을 보며 새삼스럽게 사람들의 본질에 대한 천착의 힘에 두려운 경이감을 느끼게 된다.
펄펄 날리는 눈발 속에 그분은 하관되었다. 많은 사람들이 둘러서서 성스럽게 유감없이 친밀한 정을 담아 흙을 뿌려 드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