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고향 Y읍에서 국도를 따라 북쪽으로 오리쯤 떨어진 나지막한 야산에 북송정(北松亭)이란 데가 있었다. 하늘을 찌를 듯이 높이 자란 우람한 소나무들이 빽빽이 들어찬 숲이었다. 읍내 사람들은 그 울창한 송림 지대를 흔히 북송정이라고 불렀는데 정작 정자(亭子)는 어디에도 없었다. 아마 예전에 강을 낀 솔숲의 정취를 자랑하던 정각(亭閣)이 서 있었는데 오랜 풍상(風霜)에 시달려 사라지고 북송정이란 이름만 그 숲의 대명사로 남은 것 같다.
나의 유년 시절 해마다 단오 날이면 그 솔숲에서 단오잔치가 벌어졌다. 읍내 사람들이 몰려와 들놀이를 하고 그네 대회를 열었다. 한창 꽃다운 처녀이던 고모의 손에 이끌려서 북송정의 단오잔치를 구경하러 가던 기억이 아련하다. 북송정 숲에서 고모가 사주었던 수리취떡의 향긋한 맛이 그리울 때가 있다. 이제는 추억만 아련할 뿐 그 우람하고 아름답던 소나무 숲은 사라져 버린 지 오래이다. 6․25전쟁 때 북쪽 인민군의 벌목으로 사라져 버렸다.
인민군은 Y읍 남쪽 8km 지점 강어귀에 놓인 끊어진 다리를 복구하는 데 쓰려고 북송정의 그 울창하던 소나무들을 모조리 베어냈다. 내가 태어나기도 전에 세워진 그 다리는 동해안을 남북으로 종단하는 7번국도에 놓인 길이 200m 쯤 되는 콘크리트 교량이었다. 전세가 불리하여 밀리던 국군이 다리 한가운데를 폭파하고 후퇴해 버렸다. 그래서 동해안을 따라 우리 고장을 거쳐 포항까지 밀고 내려간 인민군은 자동차도로가 잘려 포탄과 탄약의 수송에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
인민군 공병대는 낮에는 유엔군 전투기들을 피해 숨어 있다가 어둠이 깔리면 북송정 소나무를 베어서 소달구지와 짐차로 실어 날랐다. 주민들은 밤마다 불려나가서 벌목을 돕는가 하면 무너진 차도를 복구하고 흙과 자갈을 까는 부역에 시달렸다. 초등학교 6학년생이던 내 또래 어린이들에게도 삽이나 괭이, 삼태기 같은 걸 가지고 나오라고 해서 거들게 했다. 나도 여러 차례 이웃마을 앞까지 가서 통나무를 실은 소달구지와 화물차들이 어지럽게 오가는 어두운 길에서 밤늦게까지 흙과 자갈을 퍼 나르는 일을 했다. 힘에 부치는 일이었다. 그래도 나는 ‘조국의 영광스러운 통일전쟁’에 무언가 한몫하고 있다는 생각에 신명이 나서 힘 드는 줄 모르고 시키는 대로 했다.
전쟁이 터지고 우리가 사는 곳이 국군과 인민군 사이에 밀고 밀리는 싸움터가 되자 우리 가족과 이웃들은 남으로 피난길에 올랐다. 그러나 한 달 남짓 지나 북쪽 군대가 우리의 피난길을 앞질러서 포항을 점령하는 바람에 우리는 고향 집으로 돌아와야만 했다. 피난 갔던 마을 사람들이 거의 다 돌아온 어느 날 저녁, 인민군 선전대가 사람들을 동네에서 제일 큰 집 마당에 모두 모이게 하고 군중대회를 열었다.
평양의 김일성대학을 나왔다고 소개된 잘 생긴 젊은 장교가 열변을 토했다. 영웅적인 조선 인민군대가 곧 남조선 국방군과 미(美) 제국주의 군대를 무찌르고 조국을 공산주의 자주국가로 통일할 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고 말했다. 미국의 주구(走狗) 이승만의 남조선 괴뢰정권을 몰아내고 모든 인민이 평등한 주인이 되는 새 나라를 세우게 된다고 했다. 마을 사람들 틈에 끼어있던 나에게는 이해하기 어려운 말이 많았다. 하지만 인민군 장교의 불꽃 튀는 웅변을 듣고 있으면 무언가 알 수 없는 전율하는 힘과 벅찬 감동이 밀려오는 것 같아 가슴이 마구 펄떡였다.
며칠 뒤 선전대는 내 또래 아이들을 동사무소에 모아놓고 ‘김일성 장군의 노래’를 가르쳐 주었다. “아침은 빛나라 이 강산 은금(銀金)의 자원도 가득한 삼천리 아름다운 내 조국…”으로 시작되는 북쪽의 국가(國歌)라는 것도 배웠다. 왠지 다 신이 나고 힘이 솟는 노래였다. 물감으로 북쪽 인민공화국의 국기를 그리고 김일성 장군과 인민군을 찬양하는 포스터를 만들어 사무소와 여기저기 담벽에 붙이게도 했다. 합창단을 조직해 주면서 곧 다른 ‘해방지구’로 가서 공연할 것이라고 했다. 다음엔 우리 초등학생 아이들을 소년단원으로 편성하여 두 군데의 마을 공동우물 옆에 움막을 짓고 조별로 돌아가며 불침번을 서게 시켰다. 남조선 스파이들이 몰래 우물에 독약을 푸는 것을 지키라는 것이었다. 부모님들은 질겁하며 어쩔 줄 몰라 했다. 하지만 이미 선전대의 선동에 홀딱 빠진 우리 꼬마 ‘혁명전사들’은 아랑곳하지 않았다. 우리는 “장백산 줄기줄기 피어린 자욱…”하고 목청껏 노래 부르면서 알 수 없는 흥분에 들떠 들먹거리며 골목을 누비고 다녔다. 지금 와서 생각하면 영락없이 마오쩌뚱(毛澤東)의 홍위병(紅衛兵) 꼴이었다.
요즘 제주도 어느 해변 마을의 해군기지 건설과 미국과의 자유무역협정(FTA)을 한사코 반대하고 있는 극렬 시위를 보면 어쩐지 60년이 더 된 예전의 일이 겹쳐 떠오른다. 데모에 앞장선 사람들은 수년 전, 훈련 중인 미군 탱크에 치어 죽은 소녀를 추도하는 촛불시위와 평택의 미군기지 건설 반대 투쟁에 나섰던 그 얼굴들이다.
나는 그들의 궁극적인 목표는 한마디로 반체제와 반미(反美), 종북(從北)에 귀착된다고 생각한다. 어느 시대나 사회를 막론하고 소수의 반체제 세력은 있게 마련이라는 것이 통계학적인 사실이다. 그들 소수의 지상(地上) 무기는 잘 통제되는 조직(組織)과 순박한 다수 대중을 광기(狂氣)의 열풍 속으로 몰아가는 도그마적인 선동이다.
어린 시절 잠시 나를 들뜨게 한 인민군 정치장교의 열변처럼 불을 토하는 듯한 그런 선동의 광풍이 인터넷을 타고 세차게 휘몰아치고 있는 것이 오늘날 우리의 세태가 아닌가.